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낙청 교수 '문화의 안과 밖' 강연서 주장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는 22일 근대란 적응과 극복이라는 '이중과제'를 해결해야 하는 대상이라며 한반도 분단체제 극복 역시 이중과제의 전형적 사례라고 주장했다.

백 교수는 이날 서울 종로구 안국빌딩 W스테이지에서 열린 '문화의 안과 밖' 강연에서 '근대, 적응과 극복의 이중과제'를 주제로 이야기하면서 "한반도 분단체제의 극복은 한반도에서의 근대 적응 노력이 근대 극복의 노력과 합치됨으로써만 가능해진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근대에는 정치적 민주주의나 과학 발달 등 성취할 만한 특성과 함께 식민지 수탈, 노동 착취 등 바람직하지 않은 특성도 있으므로 성취와 부정을 겸한다는 의미에서 '적응'이라는 표현이 바람직하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이같은 적응 노력은 극복의 노력과 일치함으로써만 실효가 있다고 강조했다.

백 교수는 이런 관점을 한반도 분단 상황에 적용하면서 근대성의 주요 지표 중 하나로 '국민국가'를 들며 "한반도에는 통일된 근대 국민국가가 존재한 적이 없다. 남북한 모두 정상적 국민국가가 아니라 '결손국가'"라고 규정했다.

그는 결손국가란 근대성과 관련한 형식의 문제여서 인권, 법치, 인민의 생활수준 등 통치의 내용에 관한 개념인 '불량국가'와는 다르다고 분명히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도 한반도라는 공간에서 분단국가라는 형식상 결손이 내용의 불량성과 관련이 있는지 살펴볼 것을 주문했다.

이와 관련해 백 교수는 "1945년 이후 한반도에서 주민 절대다수 의사에 반하는 외세의 결정으로 분단이 강요된 결과 2개의 결손국가가 탄생했다"며 "그처럼 비민주적이고 타율적인 분할은 민주주의와 민족적 자주성 면에서 심각한 문제점을 지닌 사회를 낳을 수밖에 없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민주주의 측면에서 북한에 대해 "분단체제 장기화와 더불어 사회주의보다 왕조적 성격이 점점 짙어져 이제는 '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라는 주장이 세계에서 신뢰를 잃은 지 오래"라고 말했다.

이어 남한을 두고서는 "1987년 독재정권을 마감하고 상당한 수준의 민주화를 달성했다"면서도 "분단체제 속 민주주의는 항상 위태로운 성격이었고 이명박과 박근혜 정부하에서 역행을 겪으면서 다시 불량상태가 두드러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한반도 주민들이 근대에 더 잘 적응하려면 분단체제를 극복해야 한다"면서 "통일 국민국가를 보유하지 못한 탓에 한반도 주민이 세계의 '국가 간 체제'에 정상적으로 참여하는 일이 70년 가까이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백 교수는 2000년 6월 남북 정상회담에서 남측의 '연합제'와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 간 공통성을 인정키로 하는 등 단계적 화해와 재통합 추진에 합의한 점을 '대안적 구상'으로 거론하며 "이는 뒤늦게 정상적 국민국가를 건설하는 것과는 질적으로 다른 근대 적응의 길을 열어놨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런 방식이 국가권력뿐 아니라 시민사회가 통일 과정에 참여할 공간을 제공한다면서 "왕성한 시민 참여로 동아시아 지역의 화해와 연대에도 보탬이 될 새로운 형태의 복합국가가 한반도에 건설된다면 지역적·지구적 차원의 근대 극복에 한 걸음 다가서는 성과가 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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