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특통신] 창피했던 기억

'나의 접선이야기' 게시판의 목적은 사실 당원들의 경험, 혹은 썰을 본받아 자신의 작업에 있어 방향성의 초석으로 삼는 데에 있다.

이러한 '옛것을 배우고 새것을 익히는' 게시판의 원 목적에 가장 부합하는 글을 올려주시는 이 있으니, 그 이름 '앤어보이' 님인데, And a Boy 인지, Anul Boy 인지 알 수 없으나 하여간 앤어보이님의 글에서 우리는 자신의 쪽팔렸던 경험을 공개함으로서 다른 이가 이와 같은 쪽팔린 경험을 다시 하지 않게 해주는 자애로운 배려심과 자신의 유머러스한 필력을 자랑함으로서 '뻐꾸기 한 마리 날려주시라'를 장문의 글 행간에 숨겨 놓고 있는 검은 욕망을 동시에 읽을 수 있다.

어찌 되었든 이것은 당원들이 보고 배워야 할 모범이 되는 바, 이번 주 접특 통신에 싣는다. 작업에 혹은 경험에 참고하시라!


창피했던 기억 -연애-(2005/08/18)

by 앤어보이

첫사랑을 한건 스물네 살 때였다.

물론 그전에 몇번의 연애 경험도 있었고 또 여자를 몰랐던 것도 아니지만 '내가 지금 사랑이란 것을 하고 있구나' 라는 걸 절실히 깨닫게 해준건 당시에 만났던 어떤 여자였다. 영화와 관련된 일을 하고 싶어했고 당시에도 그와 관련된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내가 보기엔 영화보다는 술을 더 좋아하는 것처럼 보였다.

실제로 둘이 만나 영화를 보기보단 술을 마신 적이 훨씬 많았고 둘이 만나 영화 이야기를 하는 시간보다 술 마신 추억담을 늘어놓는 시간이 훨씬 길었다. 하긴 그녀가 영화를 좋아하던 술을 더 좋아하던 나는 아무 상관없었다. 그녀와 공유할 수 있는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사실, 그것 하나만으로 나는 더 바랄게 없었다.

그날도 신촌 어느 까페에 들어가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원래는 커피나 한잔하자고 해서 들어간 곳인데 분위기가 술마실 분위기라고 그녀가 커피대신 병맥주를 몇병 주문한 것이다. 그녀는 대학교 1학년때부터 죽으나 사나 맥주파였고 나는 그녀를 만나기 전까지 오매불망 소주파였다. 그리고 둘이 만나서 술을 마시면 곧 죽어도 맥주만 마셨다. 지당한 일이었다.

취기가 어느정도 오르자 그녀에게 무언가 내 자신을 과시하고 싶었다. 스스로 보잘것 없는 존재라는 걸 너무나 잘알고 있었지만 그녀 앞에서 보다 그럴듯한 남자로 보이고 싶었다. 하지만 늦은 저녁 신촌의 어느 까페 테이블에 앉아 술이 알딸딸하게 취한 채로 대체 어떤 멋진 모습을 보여줄수 있단 말인가?

유리겔라처럼 엄지와 검지만으로 숟가락을 휘는 재주를 보여 줄수도 없고 그렇다고 '저기 보이는 콩깍지가 깐 콩깍지인가 안깐 콩깍지인가'를 능숙하게 말해보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복권에라도 당첨되었다면 골든벨이라도 울려서 나의 부귀영화를 과시할 수도 있겠으나 지지리 복도 없는 내 팔자에 언감생신 가당치도 않은 상상일 뿐이었다. 그러던 차에 테이블 위에 아직 따지 않은 병맥주가 한병 있는 것이 보였다.

그래 이거라면 혹시...

내가 학생이던 시절은 아직 참이슬이 나오기 전이라 소주의 대명사는 '진로 소주'였다. 지금이야 모든 소주가 누구나 쉽게 돌려서 딸 수 있게 나오지만 당시 '진로 소주'는 병맥주처럼 오프너가 아니면 따기 힘든 병마개 타입의 소주였다.

해서 학교 다닐때 공원에서 술을 마시면 누군가가 꼭 오프너 역할을 대신 해야했다. 대부분의 경우 라이터를 이용한 '맥가이버과'의 오프너 역할을 했지만 걔중 몇몇은 이빨을 지렛대 삼아 병마개를 따는 '바야바과'의 오프너를 자임하기도 했다. 손재주가 젬병인 나는 전형적인 '바야바과' 오프너였다.

'나 학교 사람들하고 공원에서 술마시면 소주병은 그냥 이빨로 까! 여태까지 내가 깐 소주병만 몇백병이 넘을껄?'

거짓말이 아니었다. 물론 몇백병이 넘는다는 말은 과장이었다. 내가 007에 나오는 죠스도 아닌데 몇백병이 넘는 소주 병마개를 따고 치아가 성할리 없었다. 다만 몇십병 정도에 불과했지만 이빨로 병소주 마개를 따는데 능숙했던 것은 사실이다.

