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제공=코스모스악기 photo by Grimmza

[스포츠한국 조성진 기자] 세계 최고의 피아노로 평가받는 스타인웨이(Steinway)의 콘서트&아티스트 부문 책임자 게릿 글라너(Gerrit Glaner, 62)가 WCN(대표 송효숙) 주최 주관 '스타인웨이 위너 콘서트 인 코리아(에릭 루 공연)'를 위해 처음으로 한국을 찾았다.

게릿 글라너(자신의 이름을 이렇게 발음한다고 해서 표기방식도 그에 따른 것임)는 마르타 아르헤리치에서 조성진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의 유명 피아니스트들 공연은 물론 쇼팽 콩쿠르를 비롯한 세계적인 피아노 경연에 이르기까지 스타인웨이 아티스트와 퍼포먼스 관련 모든 것들을 총괄하는 인물이다. 지금까지 수천여명이 넘는 스타인웨이 피아니스트들과 누구보다 가까운 거리에서 함께 소통해 오고 있는 스타인웨이의 살아있는 역사랄 수 있다.

192cm가 넘는 장신에 일반 성인의 발 사이즈를 연상케 하는 커다란 손으로 제스처를 취하며 친절하고 인상적인 매너로 인터뷰에 응하던 모습은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평소 교류하는 한국 지인들도 많고 그외 각종 커뮤니티 등을 통해서 이미 한국에 대해선 많이 들어왔던터라 첫 방문임에도 매우 흥분되고 너무 좋습니다."

그는 싸이의 '강남 스타일'에서 BTS(방탄소년단) 등의 K팝, 윤정희 주연의 '시인'을 비롯한 여러 한국영화들에 이르기까지 K 컬처 전반에 대해서도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또하나의 걸출한 피아니스트인 백건우를 통해 그의 부인 윤정희를 알게 됐고 윤정희로 인해 한국영화에 대한 이해도도 높아지게 된 것.
 

사진제공=코스모스악기 photo by Grimmza

독일 함부르크에서 태어난 게릿 글라너는 음악애호가였던 부모의 영향으로 어릴때부터 음악을 접했다.

그는 1991년 EMI에 입사해 미디어 커뮤니케이션을 담당했고 93년 퇴사후 95년부터 2002년까지 유니버설뮤직에서 클래식 마케팅 일을 하며 클래식계에 대한 전반 스페트럼을 넓혀 갔다. 그리고 얼마후 스타인웨이로부터 함께 일해보자는 제의를 받고 혼쾌히 수락했다.

"스타인웨이는 곧 내 꿈이었으니까요."

게릿 글라너는 클래식 뿐만 아니라 재즈 매니아이기도 하다. 최근에도 다이애나 크롤, 제이콥 칼존 등을 비롯한 재즈 아티스트들을 즐겨 듣고 있다. 젊은 시절 그는 재즈클럽 '버드랜드'에서 바텐더로 일하며 많은 재즈 뮤지션들의 공연을 접했다. 그중에서도 특히 아트 블래키 재즈메신저스, 몬티 알렉산더, 랄프 쿤, 아네트 콥(특히 그의 색소폰 사운드는 현재까지 그가 좋아하고 있다고), 쳇 베이커 등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쳇 베이커는 정말 대단히 인상적이었어요. 그가 매우 부드러운 음색으로 연주를 시작하자 그 감미로운 톤에 일순간 주변이 조용해졌고 모두가 귀를 기울였죠. 고요와 정적 속의 명연이랄까. 이 연주 얼마후에 그는 자살로 삶을 마감해 더욱더 당시의 연주를 잊을 수 없습니다."
 

자료에 의하면 그 자신도 어릴때 피아노를 배운걸로 나와 있어 연주 실력은 어느 정도인지 궁금했다.

"오호, 손가락은 형편없지만 듣는 귀는 매우 좋습니다. 성가대에서 노래를 했고 그외 클라리넷을 연주할 줄 아는 정도랄까요."

스타인웨이 콘서트&아티스트 책임자로서 그동안 쇼팽 콩쿠르,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게자 안다 콩쿠르 등등 세계적인 피아노 경연 다수에 관여하고 있는데 각 콩쿠르마다 어떤 차이점(특장점)이 있을까?

"바르샤바 쇼팽 콩쿠르는 오로지 쇼팽이라는 작곡가 한 사람에게 포커스를 맞춘 대단히 특화된 경연이죠.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역시 최고 수준의 레벨과 엄청난 정신력을 요구하며 청중 역시 쇼팽 콩쿠르 만큼 수준높고 비판적입니다. 게자 안다 콩쿠르는 정말 거대한(huge) 레퍼토리를 요구하기 때문에 가장 어려운 피아노 콩쿠르 중 하나로 정평 높아요."

현재 전세계 '스타인웨이 아티스트'는 2000여명 이 넘는데 그많은 사람들을 관리/교류하는 일도 쉽지 않을 것 같다. 어떤 노하우가 있을까?
 

사진제공=코스모스악기 photo by Grimmza

"스타인웨이 아티스트는 현재 2200여명이 넘습니다. 우리는 최대의 결과치를 갈망하고 그러기위해 최대한 스피릿(spirit)을 공유하고 있어요."

지금까지 스타인웨이가 제작한 피아노는 60만대가 넘는다. 그중 '스피리오'는 스타인웨이 사상 가장 획기적이고 색다른 작품이랄 수 있다. 스피리오에 대한 그의 견해가 궁금했다.

