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조성진
▶ 최원영, 윤석화에 이은 ‘객석’ 3대 발행인
▶ 前 필리핀항공 대표
▶ 보라카이, 세부 등 필리핀 관광명소 국내 최초 발굴
▶ 다수 관광여행 기획상품 공전의 히트
▶ 아내(이형옥)는 국내 1세대 여성 잡지계 거물
▶ 유능한 젊은 음악가 지원 아끼지 않아
▶ “재정 힘들어도 문화적 사명감 갈수록 높아져”
▶ “객석, 국내 음악환경 구조개혁 일조하는 잡지로”

[스포츠한국 조성진 기자] 클래식 음악-연극-뮤지컬-무용 등을 아우르는 국내 유일의 종합예술전문지 월간 ‘객석’이 12월호로 통권 442호째가 됐다. 지난 1984년 창간된 객석은 열악한 국내 출판시장 속에서도 무려 36년이 넘는 세월 동안 단 한 번의 정간도 없이 뚝심 있게 버텨왔다.

최원영 초대 발행인에 이어 2대 발행인 윤석화, 그리고 2013년부터 김기태(65) 대표가 3대 발행인으로 객석을 이끌어 오고 있다.

국내 음악지 시장이 어렵다 보니 객석은 지속적인 재정적 문제로 힘든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연극인 윤석화가 99년 객석을 인수한 이래 14년간 40여억 넘는 적자를 기록한 건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얘기다. 당시 윤석화 발행인은 객석 폐간까지 생각했을 정도다.

객석을 인수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긴 했지만, 윤석화 발행인은 탐탁지 않게 여겼다. 대부분 ‘문화 마인드’가 아닌 다른 상업적 용도로 인수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김기태·이형옥 부부가 인수 의향을 보였고, 이들에 대한 믿음이 남달랐던 윤석화는 흔쾌하게 객석을 넘긴 것이다.

윤석화와 친구였던 아내 이형옥은 ‘우먼센스’ 편집장 및 ‘마리끌레르’ 등등 여러 월간지를 총괄한 국내 1세대 여성/라이프 전문 잡지인으로 ‘더북컴퍼니’ 공동대표를 역임하기도 했다. 현재 객석 편집인으로 재직 중인 이형옥은 김기태 대표와는 성균관대 신문방송학과 75학번 동기다.

충정로 인근에 있는 월간 ‘객석’ 사무실에서 김기태 발행인을 만났다.

월간 ‘객석’은 지난 5월 인사동에서 중림동 가톨릭출판사 신관으로 사무실을 이전했다. 전용(실평) 60평 규모에 충정로역 인근 역세권이란 좋은 위치임에도 임대료는 오히려 반으로 줄어들었다. 재정 형편이 좋지 않은 객석에게 ‘임대료 절감’은 경영상 적지 않은 도움이 되는 게 사실이다.

한가지 질문에 답변이 이어지고 또 다른 질문과 답이라는 일반적인 인터뷰 방식과는 달리 김기태 대표는 하나를 질문하면 그와 연관된 또 다른 내용을 자연스럽게 풀어내는 스타일이었다. 따라서 미리 준비한 질문을 일일이 열거하지 않아도 한 질문에 3~4개의 답이 오는, 매우 자연스럽고 ‘생산적인’ 인터뷰 시간이었다. 기업 CEO 및 잡지 경영인으로서의 내공이 느껴지는.

더욱이 막힘없는 언변에 기억력도 돋보였다. 인터뷰를 하다 보면 젊은 나이임에도 자신의 경력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더욱이 몇 년에 무엇을 했고 등 연도를 기억하는 사람은 드물다. 반면 김기태 대표는 60대 임에도 인터뷰 와중에 정확한 기록을 위해 팩트 체크차 몇 년도인지 물어볼 때마다 즉시 몇 년 몇월까지 정확하게 기억할 정도였다.

