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로 본 대한민국 60년
서양인과의 신장차이, 1979년 : 0cm 2004년 : 5.3cm
남자평균 체중 변화, 1979년 : 60.7kg 2004년 : 70.1kg

1960년대 한국 최고의 섹시가이는 신성일이었다.

영화 ‘맨발의 청춘’(64년)에서 드러난 그의 상반신은 수십만 여성 팬에게 로맨틱한 상상을 불러일으켰다. 우람하지는 않지만 부드러운 남성미를 뽐낸 그의 몸매에 수많은 처녀가 밤잠을 설쳤다.

그의 몸 관리는 철저했다. 헬스클럽이 없었던 시절, 이태원 신혼집 앞마당에 샌드백과 시멘트 역기부터 가져다 놓았다. 심지어 ‘물을 많이 마시면 살이 찐다’는 속설을 믿고 물을 잘 마시지 않다가 요로결석으로 입원하기도 했다.

당시 신성일은 174cm의 키에 60kg 중반대의 몸무게를 유지했다. 요즘으로 치면 날씬한 보통 남성의 몸매다. 하지만 1965년 20대 남성의 평균 키와 몸무게가 167cm, 57kg이었으니 신성일은 훤칠한 키와 탄탄한 몸매의 소유자로 꼽힐 만했다.

몸짱도 시대에 따라 변한다. 2000년대를 대표하는 한국의 몸짱은 키 184cm, 몸무게 74kg의 가수 비다. 그는 일본 언론 ‘스포츠호치’가 ‘매혹의 9등신’으로 표현할 만큼 한국인의 희망 체형을 대표하고 있다.

비도 신성일 못지 않게 몸매 관리를 한다. 비는 데뷔 전 85kg의 몸무게를 74kg까지 줄였다. 헬스클럽의 전문 트레이너로부터 훈련을 받은 덕분에 남자가 봐도 매혹적인 근육질 몸매를 갖고 있다. 그는 바쁜 스케줄로 하루 서너 시간 밖에 못 자지만 운동은 하루에 한두 시간씩 꼭 한다.

요즘 200대 한국인의 체형은 전반적으로 키는 커지고 얼굴은 작아지면서 서구 체형에 가까워지고 있다.

1979년 각각 24.6cm, 23.3cm였던 남성과 여성의 머리길이(정수리부터 턱까지의 길이)는 23.6cm와 22.3cm로 짧아졌다. 덕분에 한국인의 등신지수(키를 얼굴 길이로 나눈 것)은 가장 아름다운 신체 비율이라는 8등신에 가까워졌다. 등신지수는 남성의 경우 79년 6.8등신에서 7.4등신으로, 여성은 6.7등신에서 7.2등신으로 변했다.

평균 체중 10kg 정도 늘어나

1000년을 거슬러 올라가면 이런 체형 변화는 더욱 두드러진다. 우리나라의 복식사 사료를 통해 추정한 고구려 남자의 등신지수 5.9, 여자는 5.8이었다. 요즘 기준으로는 ‘얼큰이’ 천국이었던 셈이다. 조선시대 남자 평균은 6.4등신, 여자는 6.3등신이었다.

얼굴 길이가 줄어든 것은 부드러운 음식을 선호하는 식습관에 따라 턱관절 발달이 둔화됐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풍부한 영양 섭취와 온돌 생활에서 침대 생활로의 변화, 서구형 외모를 선호하는 사회 분위기도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기본적인 체격도 몰라보게 좋아졌다. 2004년 20대 남성의 평균 키는 173.2cm로 1979년에 비해 약 6cm, 여성은 160cm로 4.6cm 커졌다.

서양인과의 격차도 줄었다. 1979년에는 서양인에 비해 10cm 이상 작았으나 2004년 남성은 미국인과 5.3cm, 이탈리아인과 1.9cm 차이까지 따라붙었다. 몸무게는 25~29세 남성의 경우 1979년 60.7kg에서 2004년 70.1kg으로 거의 10kg 가까이 불었다.

한국인 체격이 커진 주요인으로는 어린이.청소년의 영양 섭취가 좋아진 덕분으로 분석된다.

조선 말기부터 한국전쟁 직후까지 한국 사회는 절대 빈곤에 시달렸다. ‘이밥(쌀밥)에 고깃국’은 당시 서민에겐 꿈의 식단이었다. 보릿고개 때면 소나무 껍질(송기)을 벗겨내 죽을 쒀 먹기도 했다.

71년 우량아 선발대회 인기

못 먹던 시절이다보니 자식만이라도 통통하게 키우는 것이 소원이었다. 그래서 생긴 게 1971년 열린 ‘전국 우량아 선발대회’였다. 이 대회는 애초 한 분유회사의 사회공헌행사로 기획됐다. 그런데 대회 따마다 참가자가 구름 떼처럼 몰려들었다.

대회의 인기가 높아지다보니 TV로 중계방송까지 했다. 한때 영부인인 육영수 여사까지 대회장에 모습을 나타내곤 했다. 청와대에서 아기와 엄마 등 수상자를 초청해 오찬을 할 정도로 국민의 관심이 깊은 행사였다.

아기들이 얼마나 뚱뚱한가(체중)에 따라 가장 높은 점수가 주어지던, 그래서 못 먹는 나라에서만 개최가 가능했던 이 대회는 경제 성장과 함께 1984년 13회 대회를 끝으로 막을 내리게 된다.

1970~1980년대 고속 성장기를 거쳐 우리나라 사람의 식습관은 탄수화물 위주의 곡류 식단에서 단백질과 지방의 비중이 큰 육류식단으로 바뀌었다. 국민 1인당 쌀 소비량은 2007년 기준 연간 76.9kg으로, 1979년 135.6kg의 약 57% 수준으로 떨어졌다. 대표적인 구황작물인 감자, 고구마의 섭취량도 1970년대 이후 크게 감소했다.

자연히 곡류에 풍부한 전분 섭취는 줄고 동물성 영양분의 섭취가 증가했다. 영양학적으로 보면 칼로리는 줄어든 반면 성장에 필수적인 단백질과 지방의 섭취는 늘어난 것이다. 이에 따라 키와 체중, 발의 크기, 가슴둘레 등 체격의 전반적인 치수가 커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체형의 발달은 한국 스포츠의 경쟁력 향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대표적인 게 수영선수 박태환이다. 183cm, 76kg으로 서양인에 뒤지지 않는 다부진 체격으로 갖춘 박태환은 2007년 제12회 국제수영연맹이 주최한 세계수영선수권대회 자유형 남자 400m에서 금메달을 딴 데 이어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도 자유형 남자 400m 금메달, 200m 은메달을 거머쥐었다.

피겨 세계 랭킹 1~2위를 다투는 ‘은반의 요정’ 김연아도 긴 팔, 긴 다리와 늘씬한 서구적 체형에 신세대 특유의 자신감으로 세계 피겨 역사에 이름을 새겨 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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