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서브컬처탐방] 로망포르노 제14회

아! 한국인 김영희

일본의 중년남성들이 오늘날까지도 입을 모아 추억하는 섹스 심벌이 있다. 그녀의 이름은 미야시타 준코(宮下順子). 일본 땅에서 활동하는 한국인의 피가 흐르고 있는 수많은 예능인 중 한사람이다.

포스트 시라카와 카즈코(白川和子)로 등장한 그녀는 다니 나오미 등과 니카츠 로망포르노 제 2세대를 대표하는 여배우로 성장하는데 그치지 않고 한 시대를 대표하는 일본인들의 섹스 심벌로 기억된다. 하지만 그녀가 양친 모두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일본인들은 거의 없다.

1949년 동경 세타가야구에서 태어난 그녀의 본명은 카나자와 에이코(金?英子). 집에서는 김영희(金暎姬)로 불렸다. 많은 재일 동포들이 그렇듯 그녀의 아버지도 빠칭코를 경영하고 있었다.

과거나 현재나 취업시장에서 철저하게 배제되어 왔던 재일 동포들은 빠칭코, 사채업, 프로 스포츠계, 예능계, 조직 폭력계 등으로 진출하였고 나름대로 많은 성공을 거두게 되지만 스스로 한국인임을 밝히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지극히 배타적인 환경에서 살아야했던 비주류 인생들의 당연한 대응결과인지도 모르겠다.

'미야시타 준코' 라는 이름이 곧 '로망포르노'라는 등식으로 팬들의 뇌수에 깊이 자리하고 있는 이유는 우선 출연작의 양적인 업적에서 기인한다.

71년 7월에 공개 된 고바야시 사토루 감독의 [나는 이렇게 잃어 버렸다]가 그녀의 데뷔작이며 이후 많은 핑크 영화를 찍어 72년에는 이미 스타급에 올라 있었다. 핑크영화의 여배우들 중에는 이른바 '후텐(フ─テン)'이 많은데 미야시타 준코도 그 '후텐'출신의 배우이다.

후텐의 시대, 후텐을 하다

혹자는 일본의 '후텐'을 미국의 히피족과 흡사하다고 하지만 그것은 너무 멋지게 보아준 것이고 실상은 생각보다 멋있지도, 철학적이지도 않았다.

일본에서 후텐이란 60년대 말에 발생한 반항적인 젊은이들을 지칭하는 말, 혹은 그들의 라이프스타일을 가리키는 것인데, 히피의 사상은 거세되고 그들의 헤어스타일, 수염, 티셔츠, 텡탑, 청바지 등의 패션이나 스타일만을 따라하는, 무직의, 혹은 부랑자들을 야유를 포함하여 부르던 말이었다.

그러니까 '후텐'은 일반인들이나 기성세대에게는 불량하고 올바르지 못한 것이었다. 1969년에 개봉한 일본최고, 최장의 프렌차이즈 영화 [남자는 괴로워(男はつらいよ)]에서 주인공인 '도라상'이 '후텐의 도라상'으로 불리면서 정착 되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그 당시 연극이니, 영화니, 혹은 예술 비스무리한 것을 추구하는 젊은이들 중에는 스스로를 후텐이었다고 회상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미야시타 준코도 신주쿠 근처의 재즈 카페에서 그런 후텐들과 어울리고 있던 중, 핑크영화에 스카우트 된 것이다.

미야시타 준코가 니카츠에 데뷔하게 되는 것은 72년 7월의[단지처/잊을 수 없는 밤(團地妻/忘れられない夜)]을 통해서였고 이 때만 해도 그녀는 '포스트 시라카와 카즈코'라는 명목으로 선전되고 있었다.

'나는 핑크영화로 성장했다. 로망 포르노에는 가지 않겠다'는 잡지의 인터뷰 기사를 통해 그녀의 스카웃을 거절했었지만 결국 니카츠의 제안에 응하고 만다. 많은 팬들과 핑크 영화계의 지인들은 배신에 분노 했었다고 한다.

미야시타 준코가 그토록 오랫동안 니카츠의 여신으로 기억될 수 있었던 또 하나의 이유는 그녀가 출연 했던 작품들의 질적인 우수성에서도 기인한다. 그녀가 출연한 많은 작품들 중에는 로망 포르노사, 아니 일본 영화사에서 손꼽히는 명작들이 유난히도 많다.

'여배우'가 아닌 '여자'

가토우 아키라 감독의 [사랑에 젖은 나]에서 그녀의 뜨거운 음란의 기질이 처음 관객에게 강하게 어필한 이후, 오오시마 나기사 감독의 [감각의 제국]의 소재가 된 '아베 사다 사건'을 로망포르노로 찍은 [실록 아베사다] [항구의 블루스] [떠돌이 기러기] [유부녀] [(비) 색정암컷시장] [적선 타마노이] 구마시로 타츠미 감독의 [타다미 네 장 반 후스마노 우라바리], 일본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의 후보로 노미네이트 되었던 [빨간머리의 여자] 등등 일일이 거론하기가 어려울 정도의 수작이 많다. 78년 작 [다이너마이트 돈돈]으로 블루리본 상을 수상한다.

