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버닝의 S다이어리] 첫사랑을 만나다

세상은 참으로 좋아졌다. 컴퓨터가 있고 인터넷만 연결되어 있으면 집 안에서도 얼마든지 장을 보거나 쇼핑을 할 수 있고 원고를 다 쓰고도 우체국으로 달려가는 대신 몇 번의 클릭만으로 마감이 가능하니 말이다. 거기다 오래 전 만났다가 헤어진 사람까지 찾을 수도 있다. 그 사람에 대해 약간의 정보만 가지고 있으면 말이다.

얼마 전, 농담처럼 첫사랑이 나를 찾았다. 모 미니홈피를 통해서 찾은 모양인데 자신의 전화번호와 함께 꼭 한번 연락을 달라고 했다. 그의 메시지를 받고도 일주일 정도는 고민을 했다.

첫사랑을 다시 만난다는 것은 분명 설레이는 일이다. 하지만 그와 내가 만난 것은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의 일이다. 10년은 강산도 변하는 시간인데 하물며 사람인 우리야 더 말해서 뭣하겠는가. 그는 이미 내가 알고 있는 그가 아닐 수도 있다. 나 역시 그가 알고 있던 내가 아닌 것처럼 말이다.

그렇지만 마음속에서는 자꾸만 엉뚱하게도 그는 변하지 않았을 것이란 속삭임이 들렸다. 그와 함께 나누었던 모든 기억들은 내 생에 있어 가장 순수했던 순간이었고 또한 아무런 계산 없이 욕망에 충실했으며 사랑하고 싶은 만큼 사랑했던 시간이었으니까. 그리고 그런 기억을 내게 만들어주었던 그는 그 시절 그대로일 것만 같았다.

그는 내 첫 남자는 아니었다. 그러니까 나는 생물학적으로는 처녀막을 가지고 있지 않았었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남자와 Sex를 하는 일이 더 없이 고통스럽게 느껴졌었다.

대체 좋지도 않은 이것을 왜 해야 하는가라는 생각뿐이었고, 관계가 끝나고 나면 욕실로 달려가서 타인의 체취를 물과 비누로 씻어내기에 바빴다. 내가 침대 위에서 낸 신음 소리들은 좋아서도, 포르노 배우들을 따라해서도 아닌, 정말로 아픔에서 오는 신음이었다.

그러다가 그를 만났다. 수많은 우연 속에서 마주쳤던 그와 나는 어느날 부터 서로를 조금씩 좋아하게 되었다. 사는 지역이 달랐던 우리는 늘 주말을 기다리며 평일에는 전화통을 붙들고 살았었다. 전화요금이 17만원씩 나오고 주말마다 서로를 만나느라 다른 일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지만 우리에게 그런건 아무래도 좋았었다.

비가 많이 왔던 어느 여름 오후. 그와 세 번째 섹스를 하게 되었고 난생 처음 오르가즘을 느꼈다. 별로 좋은줄 몰랐던 Sex인데 어째서 그날은 오르가즘을 느꼈던걸까? 아마도 비가 와서 인지도 모르겠다. 비가 오면 감상적으로 변하던 시절이었으니까...

Sex를 하는데 갑자기 여태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강렬한 느낌이 내 등줄기를 훑고 지나갔다. 몸이 오그라드는 동시에 쫙 펴지는 것 같고 울고 싶은 동시에 웃고 싶었다. 내 몸에서 유일하게 성기의 감각만이 살아남는 것 같은 강렬한 체험을 처음으로 하게 된 나는 끊임없이 그를 원하게 되었다.

이제 나에게 있어 Sex는 왜 하는지 모를 아픈 무언가가 아니라 오히려 그 시간을 연장할 수 있다면 어떤 댓가라도 치를 수 있을 것 같았다. 젊고 이제 막 성에 대해 눈을 뜬 나와 그는 만나기만 하면 Sex를 했다. 밥을 먹다가도 TV를 보다가도 우리는 서로를 원하게 되었다.

우리가 Sex를 하지 않아야 할 이유는 아무것도 없었다. 체력적으로 힘들지도 않았고, 그도 나도 자취생이었기에 남들처럼 여관비 걱정을 할 필요도 없었다.

