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쇼와 그레인키에게 배운 '고속 슬라이더'… 최근 2연승의 비결로 드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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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한국미디어 이재호 기자] 2006시즌을 앞둔 한화의 스프링캠프장. 스물한살의 큰 키의 한 신인은 새로운 구종 연마에 한창이었다. 새 구종은 바로 18년 선배로 직전 시즌까지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했던 구대성이 전수해준 체인지업이었다.

이 투수는 스프링캠프 동안 설익은 자신의 변화구에 방어막이 되어줄 체인지업을 완벽하게 익혔고 이 체인지업을 바탕으로 데뷔 시즌 트리플 크라운(평균자책, 다승, 탈삼진 1위)과 신인왕, MVP를 싹쓸이한 유일한 선수가 됐다. 또한 7년 만에 98승을 거둔 유일무이한 선수로 현재까지 한국야구사에 기록돼있다. 바로 체인지업 하나를 제대로 배워 질주를 시작하게 된 류현진(27·LA 다저스)의 얘기다.

이처럼 새로운 구종을 배워 야구사를 흔들어놓은 경우는 수없이 많다. 메이저리그 데뷔 후 2년간 평범한 불펜 투수였던 트레버 호프만은 어깨수술 후 장기였던 강속구가 사라지자 떠돌이 마이너리거인 도니 엘리엇으로부터 배운 팜볼 그립의 체인지업을 연마했다. 이후 그 체인지업을 주무기 삼아 메이저리그 통산 2위의 세이브(601개, 1위 마리아노 리베라 652세이브)를 올린 선수가 될 수 있었다.

1979년 데뷔했던 마이크 스캇 역시 비슷한 사연을 가지고 있다. 데뷔 후 1984년까지 6년간 29승 44패 평균자책점 4.45만을 기록한 평범한 선발투수였던 스캇은 1984시즌 종료 후 코치 로저 크레이크로부터 스플리터를 배웠다. 이후 이 스플리터를 활용해 1991년 은퇴할 때까지 7년간 95승 64패 평균자책점 3.11을 올리며 질주했다. 특히 1986시즌에는 이닝, 탈삼진, 평균자책점에서 리그 1위를 차지하며 사이영상까지 따내 구종 하나가 선수인생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를 보여줬다.

류현진 역시 구대성에게 배운 체인지업으로 완벽하게 한국무대를 정복했고 지난 시즌에는 메이저리그 역시 싹쓸이 했다. 지난 시즌 피안타율이 1할6푼4리에 그친 류현진의 체인지업은 팬그래프 닷컴의 구종가치에서도 콜 해멀스의 28.6에 이은 20.1로 전체 2위에 올랐다. 또한 메이저리그 감독들이 뽑은 체인지업 순위에서도 콜 해멀스에 이은 2위에 오르며 현장의 인정까지 받았다.

하지만 올 시즌 류현진의 체인지업은 피안타율이 3할1푼1리를 기록할 정도로 잘 듣지 않고 있다. 아무래도 2년차 시즌에 접어들며 빅리그 타자들이 좀 더 대비를 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

위기에 봉착한 류현진은 2006년에 그랬던 것처럼 또 다시 구종 추가를 통해 새로운 투수로 거듭났다. 바로 팀 동료 클레이튼 커쇼와 잭 그레인키에게 새로운 슬라이더를 배우면서 빅리그 타자들을 제압하고 있는 것.

새 구종 고속 슬라이더를 연마한 류현진은 그 기간 동안 있었던 두 경기(14일 샌디에이고 파드레스전, 22일 피츠버그 파이리츠전)에서 이 공으로 52%에 달하는 헛스윙률을 올렸다. 이는 54%의 헛스윙률인 커쇼의 슬라이더와 거의 비슷한 수준일 정도로 위협적이다.

이 고속 슬라이더는 지난해 81.7마일과 올해 82.7마일이었던 구속에 비해 약 5마일 정도 빠르다. 류현진의 지난 두 경기에서 13이닝 2실점 2승의 호투 비결은 이 슬라이더를 적극 활용한 것에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이 호투에는 슬라이더만이 아닌 팀동료 조시 베켓에게 배운 커브 역시 도움이 됐다. 류현진 스스로 베켓에게 배운 커브를 활용했음을 밝혔고 이 커브를 보고 피츠버그의 클린트 허들 감독은 "올해 본 것 중 최고일 정도로 류현진 커브의 낙폭이 대단했다"며 극찬했다. 시즌 중 배운 슬라이더와 커브가 큰 힘이 된 것.

역사적인 순간이란 당시에는 느끼지 못하는 법이다. 당시엔 별 생각이 없다가 지나고 나서야 '아 이 사건이 이렇게 해석되는구나'하고 느껴지곤 한다. 류현진의 새 구종 장착은 지금 당장은 그저 스쳐지나가는 이슈로 여겨질 수도 있다. 하지만 후에 류현진의 또 다른 질주를 설명하는 역사적 변화가 될지도 모른다.
*스탯볼은 기록(Statistic)의 준말인 스탯(Stat)과 볼(Ball)의 합성어로 '이재호의 스탯볼'은 경기를 통해 드러난 각종 기록을 분석한 칼럼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성원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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