그녀는 작품 속에서 묘한 매력을 발산 시켰는데 그 것은 한마디로 말해 '퇴폐미'였다. 그녀의 용자, 목소리에서 발산되는 부도덕한 섹스의 체취에 많은 남성들이 빠져들었다. 로망포르노를 위해 태어난 배우였던 셈이었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팜므파탈의 전형이 아닌가.

미야시타의 근황은 잡지나 대중매체를 통해 여전히 자주 보도 되고 있다. 아직도 로망포르노 여배우 인기투표에서 1위를 유지하고 있는 그녀를 팬들이 기억하는 방식이 '여배우'로서가 아닌 '여자'라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영원한 일본 남성의 연인으로서 성숙한 그녀의 자태에서 한국인의 그림자를 찾는 일은 불가능하다. 한편으로는 우리에게도 그녀처럼 '속살'로 오랫동안 기억 될 명 여우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

한국의 여배우 문소리에게서 미야시타의 모습을 보았다고 하는 일본의 영화평론가가 있어 흥미를 자아낸다. 추측이지만 [바람난 가족]을 본 것이 아닌가 싶다.

타다미 네 장 반

1973년 구마시로 감독의 작품인 [타다미 네 장 반 후스마노 우라바리]는 나가이 카후(永井苛風)의 원작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미야시타 준코가 게이샤 소데코로 출연한다.

대정 중기, 동경의 유흥가에 자리 잡은 요리점 '매화의 가지'에서 여사장이 게이샤를 기다리고 있다. 단골손님인 신스케는 호남형의 건달이다. 먹을 것이 없어 쌀을 구하려는 민중들의 데모가 일어나는 뒤숭숭한 시대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듯 오로지 향락을 ?는 남자였다.

소데코가 여사장에게 소개받아 신스케와 동침을 하는데 '처음이예요. 부끄러워요' 하며 전기 스탠드를 끌 것을 요구한다. 그 모습이 안타까운 듯, 사랑스러운 듯 만족해하는 신스케. 그의 허리가 점점 격렬하게 움직이고 소데코는 무리하게 그를 받아들인다.

하지만 점점 시간이 흐르면서 소데코의 숨소리도 거칠어진다. 이불을 거머쥐고 베개가 나뒹굴고 거칠어지는 두 사람의 숨소리와 신음이 멈출 무렵 소데코는 아득한 환희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신스케가 갑자기 허리질을 멈춘다. 이미 참을 수 없는 쾌락을 맛 본 소데코는 그에게 간절히 원한다. 두 사람의 섹스는 그렇게 계속된다. 두 번, 세 번, 네 번..

오로지 섹스만이 이어지는 이 영화는 두 남녀 배우가 펼치는 다양한 동작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마른 침을 삼키며 바라보게 하는 마력이 있다. 구마시로 감독의 연출력과 미야시타 준코의 매력이 만든 마술이었다.

빨간 머리의 여자

[빨간 머리의 여자]는 1979년 2월에 개봉된 작품으로 최고 인기작 중의 한 작품이다. 감독은 역시 구마시로 다츠미 감독. 미야시타 준코는 이름도 없는 그저 '빨간 머리 여자'로 나온다. 이 영화 역시 나카가미 겐지(中上建次)의 소설을 영화한 것이다.

트럭운전사 구니히로가 빨간 머리 여자를 길거리에서 줍는다(?). 그 여자가 구니히로의 방에 머무는 것이 벌써 며칠이 지났다. 그녀에게 덤벼들어 살을 섞고 호흡을 교환하길 벌써 몇 번인가. 구니히로의 몸에는 그녀를 품었을 때의 쾌감으로 전류가 흐르는 듯했다.

여자의 유두가 검다. 여자에게는 두 아이가 있었다고 한다. 구니히로는 그 이상 그 여자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는다. 묻는다고 무슨 수가 있겠는가. 마치 휘파람으로 꼬신 개를 집에서 키울 것인가 쫓아 낼 것인가 하는 문제와도 같은 것이었다.

한편, 구니히로는 회사의 동료 다카오와 함께 사장의 딸, 카즈코를 윤간한 전력이 있다. 3개월 전이다. 불량하고 엉덩이 가벼운 그녀는 애가 들어섰고 다카오에게 함께 도망치자고 압력을 가해온다. 반복되는 일상, 따분한 생활에서 벗어나고 싶은 카즈코 였다.

구니히로는 빨간 머리 여자를 누이의 집으로 데리고 간다. 누이는 그녀를 어디선가 본 듯하다고 말한다. 그 말에 극도로 긴장하는 빨간 머리여자.

하지만 구니히로에게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녀의 과거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그녀가 지금 자기 옆에 있다는 것, 그리고 서로를 품을 수 있다는 것, 그것만이 중요했다. 빨간 머리는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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