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년만에 입열어… "오래 못살거라는 말 자주 했다"

1973년 7월 32세 한창 나이에 요절한 '전설적인 쿵푸스타' 로 27일 탄생 70주년을 맞은 리샤오룽(李小龍)의 마지막 연인 딩페이(丁珮 65)가 입을 열었다.

대만 출신의 여배우 딩페이 자택에서 혼수상태로 발견된 리샤오룽의 사인을 둘러싸곤 진통제 부작용과 병사, 암살, 복상사 등 갖은 억측과 소문이 지금까지 계속 끊이지 않고 있다.

28일 중국어 신문 세계일보(世界日報) 온라인판에 따르면 딩페이는 홍콩 언론과 인터뷰에서 리샤오룽이 죽기 1년 전인 1972년 유부남인 그를 만나 사랑에 빠졌다고 고백했다.

딩페이는 자신의 집에서 리샤오룽이 정신을 잃은 채 병원에 실려간 이래 그의 죽임에 직접 간여했다는 의혹에 줄곧 시달려 왔다고 토로했다.

그는 "세간에는 내가 그를 살해했다고 믿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지만 그냥 웃어 넘기려 한다"면서도 "리샤오룽은 운명을 달리하기 전 제발로 나를 찾았을 뿐이다. 세상 모두가 이상하게도 나를 저주하는 것 같다"고 괴로운 심경을 털어놨다.

딩페이는 자신과 리샤오룽을 연결해준 게 골든하베스트(嘉禾)의 레이몬드 초(鄒文懷) 회장이라는 등의 비화도 공개했다.

레이몬드 초 회장의 소개로 만난 당일 리샤오룽은 식탁 밑으로 딩페이의 손을 꽉 잡고 그의 눈을 응시하면서 프러포즈, 바로 열애하는 사이가 됐다고 한다.

또한 딩페이는 운명의 날에 대해 "7월20일 오후 리샤오룽과 레이몬드 초 회장이 주룽(九龍)의 아파트에 함께 왔다. 내가 여주인공을 맡은 를 놓고 얘기를 나눴다. 그런데 리가 두통을 호소해 그가 전에도 먹던 진통제 한 알을 주었다. 리가 침실에서 휴식을 취하는 동안 초 회장과 거실에서 계속 영화대본에 관해 대화했다. 초 회장이 약속 때문에 먼저 떠난 뒤 그가 깨어나기를 기다렸지만 저녁식사 약속 때가 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서 초 회장에 전화를 걸었더니 밤 늦게 우리 집에 와서 파티를 하겠다며 계속 자도록 놔두라고 했다. 나중에 다시 리를 깨우려 했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놀라 초 회장에게 전화했고 그가 황급히 달려와 의사를 불렀지만 소용 없어 병원으로 옮겼다"고 소상히 기억을 떠올렸다.

딩페이는 사고 후 리샤오룽과 함께 있었다는 사실을 부인한 사유에는 "그때 난 26살에 지나지 않았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할 만큼 충격을 받아 차분한 성격의 로 회장이 시키는대로 말할 수밖에 없었다"고 해명했다.

초 회장과 리샤오룽의 부인 린다도 그의 이미지를 보전하기 위해 사고 현장을 주룽탕(九龍塘) 자택이라고 둘러댔다.

그런데도 이후 딩페이는 전세계 언론과 팬들이 리샤오룽을 죽음으로 몬 장본인이 자신이라고 지목하며 살해 위협까지 해와 마음이 아팠다고 말했다.

생전에 리샤오룽은 자신이 오래살지 못할 것 같다는 말을 자주 했으며 가장 좋아하는 노래가 였다며 그가 만년에 그토록 열심히 영화를 찍었던 건 살아 있는 동안 가능한 많은 작품을 남기길 원한 탓이라고 딩페이는 덧붙였다.

리샤오룽의 돌연사로 딩페이는 결국 은막을 떠났으며 홍콩 영화계의 거물 샹화창(向華强)과 결혼해 딸 하나를 낳았다.

딩페이는 샹화창과 이혼한 뒤에도 불교에 심취해 공석에 나가는 것을 자제하고 수행에 전념하고 있다.

1940년 11월 27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난 리샤오룽은 1971년 첫 주연작 을 시작으로, 가 연속 대히트를 치면서 월드스타로 떠올랐다가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

유작인 는 대역배우를 싸서 촬영을 마친 뒤 1979년 개봉됐다. /스포츠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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