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로영진공] 모모 - 봉만대 감독의 한국형 V-cinema

몇 년전 ETN에서 의 개봉을 앞 둔 봉만대 감독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습니다.

배경은 삼겹살을 구워 먹는 노천 술집이었고 쇼 호스트 격인 세 명의 코미디언(김구라, 황봉알, 노숙자)은 늘 그랬듯이 인터뷰 상대를 대상화 시켜 시청자들로 하여금 웃음과 공감대를 이끌어 내려는 시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봉만대 감독의 에로 비디오 감독 시절을 거론하며 그 시절 배고프지 않았느냐며 일반인들로부터 천하게 여겨짐을 당하는 에로 비디오 업계를 웃음의 대상으로 만들려는 시도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에로비디오계가 단군 이래 사상 최대의 전성기를 맞이 했던 2000년에 이란 작품으로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비디오 업계에서 데뷔한 후 충무로 극영화 감독 입봉이라는 전설을 만들어낸 감독이 자신의 에로 비디오 감독 시절을 어떻게 웃음의 대상으로 만들지 궁금해져 귀를 쫑긋 세우고 잔뜩 기대를 했는데 봉감독은 시청자의 기대와 자기들끼리 웃고 떠들고 있던 세 명의 코미디언에게 찬물을 확 끼얹어 버렸습니다.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봉감독은 대강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 내가 일했던 에로 비디오 업계는 당신들의 웃음의 대상이 될 정도로 하찮은 곳이 아니다. 충무로 극영화를 만들던 에로 비디오를 만들던 나는 나의 길을 갈 뿐이고 후회는 없다. 당신들 그 따위로 나의 세계를 비웃지들 마.' 라는 식의 대답을 했고 웃고 떠들어 보자며 오바를 하고 있던 세 명의 코미디언들과의 술자리를 숙연하게 만들었습니다.

봉만대 감독은 대부분의 에로 비디오 감독들이 가명을 쓰는 업계 분위기 속에서도 꿋꿋하게 본명을 사용했던 - 자신의 일과 자신의 이름과 자신의 과거에 당당한 - 말 그대로 멋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장면을 아무 생각없이 보고 있던 저는 일종의 감동을 받고야 말았습니다. 영화를 잘 만들고 못 만들고를 떠나 저 정도의 직업 의식을 갖고 있다면 충분히 의미 있는 작품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죠. 멋있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는 무한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아무런 의미 없이 웃기는 데에만 목적이 있는 코메디 프로그램에 출연해 자의식을 버리고 프로그램에 동화되어 웃기기를 거부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봉만대 감독의 2001년 작품 는 에로 비디오라기 보다는 일본의 V-cinema 에 가깝습니다.

한국의 에로 비디오 업계가 초호황기를 구가하던 시절 말 그대로 공장에서 찍어내듯 만들어지던 보통의 한국 에로 비디오들이 모텔방과 원룸 자취방을 배경으로 등장 인물 전원의 관계를 섹스로 연결시킨 후 온갖 아크로바틱한 체위를 보여주는데 전념하는 분위기에서 디바 필름과 봉만대 감독은 과감하게 일본으로 건너가 V-cinema 제작사 Z.promotion과 합작으로 를 만들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봉만대 감독은 2~30대의 젊은 남성들을 상대로 도박, 섹스 그리고 야쿠자 영화를 줄기차게 만들고 있던 V-cinema 업계의 제작 노하우를 기반으로 일본 야쿠자 세계에서 양아치 생활을 하고 있는 한국인 남성의 파란 만장한 인생을 그럴 듯하게 담아내는데 성공하였습니다.

한국 남자라면 누구나 상상하는 일본 여성과의 섹스라는 환타지와 야쿠자와의 싸움이라는 액션 영화에서나 느낄 수 있는 쾌감을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획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는 무엇보다도 나이는 먹을만큼 먹었는 데 돈도 없고 직업도 없어 도망치듯 일본으로 떠난 인생이 피곤한 남자의 이야기입니다.

▲ 스틸 컷

한국에서 여자 친구 연희와 함께 일본으로 온 봉상은 야쿠자들의 마약을 파는 일로 위태로운 생활을 이어가는 잡초 같은 청춘입니다.

여자 친구 연희는 말도 통하지 않고 친구도 없는 일본 생활이 지겨워져 자꾸 한국으로 돌아가자고 보채기 시작하고 설상가상으로 야쿠자들의 마약을 빼돌려 팔다가 들킨 후 일이 복잡하게 꼬이기 시작합니다. 그때 유끼라는 클럽 마담에게 도움을 받은 봉상은 그녀에게 묘한 감정을 갖게 됩니다. 물론 유끼와는 섹스도 합니다...ㅎㅎ

인상적인 부분은 에로 비디오 임에도 불구하고 그리 야하지는 않다는 점입니다.

물론 봉상역을 맡은 에로계의 탑스타 박진위씨가 근육질의 몸매를 자랑하며 다양한 장소에서 섹스씬을 펼치긴 하지만 색정적으로 꼴려오는 맛은 그다지 없습니다.

영화가 시작한 후 중반 이후까지는 야쿠자 세계에서 잡초처럼 살아가는 하이에나 같은 남자 이야기가 거친 느낌으로 펼쳐지는 가운데 베드씬은 잊을만하면 가끔씩 나오는 양념 같은 느낌이었다가 한시간이 넘어가고 부터야 이 영화가 에로 비디오였다는 것을 확인하듯 본격적인 베드씬이 시작됩니다.

'극영화로 가기 위해 에로 배우를 하는 건 아니예요. 전 에로 배우이고 앞으로도 계속 에로 배우를 할 겁니다. 극 영화에 캐스팅이 된다고 해도 여전히 에로배우죠.' 라고 하던 봉상의 한국인 여자 친구 연희 역을 맡은 당찬 신세대 에로 스타 김한(김하니)씨의 비중이 그리 크지 않은 점도 조금 아쉬웠습니다.

▲ 스포츠신문에 실린 의 주인공 김하니씨

아무리 야쿠자들이 나오고 일본 여자랑 섹스를 해도 역시 이 영화에서 가장 훌륭한 장면은 봉상과 연희가 도심에서 데이트를 하는 부분입니다.

향수병에 시달리던 연희는 봉상에게 이별 선언을 들은 후 그와의 행복했던 시절을 회상하는데 맑은 이미지의 그녀가 봉상과 데이트를 하며 '사랑이 뭐 별거냐? 그냥 좋아하면 되는 거지.'라며 폴짝 폴짝 뛰어다니는 장면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봉상과 연희가 수많은 인파 사이에서 쓸쓸한 느낌으로 나란히 함께 앉아 있던 장면도 타향 살이의 외로움과 쓸쓸함이 잘 표현된 것 같아 기억에 남는 군요.

진도희 선배 같은 스타가 되고 싶다던 김한(김하니)씨... 야속하게 은퇴해 버려 아쉬울 뿐입니다.

* 본 기사는 반짝반짝 연애통신(www.yonae.com )에서 제공합니다. 퍼가실 때는 출처를 명기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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