자타공인 해외 관광 여행상품 개발 전문가였던 김기태 대표는 1979년 ‘고려무역’에 입사하며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이어 81년부터 88년까지 종합물류상사 ‘오리엔트 익스프레스 코퍼레이션’에서 일했고 89년 필리핀항공으로 옮기며 직장인으로서의 황금기를 맞이하게 된다. 관광 여행상품 개발에 탁월한 기획력과 센스를 겸비했던 김기태 대표는 입사 10년 만인 99년 필리핀항공 CEO가 됐다.

당시엔 전혀 무명의 섬이었던 필리핀의 보라카이, 세부 등의 관광지를 50여 회 이상 오가며 치밀한 리서치/연구 끝에 이곳을 관광지로 국내에 처음 소개하고 명소로 주목받게 한 인물이 바로 김 대표다. 온누리, 씨에프랑스 등등 당시 국내 유명 여행사들이 김 대표의 이 관광상품에 깊은 관심을 보이며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또한 2000년부턴 초·중생 대상 필리핀 어학연수프로그램까지 개발하며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관광명소에 어학연수프로그램의 성공으로 필리핀을 중심으로 한 여행상품은 불과 4~5년 만에 100만 명을 돌파할 만큼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김기태 대표의 이러한 성과에 필리핀 정부는 대통령상을 수여하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업무상 사람 만나는 일이 많았던 김 대표는 매일 소주 1병과 양주 1병을 마실 정도로 과로와 과음이 연속되는 나날을 보냈다. 결국 그는 2011년 대장암 진단을 받고야 만다. 그러나 특유의 뚝심과 낙천적인 성격으로 김 대표는 2013년까지 12차례의 고통스런 항암치료를 받고 암을 이겨내 주변을 놀라게 했다. 당시 주치의까지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 것 같다”고 할 정도로 암이 3기 말로 진행된 상태였던 만큼 김 대표의 완치는 그 자체가 인간승리였던 것이다.

2년간의 투병 생활로 인해 직장도 그만둬야 했던 김 대표는 향후 어떤 일을 할까 고민했다. 등산을 좋아하다 보니 산에 오르내릴 때 쌓여 있는 쓰레기를 줍거나 노숙자를 위한 저녁 식사 제공 등 몇몇 봉사 활동도 생각해 봤다. 아버지가 자신에게 항상 강조하던 “남한테 베풀기 위해 돈을 버는 것”이란 말을 본격적으로 실천에 옮길 때가 됐다고 여긴 것이다.

객석 인수 얘기도 바로 이즈음에 나왔던 것이다.

음악에 관심은 있지만 음치에 음악 전문가도 아니라 처음엔 고민도 했지만 아내가 전문 잡지인 출신이고 또 자신은 큰 규모의 기업을 이끈 경험도 있어 시너지가 날 것으로 기대했다. 항공사 CEO 출신의 남편과 베테랑 잡지인 출신의 아내, 월간지를 이끌어 가기엔 충분히 좋은 모양새였다.

그러나 현실은 만만치 않았다.

그렇지않아도 만성적자인 객석이었는데 2013년 인수 후에도 매년 몇억씩 적자를 기록했다. 2016~17년엔 연 4억씩 적자 폭이 늘어 갔다. 월간지 광고를 안한다는 본사 방침에 따라 글로벌 명품 브랜드 광고가 줄줄이 빠져나갔기 때문이다. 김 대표가 객석을 경영하며 가장 힘들었던 시기도 바로 이즈음이다.

김기태 대표는 특히 실력있는 젊은 음악가들에 관심이 많아 사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자신이 직접 섭외까지 나서 편집부를 서포트하기도 한다.
김기태 대표는 디자인·광고부 직원 등 몇몇 부서를 정리하며 본격 다운사이징에 돌입했다. 이후 적자 폭이 줄어들기 시작했고 2019년부터 모 보험회사와 ‘VIP를 위한 연주회’를 10여 차례 기획 공연하며 어느 정도 재정적 탄력을 받기에 이른다. 올해엔 코로나19로 인해 이 기획공연을 하지 못해 아쉬움도 크다.

