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던 케임브리지대 교수 '민주주의의 수수께끼' 번역 출간

민주주의란 단어는 그 자체로 가치를 의심할 여지가 없는 개념처럼 여겨지곤 한다. 어떤 정치체제를 과연 '최선'으로 규정할 수 있는지는 의문으로 둔다 치더라도, 현존하는 정치 이념 가운데 '인민의 자기 통치'라는 이상이 가장 바람직하다는 주장에는 토를 다는 사람이 거의 없다.

그러니 지금 상당수 국가가 채택한 근대 자본주의적 대의정치를 두고 "이걸 왜 민주주의라고 불러?"라고 묻는다면 이상한 사람으로 몰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치학자 존 던 영국 케임브리지대 명예교수는 자기 저서 '민주주의의 수수께끼'(원제 'Setting the People Free')에서 이처럼 '불경한' 질문을 던진다.

저자는 오늘날 정당성을 추호도 의심받지 않는 통치 모델인 민주주의가 역사적으로는 아테네 민주주의 이후 무려 2천여년간 세계 거의 모든 곳에서 사라졌다는 데 주목한다. 그처럼 절대적 우월성을 인정받는 체제가 왜 까마득한 옛날 '잠깐' 번성했다가 모습을 감춘 뒤 2천여년이 지나서야 다시 모습을 드러냈을까.

책은 '데모크라시'(democracy, 민주주의)라는 단어가 유래한 고대 아테네 도시국가에서 홉스와 스피노자 시대 유럽, 18세기 미국과 네덜란드, 프랑스에 이르기까지 광대한 시공간을 넘나들며 이 질문의 답을 찾아간다.

저자는 민주주의의 이른바 '원형'으로 불리는 고대 아테네의 직접민주주의와 오늘날의 대의제 민주주의를 역사적으로 들여다보면서 "과연 이걸 민주주의라 부를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독자에게 계속해서 던진다.

예컨대 고대 아테네에 민주주의의 제도적 틀을 도입한 클레이스테네스는 사실 민주주의에 대한 도덕적·지적 확신을 지닌 인물이 아니었다고 한다. 그에게 민주주의란 자신의 경쟁 세력을 견제하는 데 필요한 지지를 확보할 편의적 방편이었고, 그 속성은 배제적이고 해외 침탈적이었으며 패권적이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대의제 민주주의 역시 전혀 호의적으로 서술되지 않는다. 대의제 모델의 창시자들인 매디슨이나 슘페터 등은 '정치인에 의한 지배'를 이야기했을 뿐 출발점에서는 민주주의를 부정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책은 이처럼 민주주의에 대해 우리가 일반적으로 지닌 상식이나 기대를 뿌리부터 뒤흔든다. 그러면서 오늘날 근대 자본주의적 대의민주주의라는 체제가 전 지구적으로 확산한 배경에는 민주주의에 대한 정치적 기대 수준의 하락과 서구 정치 지도자들의 정치적 필요가 있었을 뿐이라는 다소 냉소적인 분석을 내놓는다.

그렇다고 저자가 민주주의를 무조건 비판하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민주주의가 "좋은 어떤 것도 보장해 주지 않는다"고 지적하면서도 "무언가 좋은 것을 보장한다는 주장을 가장 끈덕지게 내세우는 제도이며, 그런 주장에 일말의 설득력을 부여하기 위해 형성되고 재형성되는 제도"이기도 하다고 평가한다.

후마니타스. 강철웅·문지영 옮김. 1만8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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