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기자의 '사건 25시'
갈수록 요지경 '새 수법' 인터넷 통해 유흥업소와 연결
업소 '단골' 되면 전화로 OK… 성매매 나섰다가 납치되기도

5년째 기러기 아빠인 A(42ㆍ자영업)씨는 지난달 중순 혼자서 3박 4일 일정으로 필리핀 마닐라에 다녀왔다. 주변에는 친구들과의 골프관광이라고 얘기했지만, 실은 성매매가 목적이었다.

4년 전 골프 관광을 왔다가 마닐라의 밤 문화 향락에 빠져든 A씨는 매년 2~3번씩 이 같은 여행을 계속해 오고 있다. A씨는 "하룻밤에 300달러 정도면 왕처럼 대접을 받는다"며 "필리핀에서 별도의 피임은 하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한국 남성의 필리핀 성매매 관광이 갈수록 요지경이다. 골프나 휴양지 관광을 하면서 밤 문화를 즐겼던 행태에서 최근에는 아예 성 매매를 목적으로 필리핀을 찾기도 한다.

필리핀 관광청에 따르면 1997년 17만명 수준이었던 필리핀 방문객수는 2001년 20만명, 2006년 58만명, 지난해 65만명 수준으로 10년만에 4배 가량 폭증했다. 필리핀 관광객 중 60~70%가 남자라는 점을 감안하면 성매매 관광이 성업 중임을 미뤄 짐작할 수 있다.

여행업계 관계자는 "한국 관광객을 상대하는 현지 여행사만 300개 이상이 난립하고 있다"며 "필리핀 관광객 상당수가 성매매를 즐기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 가이드 의존형에서 현지 직접 연결 방식으로 진화

필리핀 성 매매 관광은 2000년까지만 해도 '현지 가이드 의존형'이 대부분이었다. 한국 관광객이 현지에 도착해서 가이드에게 사정을 물어보고 안내를 받는 방식이이었다. 향락업소와 가이드간에는 미리 연결이 돼 있어 손님이 요청하면 가이드가 업소까지 안내한 것이다.

여기서 한단계 더 나간 것이 관광객이 출발 전에 여행사에게 밤 문화 스케줄을 처음부터 요구하는 형태다. 대개 3박4일 혹은 4박5일 일정 중 필리핀 출국 하루 전날 밤을 성 매매일정으로 잡아 놓는다.

이 같은 방식은 지금도 접대성 관광 등에서 이용되고 있다. 필리핀 여행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한 여행사 관계자는 "사업하시는 분들 중에는 접대성 골프를 치고 동반자들에게 성 접대까지 하는 일도 있는데 이 경우 일정 중 미리 아예 성매매 코스를 잡는 방식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현지와의 직접 연결 방식이 늘고 있다. 인터넷을 통해 필리핀 현지 유흥 업소나 브로커와 접촉하거나 전화로 유흥업소와 직접 연락하는 방식이다. 대부분 최소 한 두 번씩 필리핀 관광을 다녀온 이들이 선호하는 방식이다. 인터넷은 필리핀 현지의 한인들이 운영하는 사이트를 이용한다.

뒤처리를 깔끔하게 하기 위해 사이트에 쪽지를 남긴 뒤 이메일을 주고 받는다. 전화로 연결하는 경우는 해당 업소와 이미 '단골'이 된 경우다. '며칠에 갈 테니, 내가 원하는 취향을 준비해 달라'는 식이다.

▲ 성매매 나섰다가 납치되는 사건도 발생

지난달에는 현지 업체와 직접 접촉해 현지 여성을 소개 받으려던 40대가 필리핀에서 납치됐다가 풀려난 일도 발생했다. 경찰에 따르면 지난달 초 장모(42)씨는 필리핀 여행과 유학정보를 다루는 사이트에서 '필리핀 여성을 소개해 주겠다'는 현지 브로커의 쪽지를 받았다.

며칠 뒤 '준비된 여성이 있다'라는 연락을 받은 장씨는 지난달 28일 용감하게 혼자서 마닐라행 비행기에 올라 탔다. 물론, 부인에게는 출장 여행이라고 둘러댔다.