처음 오르가즘을 느낀 이후. 나는 그와 섹스를 하면 매번 오르가즘을 느끼고 싶어 안달이었고 어쩌다가 오르가즘을 느끼기도 전에 너무 흥분한 그가 사정이라도 하면 억울하기까지 했었다. 아무튼 그와 나는 많은 것을 공유했지만 그 중에서도 아직까지 머릿속에 선명하게 남아있는 것은 Sex였다. 첫 경험. 첫 남자보다 더 강렬한 첫 오르가즘 때문이었나보다.

본가에는 그가 내게 선물한 인형이며 함께 맞춘 커플링이 상자 속에 들어 있었는데 그의 연락을 받은지 일주일째 되던 날. 나는 그 상자를 내 집으로 가지고 왔다. 상자를 열자 그 물건들이 10년이라는 세월을 건너뛰고 마치 어제 일이었던 것처럼 생생하게 다 기억이 났다. 그리고 나는 마침내 그의 핸드폰 번호를 누르게 되었다.

예전보다는 조금은 성숙해진 것 같은 목소리가 전화를 받았다. 우리는 정말 너냐? 너 맞느냐라는 말을 몇 번이고 했다. 기억은 하나씩 입을 통해서 뱉어졌고 통화를 하는 동안 내 주변을 둥둥 떠 다녔다. 조금은 흥분한 상태인 나처럼 말이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우리는 마침내 예전처럼 정다워져 버렸다. 한번 사랑했던 사람들 그리고 몸이 기억하는 사람들이라서 그런지 너무도 쉽게 또 너무도 빨리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품게된 것이다. 그리고 통화를 한 그 주의 금요일 날 저녁 그와 나는 만나게 되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런 스토리들의 대개가 그러하듯, 나 역시 그를 만나지 말고 그냥 기억으로 남겨둘 것을 하는 생각을 한다. 함께 저녁을 먹고 와인을 마실 때 까지만 해도 좋았었다.

어떤 것은 변하지 않았고 또 어떤 것은 변했다는 것을 느끼면서, 나는 내가 그의 삶에서 빠져있는 세월 동안에 변한 그를 빨리 읽어내고 싶었다. 하지만 와인에 취해 호텔방 침대에서 그와 Sex를 할 때. 나는 비로소 그와 나는 만나지 말아야 했다는 것을 느꼈다.

그와의 섹스는 아무런 감흥도 주지 않았다. 원나잇 스탠드같은 흥분이나, 혹은 익숙한 연인의 편안함 같은 것들 중 그 어느 것도 아니었다. 몸은 그를 기억하고 있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10년 만에 다시 안은 그는 너무나 낯설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머리는 그와의 섹스를 익숙한 것으로 받아들이려고 했다.

섹스를 하면서 나는 지난 10년동안 나와 잠자리를 함께 한 남자들의 얼굴과 그들의 테크닉을 떠 올렸다. 그리고 또 그를 스쳐지나갔을 여자들을 상상했다. 우린 이미 너무 오랫동안 상관없는 사람으로 살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상을 품었던 것이었다. 10년의 세월은 그렇게 가볍게 뛰어넘거나 쉽게 옆으로 밀쳐둘만한 것이 아니었다.

어쩌면 그와 섹스를 하지 않고 식사를 하고 와인을 마셨다면 괜찮았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그 보다 사실은 섹스를 막 하려고 할 때 내가 조금 부끄러워하자 과거에 대담했던 나를 말하면서 웬 내숭이냐는 듯한 말을 그가 하지 않았다면, 그랬다면 그와의 섹스가 조금은 괜찮았을까?

나는 집중을 할 수도 없었고 느낄 수도 없었다. 그와의 세 번째 섹스에서 처음 오르가즘을 느끼기 이전의 나로 돌아간 것 같았다. 다만 아파서 신음을 내는 게 아닌, 이제는 기계적으로 혹은 의례적으로 내는 신음소리를 냈을 뿐이었다.

첫사랑을 만나서 다시 섹스를 하는 일은 어지간한 준비 없이는 힘드는 일이 아닌가 싶다. 익숙하다고 믿지만 실은 익숙하지 않으며, 새롭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새롭지 않을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그냥 기억으로 뒀으면 좋았을 첫사랑을 나는 그렇게 보냈다. 그리고 그가 내게 준 선물을 담았던 상자는 본가가 아닌 쓰레기통으로 직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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