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자 단편 모음집 '건너편 섬' 출간

건너편에 섬이 있다. 문득문득 넘어갈 용기를 내보지만, 그 너머에서는 때로 건너오라고 손짓을 하건만, 발걸음을 뗄 수 없다.

"고비에서 자신을 놓치지 않았다는 걸 알아차렸을 때, 문득 깊은 기쁨을 맛보는 일은, 그 여자만의 것이었다."('건너편 섬' 263쪽)

중견 소설가 이경자 씨가 25년의 집필 활동에서 틈틈이 쓴 단편소설을 모아 '건너편 섬'(자음과모음)으로 펴냈다.

페미니즘에 천착해 여성의 시각으로 우리 시대 삶의 질곡을 다룬 작가. '건너편 섬'을 비롯한 8편의 단편은 모두 여성의 상처와 고독에 대한 탐구 보고서와도 같다. 전쟁과 분단의 아픔 또한 그 사이에 아로새겼다.

표제작 '건너편 섬'은 '여성'이라는 자아를 깊이 들여다본다.

어슴푸레한 방 안에서도 대낮과 같은 눈으로 집 앞 공사장 옆 공터를 주시하는 여자. 그 터를 매일 밤 찾는 자동차와 그 차 주인일 법한 한 남자의 자취를 좇는 일은 어느덧 일과가 된다. 출가해 집을 떠난 자식들. 홀로 된 그녀에게 그간의 생업이던 식당과 파출부 일은 여가가 됐지만, 놓을 수가 없다.

귀가하면 "저 돌아왔어요" 하는 그녀. 말린 꽃송이로 만든 액자, 주방의 그릇들, 옷과 화분들이 인사를 받는다. 그렇게 일상의 고독은 자연스럽지만, 마음의 촉수가 울타리를 넘는 것조차 어쩔 수는 없다.

"얼굴이 왜 빨개져. 그 남자랑 벌써 잤구먼." "제가 내후년에 환갑이에요." "그게 뭔 대수야." ('건너편 섬' 259쪽)

여자는 고백한다. 마음이 자신의 바깥으로 나가서 다른 것에 매달리기 시작하면 얼마나 외로워지는지 모르겠다고. 그게 자식이든, 이웃이든, 모르는 남자이든, 언제나 같다고. 그런데 자신의 의지로는 넘지 않는다. 고비를 넘지 않는 건 그 여자만이 누리는 깊은 기쁨이다.

'콩쥐 마리아'는 '양공주' 출신 미국 이민자 마리아의 육체와 정신에 새겨진 깊은 상흔을 보듬어 안는다. 그 희생의 바탕 위에 올려진 회생의 역사를 비추며 넌지시 '손가락질하는 것이 옳으냐'고 묻는다.

'언니를 놓치다'와 '박제된 슬픔'은 전쟁과 분단 상황이 개인의 삶을 어떻게 짓이겨놓았는지 일깨운다. '박제된 슬픔'은 소설집에서 유일하게 남성 주인공 '석'의 시선을 따라 전개되지만, 그가 겪는 내적, 외적 갈등과 시련 또한 어머니와 아내, 외할머니와 맞닿아 있다.

'고독의 해자', '이별은 나의 것'은 여성 소설가인 화자를 앞세워 자전적 이야기로 읽힌다. 소설가이자, 아내로서, 또 엄마로서 여성이 겪어야 했던 아픔을 절절하게 토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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