하지만 장씨는 공항에 도착하자 마자 한국인이 낀 현지 브로커들에게 납치됐다. 납치된 곳은 마닐라에서 남쪽으로 40㎞ 떨어진 카바이트주 바쿠르시의 한 가정주택.

한국인 6명과 현지인들로 구성된 납치조직은 장씨를 폭행하고 몸값을 내라고 협박해 장씨는 서울의 가족들에게 "필리핀에서 교통사고를 내 합의금 4억원이 필요하니 빨리 보내달라"고 연락했다. 장씨는 이달 2일 아버지로부터 5,000만원을 받아 납치조직에게 건넸다.

장씨가 납치 감금된 곳에는 또 다른 한국인 조모(38)씨도 감금돼 있었다. 10월부터 필리핀에서 어학연수 중이었던 조씨는 영어를 잘 하려면 필리핀 여성과 사귀어야 한다는 쪽지에 귀가 솔깃했다가 당한 케이스다.

현지 브로커는 지난달 24일 필리핀 여성을 소개시켜 주겠다고 조씨를 유인한 뒤 납치했다. 10일 넘게 감금 당했던 조씨는 현지 조직원들에게 "한국 여행객을 더 많이 납치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겠다", "한국 증권사 사이트를 해킹해 몇 백억원을 빼돌려 주겠다"는 말로 납치범들을 안심시킨 뒤 탈출에 성공했다.

조씨는 천신만고 끝에 지난 4일 필리핀 주재 한국 대사관을 찾아가 사실을 털어 놓았고 대사관 직원과 필리핀 경찰이 출동해 묶여 있던 장씨를 구출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납치범들은 이미 종적을 감춘 뒤였다.

필리핀판 어둠의 자식 '코피노' 부쩍

5년전 1,000여명서 현재 최대 1만여명으로 급증

인종을 비하하는 등 도를 넘는 한국인의 성 매매 관광으로 현지 필리핀인들의 감정도 악화하고 있다. 현지 여행 가이드 김모(36)씨는 "한국 관광객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필리핀 여성을 '원숭이'라고 부르기도 한다"며 "필리핀 여성들이 앞에서는 웃으며 술을 따르고 몸을 팔지만, 한국말로 원숭이가 무슨 뜻인지 다 알고 있다"고 말했다.

마닐라에 거주하는 아넬리아(26)씨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사람의 감정을 돈으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한국인이야말로 야만인"이라고 말했다.

성매매 관광은 필리핀에서 또 다른 사회 문제를 낳고 있다. 한국 남성과 필리핀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코피노(Kophinoㆍ 한국인과 필리핀인 혼혈)가 급증하고 있는 것. 한국인 관광객이나 주재원, 유학생 등과 필리핀 유흥업소 여성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이들은 아버지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자라고 있다.

공식적인 통계는 없지만 필리핀 교민단체에 따르면 불과 5년 전만하더라도 1,000명 수준이었던 코피노는 이제 최소 3,000명에서 최대 만 명 수준까지 늘어 났다. 무책임한 성매매 관광에다 피임과 낙태를 죄악시하는 필리핀의 카톨릭 문화까지 겹쳐진 결과다.

현지 교민단체 관계자는 "코피노가 유치원이나 학교에 갈 나이가 돼도 현지 미혼모들이 가난해서 학교에 보낼 엄두를 내지 못해 길거리에 방치되고 있다"며 "무책임한 한국 남성들로 인해 벌어진 일이 부끄럽고 마음 아프다"고 말했다

단기 어학 연수생들도 영어를 빨리 배우겠다며 필리핀 여성과 동거하다 자식까지 낳고선 무작정 한국으로 돌아가는 경우도 적지 않다.

또다른 교민단체 관계자는 "필리핀 여성들이 특별히 피임을 요구하지 않고, 가톨릭 영향과 비용 문제로 중절도 하지 않는다"며 "필리핀을 찾았던 남성들은 필리핀에 자신의 2세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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