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선특위 난감기억] 접선특위에서의 기억(2)

B양의 경우

'접선특위에서 상대방과 직접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방법으로는 쪽지와 채팅이 있다. 채팅의 경우 대기실에 현재 내가 누구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지가 타인에게 노출되기 때문에 대부분의 경우 접선특위에서는 쪽지를 통해 작업이 이루어진다.'

라는 기초적인 사실을 알게 된 것은 남로당에 가입하고 한 달도 훨씬 넘은 후였다. 요즘 말로 조낸 억울하였다. 대체 한 달이 넘는 그 어마어마한 시간 동안 나는 아무도 오지 않는 채팅방에서 혼자 무엇을 하고 있었단 말이냐!

생면부지의 여자에게 먼저 말을 건넨다는 것이 부담스러워 일부러 쪽지를 보내지 않고 채팅만을 고집한 것이 화근이었다. 사춘기 소녀같이 수줍기 짝이 없는 나의 성격이 저주스럽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언제까지 자신의 성격을 한탄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후후후 쪽지였단 말이지!! 쪽지를 통해 이곳 사람들은 서로 알콩달콩 농담도 따먹고, 만날 약속도 정하고 한단 말이지!! 이제 나도 쪽지를 보내주지!! 쪽지를 통해 나의 발랄하기 짝이 없는 명랑한 성격을 적나라하게 보여줄 테다!! 여성 동지들과 접선도 실컷 해줄 테다!!!

첫 쪽지를 보내면서 속으로 얼마나 통쾌했는지 모른다. '이제 너희들은 다 죽었어!!' 라고 실제로 읊조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한 달 동안 채팅 방에서 혼자 애국가 가사 치기 놀이를 하면서 한이 많이 맺혀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쪽지를 보내도 상대방 여성은 답장 쪽지를 보내지 않았다. 의외였다. 쪽지를 통해 의사소통을 한다며? 근데 왜 의사소통을 안하는 거냐? 내가 지금 쪽지를 보내는데 왜 너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는 거냐? 혹시 문맹인거냐?

설마 그럴 리가... 지금 되게 바쁜가 보다... 라고 혼자 이해해 주고 곧바로 다른 여성에게 쪽지를 보냈다.

후후후 너 봉 잡았다. 아까 여자가 답장 쪽지를 보내지 않은 덕분에 당신이 나와 쪽지로 대화할 수 있는 영광을 얻게 된 것이다!! 하지만 두 번째 여성 역시 아무런 답장이 없었다. 음... 시스템 에러인가?

그런 식으로 대기실에 있는 모든 여성 당원들에게 쪽지를 보내봤다. 하지만 한결같이 아무런 대꾸가 없었다. 남로당에서 쪽지를 보내 본 분들은 알겠지만 쪽지를 보내고 답장 쪽지를 기다리는 동안은 상당히 시간이 천천히 흐른다.

언제 답장 쪽지가 올지 알 수가 없기 때문에 다른 일을 하기도 어렵다. 짧으면 몇 십초, 길면 십분 정도의 시간을 멍하니 모니터를 바라보는 일 외에는 마땅히 할 만한 일이 없다.

좀 무리를 하면 다른 창을 띄워서 웹서핑을 할 수도 있겠지만 나의 경우는 성격상 한꺼번에 두 가지 일을 못한다. 쪽지를 보냈으면 답장 쪽지를 받을 때까지 그냥 멍하니 모니터를 바라보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인 것이다.

그 덕분에 처음 쪽지를 보낸 날은 새벽까지 멍하니 남로당 대기실을 바라보면서 지냈다. 혼자 채팅방에서 놀 때는 애국가 가사라도 칠 수 있었지만 대기실에서는 그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그냥 멍~ 하니 대기실의 여성 당원 명단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렇게 밑도 끝도 없이 쪽지를 씹히는 날들이 계속되었다. 대체 내가 뭘 그리 잘못했기에 이다지도 처절하게 쪽지들을 씹어주시는 걸까? 처음에는 굉장히 화가 났다.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는 듯 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얼마나 화가 났는지 남로당 오랄작업교장의 긴급 타전란에 '쪽지 함부로 씹지 마라. 너는 한번이라도 남한테 뜨거운 쪽지를 보낸 적이 있더냐!' 라는 울부짖음에 가까운 문장을 올렸던 적도 있다.

