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버닝의 S다이어리] 금단의 열매는 달콤하다

지난 일요일 쇼핑을 하기 위해 차를 몰고 다리를 건너다가 작년 이맘때쯤 입원했던 병원을 지나게 되었다.

그리 무거운 병은 아니었지만 열이 많이 나는 소모성 질환이라서 며칠 동안 잠을 못 자고 고열에 시달렸던 나는 입원을 하고 이틀 정도는 시체처럼 잠만 잤었다. 그리고 정확하게 삼일 째 되는 날 당시 만나고 있던 남자에게 입원 사실을 알렸었다. 내가 그를 사귀고 있다고 표현하지 않은 이유는 서로 며칠씩 연락이 없어도 그러려니 하고 넘기는 사이였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내 입원 소식을 듣고 온 그는 4인실에 누워있는 나를 1인실로 옮겨주었다. 그리고 그날 밤 나는 그와 병원 침대에서 섹스를 했다. 원래 병실은 밤에도 바이탈 사인을 체크하기 위해 간호사들이 수시로 들락거리기 때문에 문을 잠그면 안 되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섹스를 너무나 좋아해서 혹은 단 며칠이라도 섹스를 하지 않으면 미칠 것 같아서 그런 건 아니었다. 그건 뭐랄까 금지되어있는 것에 대한 달콤함이었다. 병원에서 섹스를 하면 절대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도 거기서 섹스를 하지는 않는다.

남자들의 페티시 중에서 간호사복을 입은 여자와 섹스를 하는 게 빠짐없이 등장하는 이유와 비슷하다고나 할까? 아무튼 그때의 우리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섹스 그 자체가 아니라 어지간해서는 섹스를 하기 힘든 장소인 병원에서 섹스를 한다는 것이었다.

그 이후로 나는 그 병원을 지날 때면 언제나 에로틱했던 그 날을 떠올리곤 한다. 그날따라 특히나 더 환상적이었던 섹스는 아니었지만 그냥 그 곳에서 섹스를 했다는 것이 오래 기억에 남았다.

몇 년 전 슬럼프에 빠져 혼자 영국으로 여행을 갔을 때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나는 그 곳에서 약혼자를 한국에 두고 영국에서 유학중인 남자를 가이드로 소개 받게 되었는데 그의 숙소에 있던 3일 동안 우리는 밖에 나가지도 않고 바게트 빵과 핫쵸코로 버티면서 내내 섹스만 했었다.

약혼자가 있는 그는 물론이고 나 역시 한국에 애인이 있는 상황이었다. 더구나 그를 소개시켜준 사람은 그의 약혼녀의 친구였다. (나 역시 그녀를 몇 번 정도 본 적이 있어서 안면이 없지는 않았다.)

어쩌면 우리가 죄책감이나 서로의 애인에게 미안한 감정이 없었다면 섹스를 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냥 여행지에서 만난 반가운 한국사람 정도로. 그도 고국에서 온 반가운 한국사람 정도로 나를 스쳐 보냈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우리의 죄책감은 더욱 더 우리로 하여금 금단의 열매를 따 먹게 만들었다. 그에게 관광 안내를 받은 것이 고마워서 펍에서 맥주를 사던 날 밤. 우리는 서로가 서로의 애인을 혹은 약혼자를 얼마나 사랑하는지에 대해 말했었다.

그리고 그날 우리의 대화 내용 중에서는 상대가 있는 사람들이 바람을 피우는 건 한국이나 영국이나 마찬가지라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물론 그걸 찬성하는 쪽이 아니라 결단코 안 된다며 성토하는 쪽이었다.)

서로에게 조금쯤은 이끌렸던 게 사실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3일 내내 섹스를 나눌 만큼 매력적인 건 아니었다. 그는 내 타입이 아니었고 나 역시 그의 이상형과는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한국에 있는 그의 약혼녀 그리고 내 애인이 서로에게 더 잘 맞는 상대들이었다.

하지만 우리에게 중요했던 것은 얼마나 상대가 매력적인가, 그리하여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가 아니었다. 그때의 우리는 젊었었고 뭔가 일탈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너무나 당연한 일들을 당연하게 하지 않을 자유. 물론 그걸 방종이 아닌 자유라 부를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우리에게 있어 금기된 그 무언가는 거부하기 힘든 달콤한 향을 풍기고 있었다.

