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 조민욱 기자] 요즘같은 백세시대에 환갑 나이? ‘명함’도 못내미는 시대다. 지하철 경로석 한자리를 차지해도 이상하지 않을 시절도 있었지만 호랑이 담배피우던 옛날이야기처럼 이제는 언감생심이다.

그러나 ‘환갑’은 환갑이다. 다른 이의 인생까지야 헤아릴 수 없다해도 적어도 자신이 살아온 삶의 조각들을 한번쯤 맞춰보고 싶은 그런 나이다. 과연 나는 어떻게 살아왔지?

시인 박광덕도 그랬던 모양이다. 아직 환갑까지는 2년이 남았지만 30년 시인으로 살면서 시집 한권 없이 자신의 삶은 흔적을 드러내보이지 못한 아쉬움을 첫 시집 ‘어둠 끝에서 물구나무서기’(천년의 시작 시작시인선)를 통해 한꺼번에 배설했다.

시인은 1990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했다. 꾸준히 시도 쓰고 단행본도 펴냈다. 자신의 진가를 드러낼 기회가 없었던 것을 한순간에 만회라도 하듯 ‘어둠 끝에서 물구나무서기’ 속에서 마음껏 고백을 하고 있다.

무엇보다 시가 쉽고 편하다. 찹쌀떡이 등장하고, 태종대가 나오고, 성인나이트클럽도 제목의 한자리를 차지한다. 생활 속에서 만나는 모든 것이 부제가 되고 시가 되고 있다.

하지만 시집의 조각들을 맞춰보면 시인이 살아온 삶의 서사를 알아챌 수 있다. 유성호 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는 이 시집을 `애잔하고 융융한 서정적 기억의 문양들‘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는 “시집을 일별했을 때 그것이 소통 지향의 언어로 짜여있다는 점을 가장 먼저 느끼게 된다”면서 “박광덕은 의뭉한 난해성을 본질적으로 멀리하고 있다”고 짚어낸다.

또 하나 시인은 `시인의 말‘을 통해 집착과 미련이 있으면 하루라도 빨리 털어내라고 말한다. 아무리 소중한 것이라도 세월이 지나 돌이켜보면 부질없기가 1도 없다고 일갈하고 있다.

`그날, 어둠의 벼랑 끝에 서서 잠 못 들었던 시간들은 내게 무엇이었던가.
한줌의 빚마저 찾을 수 없던 그 시절은 어쩌면 이다지도 빠르게 스쳐 지나가 추억으로 남게 되었던가.
그 흑백의 상흔들은 어찌하여 아직도 낭자하게 선혈을 흘리고 있는가.

이렇게 놓으면 될 것을 참 오래도 잡고 있었다.'

시집은 60편 3부로 이뤄졌다. 120쪽/천년의 시작/1만원

지금 사랑 나중 사랑

나 떠난 뒤 후회하지 말고
곁에 있을 때 사랑한다고 말해요,
지금!

뭔 말이야
당신 사랑하는 거 정말 몰라
시든 풀잎처럼 말하지 말고
나 없으면 잘 살 수 있을 것 같아
횃대 위 장닭처럼 뻐기지 말고
다섯 살 아이처럼 날뛰지 말고
열네 살 아이처럼 사고 치지 말고
스무 살 아이처럼 떠나가지 말고
예순 살 아이처럼 못되게 퉁퉁거리지 말고

지금 말해요, 사랑한다고
속 깊은 사랑
나중에 말한다고 아끼지 말고
지금 말해요, 사랑한다고
빨리!

박광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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