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동화] A Cat

오늘은 검둥이의 출산 예정일이다. 다락에 마련해 준 조그마한 박스 안에서 검둥이는 지금 새끼를 낳기 위해 몸을 잠뜩 움크리고 있다. 재떨이엔 담배 꽁초가 가득하고 거칠어진 입술은 침을 묻혀봐도 계속 타들어 가는 것 같다.

'겨우 고양이잖아요? 왜 그렇게 긴장하는 거에요?'

임신 6개월째인 아내는 고양이의 출산에 바짝 긴장해 있는 내가 적잖게 못마땅한 모양이다. 하긴 그녀의 임신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도 임신중 섹스 체위에 대해 먼저 고민했던 나였기에 그녀의 불만도 전혀 이해 못할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녀는 모르고 있다.

검둥이가 현재 낳고 있는 아기 고양이는 어쩌면 나의 아이? 혹은 새끼? 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그저 단순한 불장난에 불과했다.

임신 초기 여러가지로 히스테리를 부리던 아내는 급기야 기르던 개까지 팔아버리고 늘씬한 암컷 샴 고양이를 사가지고 왔다. 그 고양이를 처음 본 순간 무언가 야릇한 감성이 내 넓적다리 안쪽을 휘감고 돌았던 것을 부인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그건 절대 사랑 이상의 감정은 아니었다. 그건 곧 태어날 내 아이의 영혼을 걸고 맹세할 수 있다. (그러니까 검둥이가 아닌 아내의 배에서 태어날 나의 아이 말이다.)


아내가 친정에 가고 난 그날 밤.

접대 술자리 때문에 난 잔뜩 취한 채 집에 들어왔고, 검둥이는 침대 한 귀퉁이에서 빛을 내는 연두색 동공으로, 비틀거리는 내 몸뚱아리를 세밀하게 주시하고 있었다.

풀린 내 다리가 옆으로 살짝 꺽이면서 쿵 소리를 내며 바닥에 무릎을 찧었고, 검둥이는 놀란 듯 벌떡 몸을 새워 아파하는 나를 동정하듯 꼬리를 흔들었다.

순간 우리 둘 사이에 존재하던 서로 다른 종에 대한 편견과 무관심의 시선이 아주 조금 비틀어졌다. 나는 그 어느 때보다 격렬하게 발기 했고, 검둥이는 나의 손길을 외면하지 않았다.

물론 삽입 순간 단발마와 같은 비명을 지르긴 했지만 검둥이는 내 손을 핥퀴지도, 유연한 몸을 비틀어 내 성기를 깨물거나 하지도 않았다. 그저 내가 사정할 때까지 조용히 웅크리고 앉아, 먹이가 나타나길 기다리듯 귀를 쫑끗 세우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검둥이도 그때 나와 같이 그 상황을 즐겼다고 확신한다.

당시 난 임신에 대한 히스테리로 잠자리를 거부하는 아내 때문에 지쳐 있었고, 검둥이 역시 발정기의 절정을 지날 때라 그 누구보다 짝짓기에 목말라 있었다.

나의 성기가 팽팽하게 늘어난 검둥이의 질 속 깊이 들어갔을 때 그 녀석은 꼬리를 늘어뜨려 부드럽게 내 배꼽 언저리를 간지럽혔다. 내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사정한 건 그녀석의 꼬리 끝부분이 나의 배꼽 깊은 곳을 찌른 바로 그 순간 이었다.

사정이 끝난 후 검둥이는 혓바닥으로 자신의 질 부분을 몇번인가 낼름 핥더니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창문 너머로 사라졌다. 다만 창문에서 뛰어내리기 직전 나와 잠깐 눈이 마주쳤는데 검둥이는 마치 나에게 다짐을 받으려는 듯한 눈빛이었다.

우린 그냥 즐긴 것 뿐이라고...

까만 밤에 어울리는 짜릿한 비밀을 공유한 것 뿐이라고..

하지만 검둥이의 수태를 알고부터 나의 고민은 시작되었다.

혹시나 하고 데려간 동물 병원에서 의사는 검둥이의 수태를 알려줬고 출산 예정일을 계산해보니 나와 관계를 맺은 날과 정확히 일치하였다. 더군다나 초음파 검사를 해보니 검둥이의 자궁안엔 오직 한마리의 새끼만 발견될 뿐이었다.

'거 참 이상하네요... 자궁안의 새끼 말입니다. 고양이라기엔 좀 형태가 불안정하네요. 꼬리도 없고 앞발도 짧고... 하하하 꼭 사람 같네요.'

의사는 제법 유쾌한 농담을 했다는 듯 즐거워 했지만 따라 웃기에 내 안면 근육은 지나치게 경직되어 있었다.

그 후 난 한명의 산모와 한마리의 새끼 밴 암고양이의 수발을 들며 생활 하는 수밖에 없었다. 가끔씩 검둥이는 아내에게 보란 듯 내 무릎 위에 올라 휴식을 취하곤 했는데 그런 검둥이의 턱밑을 어루만지는 나는 자연스러움을 가장하다가 오히려 손가락을 미세하게 떨어서 화가난 검둥이에게 손가락 끝을 가볍게 물리곤 했다.