아담과 이브가 금단의 열매인 무화과를 따 먹은 것은 호기심 때문이었다. 뱀의 유혹도 있었지만 이브는 금지된 것에 대해 거부할 수 없는 달콤함을 느꼈고 이를 자신의 애인이자 동료인 아담과 함께 하였다.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더구나 그 길로 가지 말라고 하면 할수록 묘하게 끌리는 그 기분을 아마 다들 한번쯤은 겪었을 것이다. 문제는 배운 대로 또 시키는 대로 얌전하게 호기심을 누르고 가던 길로 가느냐 아니면 한번쯤 눈을 질끈 감고 옆길로 가 보느냐는 것이다.

아담과 이브는 금단의 열매를 따 먹음으로써 젖과 꿀이 흐르는 에덴동산에서 쫓겨났듯 우리도 마찬가지로 금단의 열매를 취하면 그만큼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러나 어떨 때는 아무런 대가를 치르지 않아도 될 때도 있다.

결혼해야 할 사람의 아버지. 즉 시아버지와 사랑에 빠지는 (정확하게는 섹스에 탐닉하게 되는) 영화 제목이 뭐였더라? 아무튼 그 영화에서 시아버지와 며느리 사이가 아닌 그냥 남자 대 여자로 만났어도 그들은 서로에게 반해서 그렇게나 격정적으로 몸을 섞는 사이가 되었을까?

모르긴 해도 시아버지 될 사람이 아무리 나이보다 젊고 멋져 보인다 하더라도 그건 아마 힘들 것이다. 그 사람이기 때문에 사랑한다기 보다는 가끔 상황이 사람을 사랑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리고 그건 섹스도 마찬가지다.

내가 아는 남자 중에 호색한이 있었다. 잘 생기고 돈 많은 집 아들인 그는 한 달에도 여자를 몇 번씩 갈아 치울 정도로 여성편력이 심했었다. 그의 섹스 레퍼토리를 듣고 있노라면 한국에서도 이렇게 노는 애들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나와는 완전 딴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가 요즘 한 여자에게 목을 매고 있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내 생각에는 그 여자가 그와 섹스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와 자 본적은 없지만 그의 섹스 테크닉은 한번 맛(?) 보면 어떤 여자도 거부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나다는데 유독 그녀만은 그 맛에 길들여지지 않은 탓이다.

아무리 여자를 새로 사귀어도 결혼이라는 단어를 꺼낸 적이 없던 그는 급기야 그녀와 결혼하고 싶다는 얘기까지 했다. 그녀를 아무리 살펴봐도 그동안 그가 만났던 여자들보다 어떤 면으로든 한참 아래인 그녀. 그녀가 그를 잡을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그에게 있어 그녀의 몸 자체가 금기처럼 느껴졌기 때문이 아닐까?

유부남을 만나는 처녀. 유부녀를 만나는 총각들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그들은 상대방이 이미 결혼을 해 버렸다 뿐이지 분명 의심할 바 없는 운명의 상대이자 영혼의 반쪽이겠지만 그런 상황이 아닐 때 만났어도 그렇게 애틋했을까 하는 의문을 지울 수가 없다.

안 된다고 하면 할수록 금지되어 있으면 있을수록 사람들은 끌리게 마련이다. 비가 착한 남자가 아닌 나쁜 남자를 불렀을 때 나는 생각했었다. 나쁜 남자. 이 얼마나 매력적인 컨셉인가 하고 말이다.

더없이 착한 남자가 '너를 죽도록 사랑해'라고 말 하는 것 보다 나쁜 남자가 '나를 사랑하지 마'라고 말할 때 여자들은 더 큰 매력을 느끼기도 하니까 말이다.

내가 경험한 금기라고 해 봐야 기껏 병원에서 섹스를 한 것. 그리고 애인이 있는 남자(정확하게는 그 애인을 조금 아는 사이인)와 섹스를 한 것 정도가 전부이지만 앞으로는 또 어떨지 장담할 수 없다.

어쩌면 나도 이제 나이가 있는데 하면서 메겨지지도 않은 나이 값을 하느라 세상이 그어놓은 잣대대로 살 수도 있겠지만 또 언젠가 금단의 열매가 그 달디 단 향내를 풍긴다면 코 꿰인 망아지처럼 끌려갈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그 금단이 누군가의 눈물이 아니고 고통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허나 알다시피 세상은 바램 대로 되지만은 않는다. 하긴 그러니 그게 바램이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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