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명 총 23년 징역형 선고, 9개월여 만에 사면

'선고는 징역 23년, 수감은 0년.'

1990년 이후 국내 10대 재벌총수 중 7명은 모두 합쳐 23년의 징역형을 선고 받았다. 그러나 집행유예로 풀려 나와 전혀 실형을 살지 않은 것으로 밝혀져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현실을 극명하게 드러냈다. 이들은 형이 확정된 후 평균 9개월 만에 사면을 받고 현직에 복귀했다는 점도 문제다.

14일 기업분석기관인 재벌닷컴에 따르면 1990년 이후 10대 재벌(자산 기준) 총수 가운데 7명이 총 22년6개월의 징역형을 선고 받았으나 모두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지난해 전체 형사사건의 집행유예 비율이 25%에 불과했던 것을 감안할 때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을 실감케 한다.

재벌총수들은 집행유예를 받은 처벌마저도 예외 없이 사면 받았다. 사면까지 걸린 기간은 285일로, 9개월 정도에 불과하다. 재벌총수들이 저지른 범죄는 횡령 및 배임이 5건으로 가장 많았으며, 이어 비자금 조성, 부당 내부거래, 외환관리법 위반, 폭력행위 등 죄질이 나쁜 중죄에 해당한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 사건으로 1996년 8월 법원으로부터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에 처해졌다. 또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선언으로 배임 및 조세포탈 행위가 밝혀지면서 2009년 8월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을 선고 받았다. 하지만 정부는 어려운 경제상황 타개 등을 이유로 길게는 402일, 짧게는 139일만에 이 회장을 사면했다.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의 경우 비자금 조성 및 횡령, 계열사에 손해를 끼친 혐의로 2008년 6월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을 선고 받았지만 3개월도 못돼 73일 만에 사면됐다.

최태원 SK그룹 회장도 SK글로벌의 1조5,000억원대 분식회계로 2008년 5월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을 선고 받았으나 78일만에 사면을 받았다. LG그룹 구본무 회장과 롯데그룹 신격호 회장은 불법 대선자금 사건으로 조사를 받았으나 징역형 이상을 선고 받지 않았다.

김승연 한화 회장은 1994년 1월 외환관리법 위반으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 2007년 9월에는 유명한 북창동 웨이터 폭행사건으로 '징역 1년6개월, 집행유예 3년'을 선고 받았다.

두산그룹은 같은 사건으로 형제가 나란히 징역형을 선고 받았다. 박용성 전 회장과 박용만 회장은 횡령 등으로 2006년 7월 각각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 '징역 3년, 집행유예 4년'을 판결 받았지만 모두 사면됐다.

10대 재벌이 아니더라도 대기업의 오너들은 죄를 저질러 징역형을 선고 받았어도 실형을 산 경우는 거의 없었다. 이 같은 사실이 인터넷을 통해 알려지면서 누리꾼들은 '유전무죄 무전유죄' '헌법1조 대한민국은 재벌공화국이다' '부자 감세, 퍼주기 그만해라' 등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재벌총수들의 검찰조사와 법원공판은 현재진행형이다. 문제는 징역을 선고 받고 집행유예로 풀려나는 전례가 계속 되느냐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계열사 자금 수백 억 원을 횡령한 혐의로 동생 최재원 부회장과 함께 기소된 상태다. 내달 2일 첫 공판이 열린다. 그럼에도 최 회장은 14일, 최근 지분을 인수한 하이닉스의 대표이사 회장에 선임돼 자격 논란을 빚고 있다. 하이닉스 이사회가 횡령 혐의를 받고 있는 최 회장을 새로운 '선장'에 임명한 명분은 '책임 경영'이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도 수천 억 원대의 횡령 및 배임 혐의로 기소돼 '징역 9년, 벌금 1,500억원'을 구형 받고, 오는 23일 1심 선고를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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