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방 도우미의 '위험한 세계'

'추억이 흘러 내려 내 맘에 젖어 있네 / 쌓여진 옛 이야기 잊을 수 없다네 / 바람이 나부끼면 나뭇잎 떨어져서 / 내 님에게 다가가 소식 전하지 / 아~아~ 바람아 불어라 내 님 있는 그 곳까지 불어다오.'

노래방 도우미로 생계를 꾸려가는 며느리가 술에 취해 귀가한 뒤 흐트러진 모습으로 애절하게 이필원의 '추억'이란 노래를 부른다.

지난 1일 산울림 소극장에서 막을 내린 연극 '너무 놀라지 마라'의 여 주인공은 노래방 도우미다. "예술을 하겠다"며 가족을 챙기지 않는 영화 감독인 남편, 심한 변비로 고생하는데다 대인기피증까지 있어 집에만 처 박혀 사는 시동생, 아내가 이웃집 남자와 눈이 맞아 가출하는 바람에 홀아비가 된 시아버지.

배우 장영남은 노래방 도우미의 일상을 아주 리얼하게 연기했다. 서울 패밀리의 '이제는'이란 노래가 나오자 시동생, 노래방 손님과 함께 흐트러진 머리를 흔들고, 탬버린을 두드리며 춤을 춘다.

'지난날 그리워하는 것은 아쉬움이야 / 바람 속을 걸어가는 너의 모습처럼~ / 그렇게 좋던 그날이 그렇게 사랑한 날이~'

심지어 노래방에서 손님으로 만난 연하의 남자를 집으로 끌어들여 몸까지 내맡긴다.

희곡까지 쓴 박근형 연출이 만들어낸 허구의 세계이지만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연쇄 살인범 강호순 사건으로 다시한번 도마 위에 오른 직업이 노래방 도우미다. 강호순에게 피살된 부녀자 7명 중 3명이 노래방 도우미였다. 경찰에 따르면 강호순은 1차, 2차, 4차 범행 등 2006년 12월부터 2007년 1월까지 주로 범죄 대상자로 노래방 도우미를 선택했다.

연쇄살인범 강호순 피살 부녀자 7명 중 3명
2005년 10월 서울 동작구 성관계거부 이유 구타치사
같은해 9월 인천 서구 마취약물 먹인 후 성폭행
2007년 2월 경기 군포 차량납치 후 성폭행
같은해 2월 서울 강서구 공짜 성관계 요구 협박

강호순 뿐 아니다. 2005년 10월 서울 동작구에선 성 관계를 거부하는 노래방 도우미를 매를 맞고 숨진 사건이 있었고, 같은 해 9월 인천시 서구 노래방에선 도우미로 일하던 여성 5명에게 마취 성분이 있는 약물을 맥주에 섞어 먹인 뒤 성폭행한 노래방 업주가 구속되기도 했다.

또 2007년 2월 경기도 군포에선 노래방 도우미를 차량으로 납치, 성폭행한 김모(27) 씨가 구속됐으며 같은 달 서울시 강서구에선 불법 노래방 도우미 영업을 악용해 공짜로 성 관계를 요구하던 박모(50) 씨가 쇠고랑을 차는 등 관련 범죄가 끊이지 않고 있다.

왜 노래방 도우미들이 쉽게 범죄의 표적이 되는 것일까.

노래방은 주류 판매가 금지돼 있지만 이를 지키는 업소는 드물다. 자연스럽게 손님은 도우미와 함께 술을 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춘다. 룸싸롱이나 단란주점 등 유흥업소와 다를 바 없다.

일반적으로 1시간 당 봉사료 2만원을 받는 도우미들은 일명 '보도방'으로 불리는 직업소개소를 통해 공급된다. 알선업체의 차량을 이용해 미리 예약된 업소를 옮겨 다니며 영업한다. 기본은 1시간이지만 손님이 연장을 원하면 같은 장소에서 2~3시간 동안 머물기도 한다.

보통 오후 8시부터 시작해 다음날 오전 3~4시까지 7~8시간 동안 일하는 셈이다. 손님을 기다리는 시간과 이동 시간을 빼더라도 평균 3~4시간 동안 일하면 하루 저녁에 6만~8만원의 수입이 생긴다. '보도방'에 내야 하는 알선료를 제외하고도 5만원의 수입은 된다는 것이다.

중간 매개체 보도방 불법운영'보호장치 없어'
업주·도우미 모두 범죄피해 신고 못하고 감수
'안전·인권 보호'위해서라도 사회적 관심 필요

이런 유혹은 상대적으로 생활 형편이 어려운 여성들을 노래방 도우미로 끌어들인다. 심지어 '코리아 드림'을 꿈꾸며 한국을 찾은 조선족 동포들도 쉽게 일자리를 구하고, 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에 노래방 도우미로 나선다. 강호순에게 피살된 부녀자 중 1명도 중국 동포였다.

노래방 도우미들은 늦은 밤 일해야 하고, 술을 마실 때가 많기 때문에 범죄에 노출된 가능성이 높다. 더욱이 불법으로 운영되는 '보도방'이 중간 매개체인 탓에 보호 장치도 없는 게 현실이다. 또 업주나 도우미 모두 사소한 범죄 피해는 신고하지 못하고 감수해야 한다.

2006년부터 시행되고 있는 음악산업진흥법은 노래방 도우미를 고용, 알선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지만 도우미를 찾는 수요가 있고 수익이 보장되기 때문에 불법 영업은 계속되고 있다.

범죄에 노출된 노래방 도우미. 완전히 뿌리 뽑을 방법이 없다면 국민의 안전과 인권을 보호하는 차원에서라도 사회적 관심은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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