과연 나의 아이일까? 그게 생물학적으로 가능한 일인가?

나는 아내가 없는 틈을 타 진지하게 검둥이에게 물어봤다.

'내 아이야? 공원에 사는 도둑 고양이 새끼 아냐? 내 눈을 똑바로 보고 말해봐.'

하지만 검둥이는 도통 영문을 모르겠다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더니 이내 내 무릎 위로 폴짝 뛰어올라 몸을 움크리며 잠을 청할 뿐이었다.

검둥이의 등을 쓰다듬으며 사람과 고양이 사이에서 잉태가 가능할리 없다고, 과대망상이라고 스스로를 안심시킬 때 검둥이의 꼬리가 나의 배를 부드럽게 간지럽히기 시작했다. 그렇게 명치와 아랫배 사이를 간지럽히던 녀석의 꼬리가 단호하고 분명한 움직임으로 나의 배꼽 한가운데에 쑤욱 하고 들어왔다.

틀림없다. 내 아이다.


검둥이의 산통은 새벽까지 이어졌다.

다락방 문 앞에서 어쩔 줄 몰라하는 내가 안쓰러웠던지 아내는 무거운 몸을 이끌고 나와 같이 문 앞에서 출산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왜 이렇게 조용하지? 혹시 무슨 일이라도 일어난거 아냐?'

'걱정하지 마요. 원래 고양이는 소리없이 새끼를 낳는 법이에요.'

'그래도 이건 너무 조용한데? 한번 들어가볼까?'

'고양이 새끼 날 땐 절대 들여다 보지 않는 법이에요. 남한테 새끼 낳는 걸 들키면 어미 고양이는 바로 새끼들을 먹어치우니까..'

난 남이 아니야. 어쩌면 저 새끼의 아빠일지도 몰라 라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믿어주지 않을 것 같아 그만 두기로 했다. 하긴 믿어준다면 그 후가 더 큰 일일지도 모르지만...

아앙...

순간 다락방 안에서 울음소리가 작지만 분명하게 들렸다.

'아앙? 지금 새끼 고양이가 아앙 이라고 울었어요?'

아내는 놀란 듯 내 팔을 꽉 움켜잡으며 물어보았다. 그랬다. 분명 인간의 아이가 울듯 아앙하고 울었다. 하지만 아내한테 뭐라고 설명해야 좋을까? 저 다락안의 새끼는 사실 나와 검둥이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이다. 하지만 걱정마라. 단순한 불장난이었을 뿐이다. 내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너다. 그렇게 아내를 설득해야 할까?

주저하던 나는 일단 아내를 방으로 데리고 가 뉘였다. 다락안의 아이를 보고 아내가 받을 충격이 배속의 아이에게 영향을 주지나 않을까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아니야.. 무슨 아앙.. 분명히 야옹이라고 했어.. 걱정하지 말고 좀 누워 있어. 내가 확인하고 올테니'

다락방으로 향하면서 나는 가급적 조용히 처리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생각해 보았다. 보호 시설에 맡겨야 하나? 근데 얼굴에 고양이 수염같은게 자라 있으면 뭐라고 설명하지? 아니면 동물원에 맡길까? 근데 무슨 동물이라고 해야하지? 고양이 원숭이? 서커스단 같은 곳은 두말 않고 받아주지 않을까? 혹시 나한테 돈 같은 걸 줄지도 몰라..

아니면 내가 그냥 키워야 할까? 하지만 아내한테 뭐라고 설명하지? 아내는 그 아이를 보는 순간 충격에 휩쌓여 사산해 버릴거야. 그럼 난 아마 이혼 당하겠지? 역시 키우는건 무리야... 정 안되면 연구소 같은데 맡기지 뭐... 분명히 흥미로워 할꺼야..

조심스럽게 다락방의 문고리를 잡아 돌리자 문이 열리면서 낡은 나무끼리의 마찰음이 들려왔다. 조용했던 바깥에 비해 검둥이의 출산은 꽤나 고통스러웠던 듯 방 바닥은 터진 양수와 원인을 알 수 없는 핏물로 흥건히 젖어 있었다. 양말이 젖는 걸 피해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와 박스 안을 살펴 보았다.

하지만 박스 안엔 피와 양수가 뒤섞인 듯한 주먹 크기의 젤리 덩어리가 눅진하게 달라 붙어 있을 뿐이었다. 책상 밑과 장농 뒤 다락방 여기 저기를 찾아보았지만 검둥이와 아기는 그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었다.

야옹.. 순간 창문 넘어 검둥이의 울음 소리가 들려왔다.

빠르게 창문 쪽으로 달려가 바깥을 보니 마당 한 어두침침한 구석에서서 검둥이가 바닥에 쓰러져 있는 무언가의 한 부분을 뜯어내 한입에 삼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 무언가는 아마도 이미 죽어 있었거나 애초에 산 것이 아닌었던 듯 검둥이가 몸을 뜯어내 한조각 한조각 집어 삼키는 동안 미동도 하지 않고 길게 누워 있었다.

