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산나 타마로 장편소설 '영원의 수업' 출간

"만일 내가 왼쪽이 아니라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었더라면, 늦잠을 잤더라면, 그 전화를 받지 않았더라면…모든 비극에는 '만일'이라는 비가 쏟아져 내리지."

심장전문의로 잘 나가던 의사 마테오는 사고로 사랑하는 아내 노라와 아들 다비데를 동시에 잃는다. 행복의 모든 것이라고 믿었던 아내와 아들이 그처럼 허망하게 사라지자 그는 "삶의 지평선"을 잃고 허우적댄다.

자신의 운명에 끔찍함이 끼어든 구약의 욥처럼, "누구에게도 나쁜 짓을 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마테오는 절규한다. '만약'이라는 상상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그를 그림자처럼 뒤따라 다닌다.

그는 '상상의 늪'에서 빠져나오려 알코올과 무의미한 섹스에 중독된다. "먹고, 자고, 마시고, 섹스하는 건 개도 해…우리는 감춰진 부분을, 그러니까 일상의 가장 은밀한 부분에 숨겨진 걸 보는 법을 배워야 해"라는 죽은 아내의 말을 떠올리면서.

이탈리아의 소설가 겸 영화감독 수산나 타마로의 '영원의 수업'은 가족의 죽음으로 고통받는 한 남자가 인생의 깊은 의미를 깨닫는 과정을 다룬 장편소설이다.

소설은 "모든 사물을 현미경 렌즈로 바라봤던" 마테오가 고통과 함께 한 뼘 성장하는 이야기를 그렸다. 의사였던 그가 산에 은둔하면서 자신에게 벌어졌던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으로 소설은 이뤄졌다.

저자는 삶이란 유리알처럼 깨지기 쉽고, 따분한 직장과 친구 하나 없는 인간관계를 견뎌야 하는, 영혼을 단련하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마테오에게 찾아든 비극을 중심으로 항해사를 꿈꿨으나 시력을 잃으며 꿈을 접어야 했던 마테오 아버지의 이야기, 삶의 이면을 바라보는 능력이 탁월했던 아내의 죽음, 루마니아에서 건너온 이민자의 이야기가 중간 중간 섞여 있다. 온통 잿빛이다.

우울한 내용으로 채색돼 있지만 소설 전체를 아우르는 명상적인 톤 덕택에 읽는 독자들에게까지 그 우울함이 감염되지 않는 독특한 소설이다. 섣불리 답을 제시하지 않는 이 소설은 죽음을 자연스레 받아들이고, 삶의 균형을 유지하라고 조언한다.

"삶은 때때로 폭풍우가 몰아치기도 하고, 때로는 파도가 잔잔하기도 한 바다와 같다는 점을 항상 의식하면서 절대 작아지지 말고, 절대 자신의 존엄을 손상시키지 말아야 한다. 폭풍우가 칠 때나 파도가 잔잔할 때나 모두 통제할 수 있는 위치에 똑바로 서 있는 게 무엇보다 중요한 일임을 명심해야 한다."(239쪽)

판미동. 이현경 옮김. 284쪽. 1만2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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