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유튜브 동영상 캡처
▶ 14일 향년 87세로 타계
▶ 개성 강한 유일무이 연주력+표현력
▶ 강력하게 몰아치는 특유의 오른손 터치
▶ 스페인 주도의 클래식 기타 탈피 외연 확대 기여
▶ 바로크에서 현대음악까지 폭넓은 레퍼토리
▶ 스포츠카 매니아이기도

[스포츠한국 조성진 기자] “클래식 기타계의 유일무이한 존재 줄리안 브림! 이렇게 위대한 그가 이제 이 세상에 없다니…비보를 들은지 며칠이 지나도록 여전히 심장이 쿡쿡 아려온다. 기타인들 모두의 뮤즈이자 자랑 줄리안 브림, 고맙고 또 고맙습니다.”
- 기타리스트 박규희

클래식 기타사의 위대한 비루투오소 줄리안 브림(Julian Bream, 1933~2020)이 지난 14일 영국 윌트셔주의 돈헤드 세인트앤드류 저택에서 87세의 나이로 타계했다.

세고비아가 스페인과 라틴 문화에 뿌리를 둔 클래식 기타 세계로 확고한 영역을 구축했다면 줄리안 브림은 영어 및 프랑스 독일어 권에 이르는 음악까지 다채롭게 받아들이며 클래식 기타 세계를 더욱 다양하게 확장시킨 장본인이다.

“스페인에 세고비아가 있다면 또 다른 세상엔 브림이 있다”는 표현은 그래서 더욱 설득력이 있는 것이다.

사진=유튜브 동영상 캡처
줄리안 브림은 여러 인터뷰에서 세고비아, 타레가 등으로부터 영향받았다고 밝힌 바 있지만 그의 연주는 이들과는 전혀 다른, 오직 ‘줄리안 브림 스타일’ 바로 그것이었다.

세고비아, 존 윌리엄스 등 일련의 명 연주자들에게서 들을 수 있는 음색의 투명함과는 또 다른 묵직함과 변화무쌍한 개성 강한 톤은 깊은 인상을 남기는데, 특히 강력하게 몰아치는 특유의 오른손 터치는 가공할 임팩트를 전해준다.

그는 오른손 엄지로 줄을 튕길 때 줄과 45도 각도가 되게 하는 어프로치로 파워와 디테일있는 표현력을 들려줬는데 이러한 스타일은 이후 많은 기타리스트들에게 영향을 주기도 했다.

줄리안 브림은 르네상스 류트음악에 기타 테크닉을 접목시켰고 바로크에서 바흐, 스페인 기타 음악은 물론 쇤베르크, 브리튼, 스트라빈스키 등등 현대음악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레퍼토리를 소화하고 편곡해 클래식 기타 연주를 가장 현대적으로 진보시켰다. 지난 93년 줄리안 브림은 내한공연을 통해 당시 국내 클래식 기타리스트들은 물론 기타음악 애호가들 모두에게 ‘꿈같은’ 시간을 전해주기도 했다.

줄리안 브림이 천재적 재능으로 이미 어린 나이에 전액 장학금을 받으며 영국 왕립음악대(로열 칼리지 오브 뮤직)에서 수학할 당시만 해도 영국은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 등과는 달리 클래식기타에 대해 평가절하가 유독 심했다. 브림은 이러한 편견을 뚫고 모국인 영국에 클래식 기타의 매력과 존재감을 알렸고 클래식 기타리스트의 위상을 새롭게 정립시켰다.

1984년 7월 24일자 뉴욕타임즈 15면에 게재된 줄리안 브림의 자동차 사고 기사. [사진=뉴욕타임즈 웹사이트 캡처]
줄리안 브림은 지난 1958년 RCA 빅터와 계약한 이래 40여 년간 이곳에서 방대한 양의 음반을 녹음했다. 이어 90년에 EMI 클래식으로 이적해 레코딩 활동을 이어갔다.

그는 ‘베스트 인스트루멘틀 솔로’ 등 4번의 그래미상, 에디슨 상 2회 수상, 빌라로보스 골드 메달, 그라모폰 뮤직어워즈 평생공로상 등 수많은 상을 받기도 했다. 또한 런던 길드홀 대학 철학박사 학위(1999년)를 비롯해 몇몇 명예박사 학위도 받았다. 줄리안 브림이 기타만큼이나 좋아했던 또 하나의 세계는 자동차, 특히 스포츠카였다. 적지 않은 명 스포츠카를 섭렵한 그이지만 그럼에도 그가 가장 사랑하던 차는 영국의 자동차 브랜드 MG였다. 클래시컬한 운치와 품격이 가득한 디자인으로 잘 알려진 MG 스포츠카는 영화 ‘러브스토리’에서 라이언 오닐이 몰던, 그리고 ‘퍼블릭에너미 넘버원’에서 뱅상 카셀이 몰던 바로 그 멋스러운 로드스터다.

스포츠카에 심취해 있던 그가 기타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1984년 자동차 사고도 바로 이 ‘MG 투어러’ 스포츠카를 몰던 중에 일어난 것이다.

당시 ‘뉴욕타임즈’는 줄리안 브림의 매니저 해롤드 쇼(Harold Shaw)와의 인터뷰를 토대로 84년 7월 24일 자 15면에 “유명 기타리스트 줄리안 브림이 지난 토요일 밤 도싯으로 돌아가는 길에 다른 자동차를 피하고자 자신이 몰던 MG 스포츠카를 다리 쪽으로 돌리다가 사고를 당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줄리안 브림은 이 사고로 오른손 조직 손상/팔꿈치 골절로 인근 병원으로 이송돼 3시간에 가까운 대수술을 받았다. 집도했던 담당 의사는 “이제 예전처럼 오른팔을 사용하긴 힘들 것”이란 진단을 했음에도 즐리안 브림은 이에 굴하지 않고 피눈물의 엄격한 재활 프로그램을 통해 오른팔 컨디션을 상당 부분 회복할 수 있었다. 그 결과 사고 3개월 후 미국을 여행할 수 있을 만큼 상태도 점점 호전돼 갔다.

줄리안 브림은 윌트셔의 ‘Semley’에서 40년 넘게 살았다. 그리고 2009년 윌트셔의 돈헤드 세인트앤드류에 있는 작은 집으로 이사했다. 그는 이곳에서 전원생활과 함께 크리켓 게임을 즐기며 유유자적 삶을 이어갔던 것이다. 아직 구체적 사인이 공개되진 않았으나 미루어 짐작컨데 이처럼 전원생활을 즐기던 중 편안하게 삶을 마감한 게 아닌가 여겨진다.

클래식 기타리스트 박규희는 “나와 같은 세대의 기타인들에게 세고비아는 이미 역사 속에 남아있는 조상과도 같은 존재라면, 줄리안 브림은 살아있는 전설이자 클래식 기타를 상징하는 대명사와도 같다”고 기자에게 전했다. 그리고 박규희는 “과연 줄리안 브림의 영향을 받지 않은 기타리스트가 이 세상에 존재할까?”라고 덧붙였다.

또한 박규희는 “그의 음악적 표현엔 어떠한 한계가 없어서 어떤 감정도 다 음악에 잘 녹여내 많은 사람의 공감을 얻어냈다”며 “그의 성품에서 느껴지는 소박하며 재치있고 간결하지만 따뜻한 음색은 수많은 마음을 치유해 줬을 것”이라며 깊은 존경과 함께 애도를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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