검둥이의 빛나는 연두색 동공은 그 무언가의 마지막 덩어리를 낼름 집어 삼킬 때까지 아무런 감정의 동요도 비치지 않았다. 검둥이는 몇번인가 입맛을 다시더니 몸을 둥그렇게 세워 있는 힘껏 기지개를 한 후 천천히 내 앞으로 걸어왔다.

그리고는 사뿐하게 창문을 뛰어 넘어 다시 내 무릎에 올라타더니 몸을 움크리고 잠을 청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석이 편히 잠들 수 있도록 턱을 어루만져 주는 일 외에는 달리 해줄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검둥이의 자궁이 있는 자리에 손바닥을 대어 보니 따뜻한 다른 부분과는 달리 유독 그곳만 살얼음이 낀 것처럼 차가운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그 손바닥이 얼어버릴 것 같은 차가움을 받아들이며 그 무언가는 이미 오래전에 자궁 안에서 죽어 버렸단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검둥이는 이미 죽은 채 밖으로 나온 무언가를 고양이의 본능이 가르치는 데로 다시 자궁안으로 돌려보낸 것이다.

그 무언가는 왜 죽어버린 걸까?

그 무언가는 진짜 내 아이였을까?

이제 확인할 방법은 없지만 한가지 분명해 지는 것이 있었다.

나는 고양이를 키울 자격이 없다는 것.


그 일 이후로 아내는 검둥이를 극도로 혐오하게 되었다. 자신의 태아를 먹어버렸다는 것이 아무리 고양이의 습성이긴 하지만 아기를 밴 산모의 입장에선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모양이다.

결국 난 검둥이를 혼자 사는 직장 동료에게 맡길 수밖에 없었다.

그사람은 외로웠고, 동물을 사랑했고, 청결한 걸 좋아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여성이었다. 나는 안심하고 검둥이를 맡길 수 있었다.

모든 고양이가 그러하듯 검둥이 역시 떠나는 그 순간까지 어떠한 미련의 눈빛도 보내지 않았다. 그저 좁은 상자 안에 갇혀 있는 것이 답답한 듯 발톱을 꺼내어 벽을 삭삭 긁는데 열중할 뿐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그 개 팔지 말고 키울껄 그랬나봐요.. 역시 애완동물은 고양이보단 개에요..'

검둥이를 태운 자동차가 떠나는 걸 바라보면서 아내는 자기 손으로 팔아버린 개가 아쉬운 듯 다시 그 개를 찾아 올 수는 없는 거냐고 물었다. 아마도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개든 고양이든 난 애완 동물을 키울 만한 사람이 못된다.

그리고 얼마 후 아내의 출산일이 다가왔다.

아내는 첫출산에 대한 공포 때문인지 거의 패닉 상태로 침상위에서 발버둥쳤다. 간신히 아내를 제압한 간호사와 의사는 그러나 열리지 않는 자궁 때문에 다시 긴 시간 동안 아내와 사투를 벌여야 했다.

결국 의사는 내게 제왕절개를 권하였고 아내가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았던 나도 이에 동의하였다.

수술실 밖에서 초조하게 출산 소식을 기다리고 있을 때 수술실 문이 살짝 열리면서 간호사가 들어오라는 신호를 보냈다. 다급하게 안으로 들어가 보니 아내는 이미 탈진한듯 고개를 돌린 채 잠이 들어 있었다. 간호사는 자궁을 갈라 끄집어낸 아이를 조심스럽게 안고 있었다.

'저기요.. 아기가 아빠를 닮은 거 같지는 않네요.. 그러니까 아빠를 닮았다기 보다는...'

간호사는 불안한 표정으로 아이를 감싸안고 나에게 보여주는 것을 꺼려했다. 실랑이 끝에 아기를 안게 된 나는 아직 눈도 못 뜬 채 뭐라고 칭얼대고 있는 아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과연 간호사의 말 그대로 였다. 아이는 나를 전혀 닮지 않았다. 나를 닮았다기 보다는 오히려...

이때 아기를 감싸안은 포대기 안쪽에서 무언가 밖을 향해 삐져 나오려는 움직임이 느껴졌다. 다리를 펴려고 하나? 나는 아이가 불편하지 않게 감싸 안은 포대기를 조심스럽게 펼쳐 주었다. 그러자 포대기 안쪽에서부터 무언가 뾰족하고 복실복실한것이 툭 튀어나와 나의 손끝을 간지럽혔다.

그것은 작고 앙징맞은 하얀색 꼬리였다.

아기는 나를 닮았다기 보다는 확실히 아내가 팔아버린 개를 닮아 있었다. 특히 눈두멍이에 번져 있는 검은색 얼룩은 마치 판박이와 같았다. 아기는 뭐라고 칭얼대다가 혀를 내밀어 내 손바닥을 핥더니 이윽고 손가락을 젖꼭지인냥 빨기 시작했다.

분명한 건 나나 아내나 아직 애완 동물을 키울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차마 아기가 결사적으로 빨고 있는 손가락을 그 조그마한 입에서 빼낼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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