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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사장, 당신이 댐에 대해서 뭘 안다 그러시오. 어디서 댐에 대한 공부를 했소. 우리 일본공영은 도쿄대 출신 집단이며, 세계 모든 댐을 설계한 회사인데 소학교 밖에 안 나온 무식한 사람이 사력댐으로 고치면 지방 상수도 10개의 공사를 할 수 있는 돈을 절약할 수 있다느니, 무슨 그런 쓸데없는 소릴 해서 소란스럽게 만드시요."

1966년 어느 날 소양강댐 건설 방식을 둘러싸고 삼자 연석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일본공영의 사토 부사장과 건설교통부 전문가 그룹, 그리고 현대건설 정주영 회장과 기술진이 마주 앉았다. 소양강댐은 1957년 구상해오다 5·16 쿠테타 이후 건설교통부가 독립 부처로 승격하자 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핵심사업으로 추진했다.

건교부는 1962년 타당성 조사와 설계를 일본공영에 맡겼다. 댐 공사비의 상당 부분을 대일청구권 자금으로 충당하려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더욱이 일본공영은 태평양전쟁 중이었던 1944년 압록강에 수풍댐을 건설한 회사였다. 당시 수풍댐은 아시아 최대 규모였다. 현장 조사를 마친 일본공영은 콘크리트 중력식 설계안을 건교부에 냈다. 수풍댐을 건설한 일본공영 설계에 토를 달 전문가는 국내에 없었다. 1965년 준공한 국내 첫 다목적댐이었던 섬진강댐도 콘크리트 중력식이었다.

그런데 시공을 맡은 현대건설이 딴죽을 걸었다. 콘크리트 중력식보다는 자갈과 흙을 활용한 사력식이 낫다는 주장이었다. 더욱이 사력식으로 지으면 지방 도시 10곳에 상수도를 놓을 만큼의 경비도 절약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정주영의 제안으로 마련한 삼자대면에서 사토 사장은 학벌로 상대의 기를 꺾고 나왔다. 수풍댐 건설 경험에다 도쿄대 전문가라는 말에 정주영 사장은 할 말이 없었다.

정 사장이 자포자기하고 있을 무렵 실마리은 엉뚱한 곳에서 풀리고 있었다. 박정희 대통령에게 댐 건설 방식에 관한 보고를 하던 당시 건교부 장관이 단 사족이 빌미가 됐다.

"현대 정 사장 주장대로 사력식으로 건설하면 자칫 큰 일 날 수 있습니다. 건설 도중에 큰 비라도 오면 댐이 무너져 서울이 다 물에 잠길 테고, 그럼 정권이 흔들립니다."

대통령이 혹여나 비용이 싸게 먹힌다는 정주영의 제안에 넘어갈까 염려해 사력식 댐의 단점을 지적한 것이었다.

그러나 포병 장교 출신인 박 대통령은 건교부장관의 말을 거꾸로 알아들었다.

'건설 도중에 무너져도 서울이 물에 잠길 판인데, 큰크리트로 지었다가 인민군이 폭격이라도 하면 어떻게 될 것인가.'

생각이 여기에 미친 박 대통령은 사력식으로 건설 방식을 바꿀 것을 즉석에서 지시했다.

박정희 정부 3대국책사업으로 손꼽혀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과도 같았던 현대건설과 일본공영의 대결에서 현대건설이 막판 역전골을 넣은 셈이었다. 결과적으로 안보상 이유로 사력식이 채택된 것 같지만 경제적으로도 나름의 타당성이 있었다. 소양강댐은 국내 최대 댐이었다. 콘크리트 중력식으로 댐을 짓자면 엄청난 양의 시멘트와 철근이 필요했다.

하지만 당시로선 국내에서 그만한 양의 원자재를 구하기 어려웠다. 부득이 일본에서 수입해 올 수 밖에 없었다. 설계에서 자재까지 모두 일본에 의존한다면 조상의 피를 대가로 받은 대일청구권 자금을 고스란히 일본에 갖다 바치게 될 판이었다.

막대한 시멘트와 철근 대신 현장에 널린 자갈과 흙을 활용한다면 돈도 아낄 수 있을 뿐 아니라 원자재 운반비도 줄일 수 있었다. 이미 국내외 건설현장에서 산전수전을 겪은 정주영의 현장 지식이 도쿄대 출신의 일본공영 전문가보다 앞섰던 셈이다.

소양강댐은 경부고속도로, 지하철 1호선과 함께 박정희 정부의 3대 국책사업으로 꼽힌다. 공사기간만 1967년 4월15일부터 1973년 10월15일까지 5년 6개월이 걸렸다. 총공사비 290억원은 1967년 교육 예산(318억원)과 맞먹는 액수였다. 댐을 만드는 데 들어간 자갈과 흙은 3,500톤으로 당시 국민 1인당 7가마에 해당했다. 13.5톤짜리 덤프트럭으로 156만4,000번 실어 날랐다.

소양강댐이 수용할 수 있는 물은 29억톤으로 상암 월드컵 경기장을 600번 채울 수 있는 양이다. 수도권 주민 2,000만명이 1년간 쓸 수 있는 물이다. 자체로 20만kw 전력을 생산할 뿐 아니라 그 물로 하류의 의암·청평·팔당에 있는 3만4,000kw짜리 발전소 세 곳도 돌린다. 하지만 그 대가로 6개읍·면 38개리 4,600여 세대에 수몰의 아픔을 준 댐이기도 했다.

본격 수력발전시대열려… 전력생산 3배 증가

섬진강댐에 이어 소양강댐이 전기를 생산하면서 남한에서도 비로소 본격적인 수력 발전이 이루어졌다. 1955년 11만 3,000kw에 불과했던 수력 발전 설비는 1975년 32만9,000kw로 세 배가 됐다. 1980년대 200만kw를 넘었고, 2006년 현재 548만 5,000kw에 이른다.

소양강댐은 박정희 정부가 제1차 경제개발 계획 때부터 추진한 4대강 유역개발의 핵심사업이기도 했다. 한강·낙동강·금강·영산강 유역은 국토의 63.7%를 차지했다. 뿐만 아니라 인구의 62%, 경지 면적의 54%를 품었다.

소양강댐의 건설로 한강 유역의 홍수 조절과 농업 및 공업용수 공급이 가능해졌다. 낙동강 유역엔 안동댐, 합천댐, 임하댐, 영산댐이 건설됐다. 금강 유역엔 대청댐, 영산강 유역에는 장성댐, 담양댐, 대초댐, 동복댐과 영산강 하구언이 들어섰다.

2006년 현재 전국의 댐 및 저수지는 총 1만8,000개 정도로 추산된다. 이중 댐으로 분류할 수 있는 곳은 1,208개로 조사됐다. 다목적댐은 7개의 강과 하천에 15개가 건설됐다. 전력을 가장 많이 생산하는 곳은 충주댐으로 41만2,000kw 용량을 갖췄다. 댐이 가장 많은 강은 낙동강으로 5개의 다목적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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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년 수문을 개방한 소양강댐.
  • 故정주영 회장은 일본 기술진에 맞서 소양강댐을 사력댐으로 건설할 것을 주장해 이를 관철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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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2009/09/26 06:34:08   수정시간 : 2020/02/07 20:0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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