"설립자 하인리히 엥겔하르트 스타인웨이는 '가능한 한 최고의 피아노를 만들자'를 모토로 했습니다. 회사의 모든 구성원들은 이 말의 의미를 알고 그걸 따르고 있죠. 차세대 완벽한 크래프트맨십을 위해 우린 언제나 혁신(이노베이션)을 갈망했고 이제 오늘날 "스피리오"가 피아노 세계에서 많은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이 (이러한 혁신의)좋은 예입니다. 스피리오는 상당한(quite) 혁명입니다. 어디서나 오리지널 피아노 사운드를 낼 수 있고 하이파이 장비들이 연출하는 사운드보다 더 내추럴한 매력을 지녔죠."

"세계 정상의 피아니스트들이 스타인웨이를 고집하는 이유는 그들에게 자신만의 고유한 사운드를 내게 해줄뿐 아니라 그들 전체의 개성을 보여주기 때문이죠."

스타인웨이를 사용했던 많은 명연주자들 중 특히 스타인웨이가 지향 추구하는 소리, 스타일, 격조에 가장 적합하게 연주한 사람은 누구일까?

"과연 누가 최고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혹자는 호로비츠나 루빈슈타인을 꼽을수도 있겠지만 스타인웨이는 결코 어느 특정한 사운드를 지향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피아니스트들이 각자 선택할 수 있는 다양한 방식의 소리를 추구하죠. 그것이 바로 매직이죠. 같은 피아노로 여러 연주자들이 각자 다르게 소리를 냅니다. 스타인웨이야 말로 연주자들이 원하는 음악적 상상력을 비추는 거울이랄 수 있습니다."

피아노 및 스타인웨이 전문가로서 그간 쇼팽 콩쿠르 우승자들 중 누구를 최고로 꼽나?

"그들은 모두 각자 너무 다르고 또 각자 너무 탁월합니다. 짐머만(치머만)이나 블레하츠? 아니면 아르헤리치나 폴리니? 또 아니면 조성진? 결코 누구 한사람을 언급하긴 힘들어요. 예를들어 오래된 음반 중에서 마르타 아르헤리치가 연주한 스케르초 C#마이너는 듣는이에게 환희를 줍니다. 반면 불과 2주전 크리스티안 짐머만이 브람스 리사이틀에서 앙콜로 연주한 마주르카는 아슬아슬했어요. 조성진의 2015년 중반경 연주는 그가 쇼팽 결선에서 피아노협주곡 e마이너와 스케르초 B플랫 마이너를 어떻게 마스터했나 알 수 있게 하죠."

에릭 루에 대해

"에릭 루, 그의 연주는 정말 소름이 돋을만큼 환상적입니다. 나는 그가 어떤 곡들을 연주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아요. 그를 생각하면 오로지 음악만 들립니다. 기술적으로 이미 완성됐고 내면적으로도 온통 음악적인 것으로 꽉 차 있는 상태입니다. 그만큼 그는 모든걸 갖춘 것이죠. 당시 17세의 나이로 피아노 콩쿠르에서 연주한 이후 4년이 지난 지금 에릭 루는 마치 크레센도처럼 빠르게 진화하고 있습니다."

2002년부터 스타인웨이 콘서트앤아티스트 부문 책임자로 일하고 있는데 이 일을 하며 가장 보람을 느낄 땐 언제? 반대로 가장 힘들땐?

"워낙 뮤지션들을 존경하므로 내가 하는 일을 사랑합니다. 이 일을 하다보니 여기저기에서 이메일이 정말 많이 오는데 그 때문에 이메일 계정을 열때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습니다."

직접 '스타인웨이 위너 콘서트' 수상자를 선발하고 있는데 특별히 자신만의 중요한 선발기준이 있다면?

"경연은 경연일 뿐입니다. 그것만으로 모든걸 판단해선 결코 안돼죠. 예선에선 3~4등한 사람이 결선에서 1등을 할수도 있고 또 예선 1등이 결선에선 탈락할수도 있는 겁니다. 1차 예선과 2차 예선에서 탁월한 성적을 올렸다고 해도 결선을 망치면 탈락시키는게 일반적인 심사 방식이죠. 하지만 제 경우엔 1~2차에서 충분히 실력을 봤으므로 그가 결선의 순간 실력 발휘를 못했다해도 그 가능성을 보려는 쪽이죠. 경연이라는 짧은 찰나에만 집착하지 말고 길게 봤으면 합니다. 콩쿠르만을 놓고 예술의 답을 정할순 없어요."

조성진, 손열음, 선우예권, 이진상, 김선욱 등등 한국 출신의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들에 대한 솔직한 견해(평가)는?

"그들이 아주 어릴때부터 오랫동안 지켜봤기 때문에 그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가능한한 도달할 수 있는 것들의 가장 위대한 사례들이죠. 음악적으로도 매우 높은 수준에 와 있고 기술적으로도 대단합니다. 한국 출신의 연주자들이 세계적 권위의 콩쿠르 우승도 계속해오고 있구요. 내가 보기엔 한국 피아니스트들에 대해선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 같습니다."

게릿 글라너는 애주가이기도 하다. 특히 진토닉, 그리고 네그로니 칵테일을 즐겨 마신다고.

스타인웨이를 짧게 한문장으로 정의한다면? "탁월함의 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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