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류 중편소설 다섯 편 담은 '55세부터 헬로라이프'

연합뉴스
아이들은 다 키워놓고, 남편은 퇴사하고, 이제 내 인생 좀 살아보려고 하는데, TV만 보는 남편은 눈에 자꾸 거슬린다. 참고 살아야 하나, 아니면 헤어져야 하나?

'55세부터 헬로라이프'라는 제목만 놓고 보면 퇴직 후 이제 즐길 일만 남긴 중년층 혹은 노년층의 이야기를 다룬 로맨스 소설처럼 보인다. 그러나 소설뿐 아니라 라디오 진행, 영화감독, TV 토크 쇼 진행 등 활동영역을 넓혀 온 무라카미 류(63)는 이제 다시 청춘처럼 고민을 시작할 때라고 말한다.

최근 번역돼 출간된 무라카미 류의 '55세부터 헬로라이프'는 경제적 혹은 정서적으로 불안한 중년들의 이야기를 묶은 중편 소설집이다. '결혼상담소' '하늘을 나는 꿈을 다시 한 번' 등 다섯 편의 이야기를 담았다.

'결혼상담소'는 50대 중반, 남편과 이혼한 한 여성의 홀로서기를 그린 작품이다.

TV만 보려는 남편과 이혼한 나카고메 시즈코. 그러나 턱없이 부족한 위자료로는 살 길이 막막하다. 온갖 비정규직을 전전한 그는 노후를 안정적으로 보내고자 재혼을 고려한다.

결혼상담소를 통해 무려 열네 번의 맞선을 보지만, 과연 "인간은커녕 포유류로도 보이지 않는" 변변치 못한 남자들만 만남의 자리에 나오는 데 실망을 금치 못한다. 그러던 어느 날, 나카고메는 연회 참석차 들린 호텔에서 30대 남성을 만나고 그의 이별이야기에 빠져든다.

소설은 50대 후반에 이른 나카고메의 좌충우돌을 그린다. 평생을 상대방의 입장만 생각하며 보낸 그는 매일 150분씩 한류 드라마를 보던 중 삶이 변해가는, 변곡점을 체험한다.

"모르긴 몰라도 한류 드라마의 영향이 아닐까 싶다…. 등장인물들은 속 시원하게 할 말을 다 한다. 너무 거침없이 내뱉는 소리에 돌이킬 수 없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한다. 게다가 환영받지 못하는 장소, 이를테면 연적의 집 같은 곳에도 태연하게 쳐들어간다. 상대방의 입장은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나는 결혼 전이나 후에도 주변 사람이나 상대방의 입장만 생각하며 살아온 게 아닐까?"(16쪽)

힘든 일상이지만 그래도 과거로는 회귀하지 않겠다는, 미래를 바라보는 나카고메의 태도가 눈길을 끄는 작품이다.

'하늘을 나는 꿈을 다시 한 번'은 작은 출판사에서 최근 정리해고 당한 인도 시게오라는 남자의 이야기다. 인도 시게오는 정리해고 후 다른 일거리를 찾아보려 애쓰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아들 대학 학비도 내야하고, 모아둔 돈도 없는 그로서는 길거리의 노숙자들을 볼 때마다 왠지 모를 불안감에 휩싸인다.

'캠핑카'는 아내에게도 무시당하고 구직활동도 여의치 않은 한 중년 가장의 불안감을, '펫로스'는 남편보다 더 신경을 쓴 강아지의 죽음에 충격받은 중년 여성의 심리상태를 소재로 했다. '여행 도우미'는 아내와 헤어지고 나서 헌책방에서 추리소설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던 한 남성이 매일 헌책방을 찾아오는 여자를 사모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북로드. 윤성원 옮김. 376쪽. 1만2천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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