객석은 이제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유명 매체, 브랜드로서의 가치가 매우 크다. 따라서 객석과 함께 다양한 이벤트/기획을 해보고 싶어 하는 업체들도 적지 않다. 이때마다 김 대표는 한 가지 뚜렷한 소신을 견지하며 ‘할지 말지’에 대해 분명한 선을 긋고 있다. 돈도 중요하지만 그럼에도 객석이란 이름에 오점을 남기는 것이라면 절대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여러 곳에서 대가성 기사(유료기사)를 원하는 끊임없는 유혹도 과감히 뿌리치고 있다.

항공사 CEO로 정점을 찍으며 그간 돈도 꽤 많이 벌었지만, 객석 운영으로 계속 사비를 털어오는 상태라 친구 동기들과 한잔할 땐 “이제 객석을 하고 있어서 양주값은 못 낸다”고 공공연히 말할 정도다.

잡지 경영으로 여유 있는 재정 형편이 아님에도 그는 유능한 젊은 음악가를 위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김기태 대표는 사비를 털어 고가의 바이올린(과다니니) 2대와 첼로(비욤) 1대를 사서 음악인에게 악기를 무상 대여해주고 있다. ‘2014 파블로 카잘스 국제 첼로 콩쿠르’ 우승자인 문태국, ‘2016 센다이 국제 음악 콩쿠르’ 바이올린 부문 1위인 장유진, 그리고 안네 소피 무터의 애제자인 명 바이올리니스트 최예은 등이 모두 이런 혜택을 받은 대표적인 음악가들이다.

또한, 김 대표는 각종 공연장을 두루 다니며 현장의 소리를 들으려 한다. 뿐만 아니라 젊은 음악가들과 한잔 기울이며 적극적인 소통을 하고 있기도 하다.

“객석 경영을 위해 매년 몇억씩 사비를 털었고 내년에도 또 그래야 하지만 그럼에도 젊은 음악가들이 각종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제일 먼저 내게 전화를 하거나 찾아올 때 보람을 느낍니다. 객석을 해오며 일종의 문화적 사명감도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것 같아요.”

“직원이 행복해야 회사가 발전한다”가 김기태 대표의 경영 신조(경영철학)다. 그동안 객석이 힘들었지만 좋은 날이 올 거라는 믿음은 여전히 견지하고 있다.

김 대표는 코로나19로 올해 예정된 많은 것들을 하지 못했다. 따라서 내년엔 꼭 실행에 옮기고 싶은 것들이 있다.

“영상팀과 음향팀을 잘 꾸려 공연 등 제반 촬영/취재 활동을 더욱 적극적으로 하며 SNS 시대에 부응하고 싶습니다. 카메라 담당자가 악보를 볼 줄 알면 더욱 좋겠어요. 음악에 대한 이해가 있으면 해당 공연 영상도 좀 더 좋게 촬영할 수 있으니까요. 음대 출신 카메라 스텝을 원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해외통신원도 더 강화할 예정입니다. 현지 소식 및 그 외 다양한 리뷰 등 해외통신원만의 특화된 장점을 더욱 많이 살리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오프라인만이 아닌 객석의 온라인 활성화도 적극적으로 도모하려고 합니다.”

김기태 대표는 슬하에 2녀 1남을 두고 있다. 그중 둘은 직장인이고 막내는 대학생이다. 취미는 당구(쓰리 쿠션), 그리고 뜻이 맞는 지인들과의 음주 등이다.

“한국의 음악가들은 각자 개인적으론 이미 세계 최고일 만큼 실력자들입니다. 반면 그들을 둘러싼 학교, 기관 등 외적인 환경은 학연·지연 등등 구조적으로 적폐의 온상이라 할 만큼 바꿔야 할 게 산적해 있어요. ‘객석’은 미력하나마 국내 음악계와 환경 전반의 구조개혁에 일조하는 잡지로서 그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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