마음 같아서는 실제 닉네임으로 올려놓고 싶었지만 혹시라도 여성 당원들한테 미움을 받으면 큰일이겠다 싶어서 '남인척'을 이용하여 올렸다. 그러나 큰 위안은 되지 않았다.

그 후 또 한참의 과정을 통해 쪽지가 씹히지 않기 위해서는 노출 빈도가 높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난생 처음 본 남자가 '방가 방가 ^^ 알흠다운 밤이어요.'라고 쪽지를 보내봤자 대번에 씹히는 것이 태반이라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노출 빈도를 높이는 방법은 무엇이 있단 말인가? 남로당에 은거하는 무명고수들은 한결 같이 이렇게 대답하였다.

'프로필을 성의빨 넘치게 쓰던가 게시판에 글을 많이 올려라.'

프로필에 오방 성의가 있으면 일단 그 정성이 갸륵해서라도 무턱대고 씹지는 않는다는 이야기였다. 과연 뻐꾸기 수를 많이 받은 남성 당원들의 프로필은 뭐가 달라도 되게 달랐다. 음악도 빵빵하게 흘러나오고 사진이나 영화 포스터도 적절하게 잘 배치되어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내가 컴맹이라는 사실이었다. 프로필에 음악? 올리고 싶었다, 동영상? 있으면 좋지, 알흠다운 사진들? 언제나 환영!

다만 올리는 방법을 몰랐다. 그런 빌 게이츠 급의 초절정 컴퓨터 스킬을 나에게 요구하는 것 자체가 언어도단이었다. 그런 걸 할 줄 알았으면 진작에 벤처 사업가가 되었을 것이다. 사람을 봐가면서 요구할 껄 요구해야지...

해서 프로필을 성의빨 넘치게 쓰는 것은 포기하고 게시판에 글을 많이 올리기로 했다. 글을 많이 쓰던 적게 쓰던 일단 정기적으로 올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무명고수들은 한결 같이 지적하였다.

포인트는 게시판에 자신의 노출빈도를 높임으로서 내가 위험한 남자이기는 커녕 조낸 친숙하고 말 잘 듣는 남자임을 알리는 것이지 '나 한 문장 한다. 다들 눈 깔아!' 라고 으스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해서 자유 게시판에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새로 글을 쓰는 건 너무 귀찮으니까 예전 블로그에 써놨던 글을 곶감 빼먹듯 하나씩 옮기기 시작했다. 심심풀이로 써놨던 글들이 전혀 엉뚱한 용도로 도움이 되는 형국이었다.

그렇게 자유 게시판에 정기적으로 글을 올리자 글에 추천이 하나씩 붙기 시작했다. 덩달아 생면부지의 여인들에게 뻐꾸기도 날아오기 시작했다. 속으로 얼마나 환호작약했는지 모른다. 채팅방만 열었다 하면 밤새도록 혼자 애국가 가사만 쳐댔던 나였다. 쪽지만 날렸다 하면 멍하니 모니터만 바라보며 자신의 쪽지가 씹혔음을 부정하던 나였다.

그런 내가 글에 추천도 받고 뻐꾸기도 받으니 얼마나 기쁘기 한량이 없었겠는가? '접선은 남의 이야기, 난 따돌이일뿐...' 이라고 자신을 비하하던 날들에서 '씨발 내 글 재밌지? 나 조낸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냐?' 라는 왕자 모드로의 극적인 변신이었다.

