[스포츠한국미디어 이재호 기자] 이솝 우화 ‘토끼와 거북이’에서 자신의 속도만을 믿고 낮잠을 잔 토끼가 꾸준히 노력을 다해 기어 올라온 거북이에게 경주에서 지고 만다. 아마 구로다 히로키(39·히로시마 카프)도 그랬을 것이다. 그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고 항상 ‘언더독’이었지만 꾸준히, 엉금엉금 가다보니 어느새 토끼를 뛰어넘어 더 위대한 지점에 가 있었다. 진정한 ‘언성 히어로’ 구로다는 그렇게 전설로 남았다.

지난 2008시즌을 앞두고 메이저리그에서 주목하는 아시아 선수의 동향이라곤 과연 ‘마쓰자카 다이스케가 2년차 징크스를 겪을 것인가’에 맞춰져있었다. 2007시즌 무려 약 5,100만달러의 포스팅 금액에 6년 5,200만달러의 계약이라는 엄청난 주목을 받으며 화려한 데뷔시즌(204.2이닝 15승 평균자책점 4.40 탈삼진 201 신인왕투표 4위)을 보냈기에 구로다 히로키의 메이저리그 도전은 마쓰자카 거품에 편승한 것처럼 보이기만 한 채 큰 주목을 받진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구로다는 메이저리그에 발을 들였을 때 이미 33세였고 만년 하위권팀인 히로시마 카프에서만 뛰었기 때문에 일본 내에서도 큰 인기를 끄는 선수가 아니었다. 마쓰자카는 고교시절부터 이미 일본 내 최고의 재능을 인정받는 인기스타였지만 구로다는 마쓰자카의 대척점에 있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하지만 구로다가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지 7년이 지나고 두 선수 모두 내년 일본무대 복귀를 선언한 지금, 희비는 완전히 갈렸다.

▶마쓰자카와 구로다의 MLB 통산 성적 비교

마쓰자카 : 158경기 56승 43패 평균자책점 4.45 790.1이닝 720탈삼진
구로다 : 212경기 79승 79패 평균자책점 3.45 1319.0이닝 986탈삼진

마쓰자카는 구로다보다 5살이 더 어리고, 1년이나 더 빨리 메이저리그에 진출했지만 구로다는 이 모든 불리함을 극복하고 마쓰자카를 뛰어넘는 성적으로 결승점에 다달았다. 주목도는 덜했지만 LA다저스와 뉴욕 양키스에서 3선발급으로 꾸준히 활약하며 부상과 부진에 휩쓸리고만 마쓰자카를 성적으로 완벽하게 압도한 것이다.

그가 넘은 ‘토끼’는 마쓰자카만이 아니다. 여전히 내년에도 메이저리거로 활약할 예정이긴 하지만 일본 최고 인기구단 요미우리의 부동의 에이스였던 우에하라 고지도 완벽하게 뛰어넘었다.

‘동갑내기’ 우에하라는 구로다보다 1년 늦게 메이저리그에 진출하긴 했지만 데뷔 첫해 선발로 실패(12경기 평균자책점 4.05)하며 자존심을 구겼다. 이후 다행히 마무리로 보직 변경 후 맹활약을 하며 체면치레를 할 수 있었다.

일본 내에서 ‘요미우리 에이스’라는 칭호가 얼마나 대단한지를 가늠한다면 우에하라마저 실패한 메이저리그 선발직을 고수했다는 것 자체로 구로다가 얼마나 조용히 강했는지를 알 수 있는 바로미터다.

마쓰자카와 우에하라라는 ‘토끼’가 전부가 아니다. 피지컬이든 구속이든 모든 부분에서 ‘탈아시아급’으로 취급받던 다르빗슈 유 역시 그가 데뷔한 2012시즌부터 올해까지 함께 활약한 3년간 전혀 뒤쳐지지 않았다.

▶구로다와 다르빗슈의 2012~2014시즌 누적 성적

구로다 : 97경기 38승 33패 평균자책점 3.44 620이닝 463탈삼진
다르빗슈 : 83경기 39승 25패 평균자책점 3.27 545.1이닝 680탈삼진

은퇴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37~39세 시즌을 보낸 구로다와 최전성기의 나이인 25~27세 시즌을 보낸 다르빗슈의 성적은 큰 차이가 없다. 그 정도로 구로다는 띠동갑 후배와도 전혀 뒤지지 않는 불꽃을 태운 것이다.

구로다가 더 대단한 이유는 그의 나이에 있다. 하락세가 분명한 나이인 33세에 메이저리그에 도전했음에도 자신보다 뭘 해도 더 주목받던 쟁쟁한 일본 선수를 넘은 것은 물론, 메이저리그 전체 30세 이상 선수들 사이에서도 독보적인 활약을 했다.

팬그래프닷컴에 따르면 2008시즌부터 30세 이상의 나이로 등판한 투수는 총 212명이었지만 구로다는 전체 세 번째로 많은 이닝(1,317.2이닝 - 1위 A.J. 버넷 1411이닝)을 던졌다. 이정도면 ‘아시아 선수는 조로한다’는 인상을 지워버리기에 충분한 꾸준함과 내구성이었다. 게다가 WAR(대체선수 이상의 승수)에서도 22.6을 기록, 그의 위에는 오직 클리프 리(31.5)와 로이 할러데이(29.8)밖에 없을 정도였다. 꾸준함에 화려함까지 구로다는 그야말로 완벽한 거북이었다.

구로다는 일본진출 당시에는 마쓰자카의 그늘에, 성공적인 데뷔시즌을 보냈을때는 ‘요미우리 에이스’ 우에하라에, 2012시즌 뉴욕 양키스로 옮겼을 때는 막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은 다르빗슈에 가렸다. 심지어 올 시즌은 또 다른 ‘대어’ 다나카 마사히로에게 고스란히 스포트라이트를 내줬다. 물론 다나카는 올 시즌 부상으로 고작 20경기밖에 못 나섰지만 구로다는 32경기 풀타임 출전을 하며 양키스 선발진을 지킨 유일한 선수였다.

구로다가 히로시마 복귀를 선언한 후에야 일본 팬들은 그의 유니폼을 구매하려거나 연간 회원권을 구매하려는 등 그의 소중함을 느낀 듯 하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일본 팬이나 메이저리그 팬들이 구로다에게 이렇게 관심을 쏟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일정도로 큰 주목을 받지 못했었다.

거북이는 엉금엉금 기어 자기보다 더 관심을 받고 국보로 인정받던 수많은 토끼들을 넘어섰다. 그리고 결승점에 다와서야 관심과 박수를 받고 있다. ‘언성 히어로(Unsung Hero)’가 드디어 진짜 영웅으로 대접받는 지금, 왜 구로다가 이제야 주목받는지 안타까움을 금치 못할 뿐이다.

사진= ⓒAFPBBNews =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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