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초동 코스모스악기 사옥내 스타인웨이 VIP룸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테너 김경호 [사진=조성진]
▶ 테너의 테너, 능란한 ‘하이 C’ 음역
▶ 범접할 수 없는 최고 수준 레가토 역량
▶ 베르디 ‘돈 카를로’ 꼭 해보고 싶어
▶ 31일 코스모스아트홀서 김성현-최원휘-유신희와 협연
▶ 내년 초 프라하서 ‘리골레토’ ‘로미오와 줄리엣’ 공연


[스포츠한국 조성진 기자] 오페라 작곡가들의 명작들이 각기 그만의 분위기와 특장점이 있듯이 이를 노래하는 성악인 역시 천차만별이다. 희극적인 데 두각을 나타내는 성악인이 있는가 하면 비극적, 서정적, 아름다움, 파워풀함 등에 강점을 보이는 성악가들도 있다.

라이프치히 극장 전속 솔리스트, 한국인 최초 베를린 국립극장 오페라 스튜디오 소속 활동 등 독일을 비롯한 유럽 지역에서 가장 활발한 활약상을 보여주고 있는 테너 김경호(40)는 비극에 강하다. 특히 영웅적 대서사시적 캐릭터에선 세계 최강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성악가 중 하나다.

김경호는 그동안 푸치니 ‘라보엠’에 가장 많이 출연해 그 탁월한 재능을 선보였다. 뿐만 아니라 그는 베르디에서도 돋보이는 역량을 발휘한다. 세계의 오페라계가 베르디 작품으로 그의 맹활약을 기대하고 있을 만큼.

세계 무대에서 활약하는 동료 성악가들은 김경호에 대해 “초고음역에서도 범접할 수 없는 레가토의 경지”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는다.

테너 김경호는 어떠한 초고음역에서도 음악의 라인이 끊기지 않는, 극히 자연스러운 레가토 창법 구사로 유명하다. 그만큼 폐활량이 좋고 안정된 호흡을 가졌다는 말이다. 이처럼 비극적이며 영웅적인 오페라를 선호하는 김경호에 대한 첫인상은 극히 내성적이며 말이 별로 없는, 수줍음을 잘 타는 사람이었다. 저렇게 조용하고 잔잔해 보이는 캐릭터가 무대에선 어떻게 그처럼 강력한 존재감을 발휘할까 라는 의문이 들 정도였다.

김경호는 잘 빠진 몸매에 훤칠한 키, 육중한 몸집의 일반적인 성악인들보다 모델에 더 가까웠다. 패션 화보 촬영도 잘 소화할 수 있을 만큼.

음악가가 되기 위해 예고 때부터 전공을 하는 게 일반적인 반면 김경호는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음악대(한예종)로 입학해 세계 최고가 된 특별한 사례다.

김경호는 한예종에 이어 베를린 국립음대(UDK) 마스터 졸업 후 2011년부터 13년까지 한국인 최초 베를린 국립 오페라극장 오펀스튜디오 소속으로 활동했다. 당시 심사위원은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로 유명한 다니엘 바렌보임이었다.

오디션 당시 다니엘 바렌보임은 그의 노래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여 김경호는 “아, 떨어졌구나”라고 생각을 했는데, 정작 합격 통보를 받자 너무 놀랐다고 한다.

“당시 오디션에서 많이 긴장해서 원래의 컨디션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더욱이 다니엘 바렌보임이라는 세계적인 거장이 바로 제 눈앞에서 일거수일투족 심사를 하고 있다고 여기니까 더욱 부담감이 컸어요.”

그 분야에서 정상에 있는 세계적 테너 김경호만의 지극히 겸손한 표현으로 들렸다.

사실 김경호는 특히 ‘하이 C’를 극히 자연스럽게 잘 소화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초고음역대를 오가는 테너들 사이에서도 하이C는 성악가에게 고통스러운 음역대다. 이러한 음역대를 그는 매우 유려하고 강렬한 임팩트로 연출해내는 것이다. 당시 다니엘 바렌보임도 김경호의 이러한 역량을 높이 샀던 것으로 보인다.

김경호는 2017년부턴 독일 라이프치히 극장 전속 솔리스트로 일했고 드레스덴 젬퍼오퍼, 베를린 슈타츠오퍼, 슈투트가르트, 라이프치히, 도르트문트, 뉘른베르크, 프라이부르크, 다름슈타트, 벨기에, 스위스, 체코 프라하, 슬로바키아 등등 여러 곳에서 주연으로 활약했다. 이외에 러시아 볼쇼이극장, 상트 페테스부르, 함부르크, 베를린, 잘츠부르크 등 여러 곳의 오페라 갈라 콘서트에도 출연했으며 2016년엔 세계적인 레이블 낙소스(Naxos)에서 음반을 발매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세계 전역을 돌며 최고의 무대에서 최상의 명연을 들려주고 있는 김경호임에도 여전히 그는 앞으로 꼭 해보고 싶은 역할이 있다.

“비극의 절정이랄 수 있는 베르디 ‘돈 카를로’를 꼭 해보고 싶어요.”

베르디의 중기 오페라를 대표하는 ‘돈 카를로’는 베르디의 오페라 중에서 그 규모가 가장 크고 공연 시간도 5시간이 넘는 장편이다. 뿐만 아니라 최소 2개 이상의 오케스트라가 필요하고 대규모 합창단과 무용단 등 많은 스텝과 장치가 요구되는 초대형 오페라다. 공연 시간이 긴 만큼 성악가에겐 그만큼 고도의 집중력과 엄청난 체력이 요구된다.

“그동안 저는 좀 더 완벽하게 노래하는 쪽으로만 많은 신경을 썼던 것 같아요. 하지만 이젠 연기도 잘하는 성악가도 되고 싶어요.”

동명이인 김경호는 대중음악계의 고음 지존 명 보컬로 잘 알려져 있다. 테너 김경호와 록 보컬 김경호, 모두 고음 지존 아닌가.

파워풀하고 강렬한 임팩트를 전해주는 이 두 사람이 한무대에서 ‘김경호, 김경호를 만나다’라는 제하의 무대를 꾸민다면 대단히 흥미로울 것 같다. 사실 테너 김경호는 예전에 노래방에서 록 보컬 김경호의 곡을 자주 부를 정도로 좋아했다고 한다.

예정된 스케줄이라면 그는 지금쯤 암스테르담 오페라 무대에서 열연 중이었겠지만 코로나19로 인해 대부분의 공연이 취소 또는 연기된 상태다.

테너 김경호는 오는 31일(월) 서울 서초동 코스모스아트홀에서 김성현-최원휘-유신희 등과 ‘빅 4테너’ 공연을 치른다. 이 무대에서도 그의 정평 높은 능란한 하이 C 음역 구사와 존재감이 빛나는 명연을 감상할 수 있다.

김경호는 이 공연에 이어 9월 출국해 내년 1월과 3월 프라하에서 ‘리골레토’와 ‘로미오와 줄리엣’ 공연을 앞두고 있다.

BTS(방탄소년단) 등이 K-팝의 위상을 세계 무대의 중심에 서게 하고 있는 현재 테너 김경호 또한 세계 오페라계에서 한국 성악가의 존재감을 초일류로 끌어 올리는 데 지대한 역할을 하고 있는, 또 하나의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브랜드 상승의 일등공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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