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장년 여성 겨냥한 '중년 제비족' 활개… "가족 무관심에 삶의 의미 찾으려다 수렁"

#1. 16일 저녁 서울 중부경찰서. 사기를 당해 2,000만원을 날린 A(45ㆍ여)씨가 피해자 조사를 받고 있었다. 그런데 사기꾼 지모(56)씨를 욕하기는커녕 "그 분이 그럴 리가 없다. 뭔가 잘못된 게 아니냐"고 반문했다.

#2. B씨(35ㆍ여)는 지난 4월 어머니 C(65)씨를 가까스로 설득해 서울 영등포경찰서에 D(44)씨를 사기 혐의로 고소했다. C씨가 사별한 남편이 물려준 집과 목장을 담보로 대출 받은 1억6,900만원을 빌려줬는데, D씨가 행방을 감췄기 때문이다. 경찰 조사에서 B씨가 "사기 당한 것"이라고 주장하자, C씨는 "무슨 사정이 있을 것"이라며 오히려 D씨를 감쌌다.

A씨와 C씨처럼 남편의 무관심이나, 사별 후 혼자 지내는 중ㆍ장년 여성을 노리는 사기꾼이 활개를 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알려진 것과 달리 '중년 제비족'은 잘 생기지도 않고 화술도 뛰어나지 않지만, 타깃이 된 중년 여성 대부분은 사기의 희생물이 된다"고 말했다.

외모, 학력, 직업을 중시하는 미혼 여성을 노리는 젊은 제비족과 달리 중년 제비족의 무기는 '배려'와 '섬김'이다. A씨를 등친 사기꾼 지모씨가 대표적 사례다. 지씨는 4월말 청량리 카바레에서 A씨를 처음 만난 이후 A씨를 여왕처럼 모셨다.

매일 아침과 저녁 무렵 '내 가슴을 당신 가슴 한 쪽에 묻고 싶다'는 등의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길을 걸을 때는 최씨가 길 안쪽에서 걷도록 배려했고, 헤어스타일이나 옷 차림 등 사소한 변화에도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A씨는 "성관계 한 번 갖지 않았고, 평범한 외모였지만 다정다감해서 좋았다"며 "20년 넘게 산 남편보다 지씨랑 한 달만 살아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고 털어놓았다. 경찰 조사결과, 청량리 카바레에 갔다가 A씨처럼 지씨에게 넘어가 2,000만~3,000만원을 사기 당한 중년 주부만 5명에 달했다.

C씨도 처음에는 20년 연하인 D씨를 거부했지만, D씨의 상냥함에 한 달만에 무너지고 말았다. D씨는 C씨를 데리고 교외로 자주 나갔고, 수시로 '끝까지 사랑한다. 평생을 즐겁게 해주겠다'는 말을 아끼지 않았다.

방희정 이화여대 여성학과 교수는 "남성과 달리, 여성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다"며 "남편의 무관심으로 스스로 의미 없던 존재로 느끼던 중년 주부들이 자신을 배려하는 대접을 받으면, 쉽게 함정에 빠지게 된다"고 말했다.

방 교수는 "남편과 자녀 모두 아내와 어머니를 배려하는 한편, 여성 스스로도 봉사활동 등으로 나름의 자존감을 되찾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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