그후로 한동안은 기세등등하였던 걸로 기억한다. 자유게시판의 인기인이 아니던가? 이제 쪽지를 보내서 씹힐 일도 없을 것이요, 접선은 차려놓은 밥상이었다. 내가 고민해야 할 것은 쪽지가 씹힌 후 어떤 식으로 스스로를 합리화하여 조금 덜 상처 받는가가 아니라 접선을 통해 만난 여성 당원을 어떻게 유혹하여 모텔로 이끄느냐 라고 생각하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남로당 물정 모르는 철부지의 기고만장이었지만, 그 수많은 시간 남로당에서 홀대받고 처절하게 고립되었던 시간을 생각하면 십분 이해가 가고도 남음이 있는 치기어림이었다.

그리고 B양과 만나게 된 것은 그 어이없는 왕자병이 절정에 다다랐을 즈음이었다.

토요일 새벽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자유게시판에 올린 내 글에 추천수를 확인하며 속으로 환호작약하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띠리리링 소리가 나면서 화면에 쪽지 창이 하나 떴다. B양으로부터의 쪽지였다.

깜짝 놀랐다. 자랑은 아니지만 누군가에게 쪽지를 먼저 받은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약간 과장하는 것이 허락된다면 정말 감개무량하였다. 그동안 철저하게 소외되고 고립을 강요받았던 지난날들이 뇌리를 스쳐지나가면서 이제 접선의 대왕으로 등극하는 첫발을 내딛는 것만 같았다.

'좋은 글 잘 읽고 있어요...'

아... 남로당에 은거하는 무명고수들의 가르침은 과연 옳은 것이었다. 날마다 대답 없는 쪽지만 뿌려대던 신세에서 이제는 여성당원에게 쪽지를 받는 인기인으로 거듭난 것이었다. 디지털 카메라가 있었으면 증거로 삼기위해 쪽지가 뜬 모니터 창을 사진으로 찍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마냥 기뻐하고 있을 일만은 아니었다. 바로 답장을 보내지 않으면 실망한 그녀가 남로당에서 바로 로그 아웃을 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아... 여자가 먼저 쪽지를 보냈는데 이토록 처절하게 씹어주시다니... 앤어보이님 악당...' 상상만 해도 아찔하였다. 미친 듯이 자판을 두들겨 바로 답장 쪽지를 보냈다.

'조악한 글이지만 재밌게 읽어주셨다니 그저 감사할 뿐...'

오~~~ 쓰고 나서 감탄하였다. 감사할 뿐... 이라니 장동건이 따로 없는 듯한 끝맺음이었다. B양이 너무 설레지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였다. 과연 감사할 뿐... 이라는 끝맺음이 효험이 있었는지 B양과의 대화는 술술 잘 풀려갔다.

얼마나 술술 잘 풀렸느냐하면 그녀가 친구들과 소주를 다섯 병인가 나눠 마시고 술김에 남로당에 들어왔다는 사실을 알게 될 정도였다. 오타가 심하고 간혹 가다가 횡수에 가까운 쪽지를 보내는 B양의 이야기를 종합해 보건데 그녀는 아마도 취중에 멋모르고 쪽지를 보낸 듯 하였다.

직역하자면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나에게 쪽지를 보낸 것이었다. 그 사실을 알고 좀 실망이 되었지만 '맨 정신이었어도 나에게 쪽지를 보냈었을 것' 이라고 적당히 합리화 한 후 B양과의 대화를 이어갔다. 과연 사람은 취기에 오르면 좀 더 개방적이 되는 건지 어느새 자신의 핸드폰 번호를 알게 된 B양과 전화 통화까지 하게 되는 진도의 급진전을 이루게 되었다.

'백수시라면서요? 전화비가 많이 나올 테니 제가 걸겠습니다.'

고맙기 그지없었다. 일부 남로당 여성 당원들은 남성 당원을 호구로 알아서 저녁식사부터 집에 갈 택시비까지 전부 받아낸 다던데 그에 비해 B양은 백수인 나의 전화 요금까지 걱정해주는 것이었다. 전화 요금 몇 푼을 아낄 수 있어서가 아니라 사소한 부분까지 상대방을 배려해주는 마음이 무엇보다 고마웠다.

