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나주 초등학생 납치ㆍ성폭행 사건 이후 각 부처는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 다양한 성범죄 방지 대책을 쏟아냈다. 법무부는 성충동 억제 약물치료(화학적 거세) 대상을 확대했고 행정안전부는 인터넷 음란물 집중 단속에 나섰다. 또한 경찰은 길거리 불심검문 강화, 방범비상령 선포(전북) 카드까지 꺼냈다. 이 대책들이 모두 실현 가능하고 효과적인 것은 아니지만 통영 초등학생 한아름양 사건부터 인천 임신부 성폭행 사건에 이르기까지 연이은 성범죄로 인한 국민의 불안과 분노를 덜어주기 위해 짜낸 대책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난리' 속에 너무 조용해서 오히려 눈에 띄는 부처가 있다. 성폭력 예방과 피해자 보호를 담당하는 여성가족부다.

나주 사건이 터진 지난달 30일 이후 여성부가 배포한 보도자료는 총 10건. 이중 대부분이 '한중 수교 20주년 기념 여성 교류 행사'나 '청소년유해환경감시단 워크숍 개최' 같은 장관 동정자료였고, 성범죄 관련 자료는 한 건도 없었다. 오히려 성범죄 대책을 다룬 언론 보도에 대해 해명자료(3건)를 내기에 바빴다. 여성긴급전화중앙지원단 개소식 자료가 있긴 했지만 예정된 개소식 행사에 그쳤다. 최근 급증한 성범죄를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한 셈이다.

성폭력 피해자에게 경찰조사부터 심리치료까지 지원하는 해바라기센터나, 방치된 아이들을 보살펴주는 아이 돌봄 지원사업은 성범죄 피해의 예방과 구조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여성부의 소관 업무다. 하지만 이러한 것을 확대하거나 개선하겠다는 장관이나 부처 차원의 언급이 전혀 없는 걸 보면 과연 성범죄 대책이 여성부의 임무라는 인식이 있기나 한지 의심스럽다. 여성부 관계자는 "성폭력 관련 대책은 주로 국무총리 주재 관계장관 회의에서 나오기 때문에 따로 발표하지 않는다. 장관님 입장은 기자 간담회(14일 예정)에서 나올 것 같다"는 궁색한 답변만을 내놓았다.

여성부는 2008년 이명박 정부 출범 당시 존폐 논쟁에 시달리며 가까스로 살아 남았다. 평소 '힘 없는 부처'라고 자인하며 "예산이 없어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던 여성부다. 출입기자들 사이에서는 내실 있는 정책 자료를 볼 기회가 적고 장ㆍ차관 동정자료만 많이 낸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하지만 막상 중요한 할 일이 생기고 온 나라의 관심이 집중된 상황에서 여성부는 한 발을 뺀 채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연이어 터진 흉악 성범죄로 여성과 아동 그리고 가족이 고통 받고 있는데도 외면한다면 여성가족부는 과연 누굴 위해 존재하는 것일까. 존재 이유를 스스로 부정하는 부처에 존폐 논란은 당연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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