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SNS로 '멤버놀이' 갈수록 확산 포털 커뮤니티 1000개 넘어
규칙 어기면 퇴출까지 앱도 생겨 기류에 편승 손에서 폰 못 놓고 중독

중학생 김모(15)양은 지난해 10월부터 인기 걸그룹 미스에이의 보컬 수지로 살고 있다. 김양은 자신의 스마트폰 배경화면과 카카오톡(카톡), 네이버 '라인'같은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메신저 프로필 등에 수지 사진을 넣고, 이름도 '수지'라고 쓴다. 교실, 학원, 집 어디서든 수지로 행세하며 새벽 2시까지 또래들과 메시지를 주고 받는다. 주말엔 날이 밝도록 쉴 틈 없이 스마트폰을 누른다. 김양은 연예인 지망생도 아니지만 "예쁘고 인기 많은 수지 언니가 좋다"며 "다른 연예인을 맡은 친구들과 수다를 떨면 진짜 연예인이 된 듯한 만족감이 든다"고 했다.

스마트폰 메신저를 통해 연예인 흉내를 내는 역할극이 청소년 사이에서 확산되고 있다. 10대들에게는 '멤버놀이'로 불린다. 이는 청소년들이 카카오톡 라인 틱톡 등 스마트폰 메신저 프로필 사진과 소개란을 아이유 엑소(EXO) 인피니트 등 인기 아이돌로 설정하고 또래끼리 단체 채팅을 하는, 일종의 연예인 '빙의 놀이'다. 이 놀이는 3년 전만 해도 극소수 학생만의 10대 문화로 치부됐지만 10일 주요 포털사이트에서 관련 커뮤니티가 1,000여개나 검색될 만큼 청소년들 틈에 파고 들었다. 한 온라인 카페는 회원이 8만7,000여명에 달한다.

이날 이 카페에서만 '엑소 멤놀 팸(패밀리) 구해요' 같은 멤버놀이 모집글 200여개가 게시됐다. 작성자가 남긴 카톡 아이디를 친구로 등록해 단체방에 들어가니 5분 만에 12명이 들어왔다. 공지에는 '임관'(역할을 맡을 연예인) '도금'(도용금지ㆍ남의 역할을 뺏을 수 없음) '?Z'(뉴 페이스ㆍ처음 접한 사람) '자아'(자진 아웃ㆍ채팅방을 나갈 때 '자아 OO'라고 해야 함) 등 낯선 용어로 가득했다.

저마다 연예인이 된 이들의 세계에는 엄격한 검증절차가 있다. 자신이 맡을 스타를 언급하면 다른 참가자들은 그 연예인의 실명과 나이 등 신상정보를 대라며 검증에 나선다. 검증 후 이들은 각자 맡은 연예인의 말투로 '학원 숙제 안 해 혼났다'는 등 일상을 늘어놓는다. 그러나 답이 늦거나 연예인의 말투와 다르면 거친 욕설과 함께 '스파이(호기심에 참가한 사람)는 나가라'는 압박을 받기 일쑤다. 일부는 연예인끼리 결혼하는 가상상황을 설정하고 신혼의 '단맛'을 얘기했다. 기자가 지켜본 결과 이런 식으로 나눈 이들의 카톡 메시지는 2시간 만에 1,000여개를 훌쩍 넘었다.

김양은 "내게 말을 건 친구에게 10분만 답을 안 해도 경고를 받고, 경고가 5회 쌓이면 '퇴출'압박을 받아 새벽에도 스마트폰만 본다"고 털어놨다. 이처럼 연예인 놀이에 빠진 10대들은 쉽게 스마트폰에 중독돼 현실 속의 친구를 외면하는 등 스스로 일상을 망가뜨린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한국정보화진흥원에 따르면 청소년 스마트폰 중독률은 2011년 11.4%에서 지난해 18.4%로 증가했다. 여중생 박혜민(15)양은 "반에서 멤버놀이를 하는 친구들이 적어도 5명쯤 된다"며 "말을 걸어도 대꾸도 없이 혼자만의 세상에 빠져 학교에서 왕따를 자처한다"고 말했다.

청소년 상담사로 활동하는 안주연 메디웰병원 정신과 전문의는 "이런 청소년들은 팍팍한 학교에서 현실도피의 수단으로 멤버놀이 같은 가상현실을 찾는다"며 "연예인이 좋은 롤 모델이 될 수도 있지만 지나치면 자기 정체성까지 혼란스러워 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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