그렇게 B양과 전화 통화를 하게 된 나는 친구들과 소주 다섯 병인가를 나눠 마셨다던 B양이 채팅할 때보다 조금 더 취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간단하게 말해서 혀가 살짝 꼬여 있었다. 지금에 와서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과연 다음날 이 여성분이 깨어나서 나와의 전화 통화를 기억이나 할 수 있을까 의문이 될 정도였다.

더 솔직하게 이야기하자면 B양의 현재 상태가 술집에서 취한 김에 옆 테이블 사람들과 합석하는 것과 비슷하지 않은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다시 맨 정신이었어도 순순히 나와 전화 통화를 하였을 것. 왜냐하면 그녀는 자유 게시판의 내 글을 감명 깊게 읽었기 때문에... 라고 재빨리 합리화 한 후 그녀와의 통화에 집중하였다.

통화를 하면서 언제 만날 수 있느냐? 지금이라도 당장 뛰쳐나가겠다!! 라고 속전속결의 결의를 다졌던 것이 사실이지만 역시나 사춘기 소녀처럼 수줍기 짝이 없는 성격의 내가 그런 과감한 발언을 할 수 있을리 만무하였다.

거기다가 매우 취한 상태인 그녀는 딱히 나와의 접선을 원한다기 보다는 그냥 술 마시고 울적한 마음을 풀어줄수 있는 잡담 친구가 필요한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음악 이야기를 주로 하였다.

쓰면서도 참 답답하다. 오죽 못났으면 접선특위에서 만나 오밤중에 전화 통화를 하면서 고작 한다는 이야기가 '시부야 케이에서 괜찮은 뮤지션 있으면 추천해 주세요.' 겠는가...

아무래도 화제를 바꾸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그녀는 자유 게시판에 올린 나의 글이 마음에 들어서 나에게 쪽지를 보낸 것이었다. 내 글에 대한 이야기로 화제를 바꾼 후 자연스럽게 서로에 대한 이야기로 옮겨 가는 것이 나을 것만 같았다.

'근데 자유 게시판에 올린 제 글이 어디가 마음에 드셨던 건가요?'

'앤어보이님이 매력이 넘치는 분인 거 같아서요...'

크흑... 매력이 넘친다니... 이 또한 자랑은 아니지만 태어나서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매력이 넘친다니... 싸가지가 넘친다는 이야기는 종종 듣는 나였지만 매력이 넘친다는 이야기는 정말 난생 처음이었다. 전화가 아니라 실제로 만나서 들은 이야기였다면 고마워서 B양을 업고 춤이라도 추고 싶었다.

하지만 바로 냉정을 되찾았다. 이럴 때일수록 겸손해야 한다. 물론 그런 이야기 날마다 듣지만 나는 워낙에 겸손한 사람이라서 자기 자신을 숙일 줄 안다는 듯한 묘한 자신감을 내비치는 말투로 대답해야 한다고 순간 잔머리를 발동하였다.

'후후후 매력은요... 그냥 평범한 무명소졸에 지나지 않습니다...'

'아니에요!! 글을 보니까 여자가 앤어보이님 집 앞에서 밤새도록 앤어보이님을 기다렸다면서요... 매력이 넘치는 분이 아니라면 왜 여자가 밤새도록 집 앞에서 앤어보이님을 기다렸겠어요....'

결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그런 적 없다. 여자 집 앞에서 밤새도록 기다린 적도 없는 나에게 여자가 내 집 앞에서 밤새도록 나를 기다리는 낭만적인 과거가 있을 리 없었다. 더불어 자유게시판에 올린 글에도 그런 글은 없었다. 머리털 나고 여자가 나를 밤새도록 기다렸다는 둥의 글을 써본 적도 없었다.

