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국영 ABC 방송의 유명 앵커가 시드니의 출근길 버스 안에서 심한 인종차별을 당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파문이 일고 있다.

8일 ABC 방송에 따르면 이 방송 앵커인 제레미 페르난데스는 이날 오전 시드니의 출근길 버스 안에서 백인 여성으로부터 심한 인종차별적 폭언을 들었다.

사건의 발단은 페르난데스가 앞자리에 앉아있던 백인 여성에게 "당신 딸을 잘 좀 돌보라"고 주의를 주면서 비롯됐다.

이 여성의 5살 난 딸이 페르난데스의 2살 난 딸의 머리를 자꾸 건드리자 건넨 충고였다.

그러자 여성은 발끈하면서 "당신이 뭔데? 대체 내 딸을 쳐다보면서 뭘 하는 거냐? 방금 내 딸을 만진 거 맞냐?"라고 맞받았다.

여성은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여기서 그치지 않고 페르난데스에게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 이 검은 ××야!"라고 원색적인 인종차별적 욕설을 퍼부었다.

심지어 버스기사까지 가세해 페르난데스에게 "다른 자리로 옮겨라"고 핀잔을 줬다.

하지만 페르난데스는 미국의 흑인 인권운동가 로자 파크스의 사례를 떠올리며 자리를 옮기면 인종차별적 공격에 굴복하는 것이라고 판단해 자리를 옮기지 않고 버텼다고 밝혔다.

페르난데스는 버스기사에게 "나는 자리를 옮기지 않겠다. 나는 아무 짓도 하지 않았고 여기에 앉아있는 것은 나의 권리이다"라고 쏘아붙였다.

이 같은 사건은 페르난데스가 자신의 트위터에 전말을 올리면서 대중에게 널리 알려졌고 ABC 방송을 비롯한 호주 주요 언론도 이를 비중있게 보도하고 있다.

많은 호주인들은 평범한 이민자나 유학생도 아닌, 호주를 대표하는 유명 앵커까지 인종차별의 희생양에 됐다는 사실에 적잖은 충격을 받은 모습이다.

말레이시아계 혼혈로 알려진 페르난데스는 부모와 함께 13살 때 호주로 건너와 ABC 방송의 간판 앵커로 활약하고 있다.

페르난데스는 "다행히 내가 이 같은 사건을 이슈화시킬 수 있는 인지도를 갖고 있다는 사실이 기쁘다"며 "다른 많은 사람들은 비슷한 피해를 당하고도 그러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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