내가 만난 여자들은 대체적으로 게을러서 늘 내가 먼저 약속 장소에 나가는 편이었단 말이다!! 대체 B양은 어디서 그런 이상한 글을 보고 와서 나보고 매력적이라는 둥 여자가 밤새도록 나를 기다렸다는 둥의 판타지 무협 액션 소설 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일까?

'저... 죄송한데.... 자유 게시판에 올린 글 중에 그런 내용은 없는데요... -_-;'

하지만 그녀는 극렬하게 부인하였다. 그럴 리가 없다!! 내가 분명히 읽었다!! 여자 친구가 당신을 보고 싶어서 밤새도록 당신의 집 앞에서 기다렸다며!!! 그러나 그럴 리가 있었다. 나는 그런 글을 쓴 적이 없었던 것이다.

순간 두 사람 사이에 정적이 감돌았다. 그녀는 아마도 자유 게시판에 들어가 내가 쓴 글들을 검색해보는 모양이었다. 만약 책이었다면 책장 넘기는 소리가 화르르륵 들릴 듯 하였다.

나 역시 가만히 있기 뻘쭘하여 내가 쓴 글들을 다시 한 번 읽어보였다. 혹시라도 내가 잠결에 그런 소설을 썼을 지도 모른다는 헛된 생각을 하면서 내가 쓴 글들을 처음부터 끝까지 꼼꼼하게 되새김질해 보았다. 하지만 지당하게도 여자가 밤새도록 나를 기다렸다는 둥 나 존나게 매력적이라는 둥의 글은 찾을 수 없었다.

'죄송해요... 제가... 다른 분하고 앤어보이님을 착각한 모양이네요....'

그랬다. 이 모든 것이 거대한 착각으로부터 비롯된 일이었다. 쪽지를 보낸 것도, 전화 통화를 한 것도, 조만간에 만나서 술 한 잔 하자는 약속도 전부 나와 '밤새도록 여자가 집 앞에서 기다릴 정도의 매력남'인 누군가를 착각하여 벌어진 일이었다.

그녀는 내가 마음에 들어 쪽지를 보낸 것이 아니라 '밤새도록 여자가 집 앞에서 기다릴 정도의 매력남'인 누군가에 쪽지를 보냈던 것 뿐이었다. 참으로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 이 사태를 어찌 수습해야 할지 도통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하하하 이런 실수가.. 라고 유쾌하기 웃기엔 얼굴이 지나치게 경직되어 있었다. 그렇다고 지금 장난 하십니까!! 라고 화를 내기엔 사람이 너무 옹졸해 보이는 것 같았다. 무엇보다 단순한 착각에서 비롯된 일이 아니던가!

결국 B양과의 통화는 그 지점에서 흐지부지 끊기고 말았다. 누가 먼저 끊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그런 사소한 것을 기억하기에 당시에 내가 받은 충격이 너무나 컸기 때문이다.

결국 첫 접선의 웅대한 포부도, 접선의 대왕으로의 화려한 데뷔도 다 없었던 일이 되고 말았다. 그저 열두시가 지나고 모든 마법이 풀린 신데렐라처럼 '밤새도록 여자가 집 앞에서 기다릴 정도의 매력남'인 누군가로 추앙받았다가 '날마다 쪽지를 씹혀대는 궁상남'으로 되돌아온 것 뿐이었다.

B양과의 난감했던 기억으로부터 내가 얻은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자유게시판에 올린 글에 추천수가 붙고 그 덕분에 뻐꾸기 몇 마리 받게 되었다고 당장 접선의 대왕으로 환골탈태하는 일은 불가능하다는 깨달음이었다. 그저 겸손하고 겸손하자. 그것만이 개망신을 피하는 지름길일 뿐....

B양에게 감사한다.

To be continued

* 본 기사는 반짝반짝 연애통신(www.yonae.com )에서 제공합니다. 퍼가실 때는 출처를 명기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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