여대를 나온 그녀는 내말이 믿기지 않는듯 저으기 놀란 표정으로 여러가지를 물어보기 시작했다. 진짜야? 이빨은 괜찮아? 정말 이빨로 소주병이 까져? 후후후 이제 곧 나의 매력에 포로가 되겠군. 나는 그녀의 대답을 살짝 씹어주고 아직 따지 않은 맥주병을 내 앞으로 가져온 다음 그녀에게 물었다.

'직접 보여줄까? 이 병 이빨로 한번 까봐?'

사실 그제껏 맥주병 마개를 이빨로 딴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맥주를 마실때마다 마침 오프너가 있었서 그랬던 것은 아니고 단순히 병맥주를 마실 기회가 별로 없었기 때문이었다. 다만 소주병 마개나 맥주병 마개나 똑같은 마갠데 뭐 별다를게 있겠냐 라는 막연한 자신감은 가지고 있었다.

'어 한번 까봐'

그녀는 어지간히 궁금했던지 물어보기가 무섭게 바로 대답했다. 하지마~ 무섭단 말이야~ 아이씨 그러다 병이 깨지면 어쩌려고 그래~ 등등의 염려 멘트를 기대했던 나는 조금 실망했지만 그녀가 기대하는 것이 확실해진 이상 더더욱 물러설 수 없는 일이었다.

맨정신이었다면 오프너를 옆에두고 이 무슨 바보 같은 짓인가! 바로 오프너로 병마개를 딴 후 헤헤헤 농담이었어~ 어물쩍 넘어갔을 테지만 당시에 그런 이성적인 판단을 하기엔 맥주를 너무 많이 마신 상태였다.

그래서 맥주병을 움켜쥐고 바로 이빨로 병마개 윗부분을 물었다. 으윽~ 하고 힘을 주며 맥주병을 따 보았다. 하지만 병마개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민망했다. 바로 앞에서 그녀가 지켜보고 있는데 신음소리만 내고 실패하다니...

'야 안되잖아... 그냥 오프너로 따~'

아마도 그녀는 걱정이되어 한 말이었겠지만 듣는 나로서는 상당히 자존심이 상했다. 그럼 그렇지 니가 제대로 하는 일이 뭐가 있겠니 라는 조롱처럼 들렸다. 그래서 그녀의 충고를 무시하고 다시 한번 맥주병을 움켜잡았다. 이번엔 두손으로 움켜잡았다. 그리고 두눈을 질끈 감고 온 힘을 다해 이빨을 지렛대 삼아 맥주병 마개를 물어 뜯었다.

우두둑!

순간 정말 우두둑! 하는 소리와 함께 무언가 빠졌다는 느낌이 온몸으로 전해졌다. 소주병을 땄을 때와 흡사한 그런 느낌이었다. 순간적으로 이번엔 성공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맥주는 소주와 달리 병마개가 따지는 소리도 희안하구나. 과연 비싼술은 뭐가 달라도 한참 다르군. 드디어 성공했다는 생각에 감았던 눈을 뜨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감탄하라~ 나를 다시 보았다고 말하라~ 내가 바로 최민수니라~

하지만 예상과 달리 그녀는 경탄이 아닌 경악스런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아 너무 터프했나? 확실히 여대를 나와서 이런 남자들의 세계에 익숙하지 않나 보군..

. 이때 입가에서 무언가가 흘러내리는 감촉이 느껴졌다. 침이라고 생각했다. 아 쪽팔리게 이런 경사스런 순간에 침을 흘리다니... 아무래도 너무 신경을 곤두세웠나 보네... 뭐 하지만 이정도 쯤이야... 라고 스스로를 위로할 때 그녀가 바짝 긴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야... 너 입에서 피나...'

그랬다. 손으로 입가를 훔쳐보니 과연 내가 현재 흘리고 있는 것은 침이 아닌 시뻘건 피였다. 어랍쇼? 내가 왜 피를 흘리지? 병마개가 따지면서 병조각이라도 깨졌나?

하지만 맥주병 위의 병마개는 미동도 않고 굳건하게 병을 막고 있었다. 라는 것은... 하면서 손가락으로 이빨을 점검해보니 과연 오른쪽 송곳니 옆 이빨이 반쯤 빠진채 흔들거리고 있었다. 그러니까 우두둑! 소리를 낸건 병마개가 아니라 나의 이빨이었던 것이다.

'너 피 너무 많이 난다. 일단 이걸로 막고 있어.'

하며 그녀는 테이블 위의 냅킨을 한움큼 건냈다. 냅킨으로 반쯤 빠진 이빨을 누르며 한참을 기다리니 흘러내리는 피가 어느정도 지혈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걱정스럽다는 듯 나를 바라보는 그녀를 곁눈질하며 오늘 컨디션이 별로였다는 변명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흔들거리는 이빨과 흐르는 피 때문에 아무 말도 할수가 없었다. 사실 변명을 하면 할 수록 비참해지는 상황이었다. 오히려 말을 할수없게 된것을 감사해야 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하지만 너무 창피했다. 개망신이란 이런걸 두고 하는 말이구나 온몸으로 실감할 수 있었다. 설마 그럴리야 없겠지만 너같이 병신같은 놈은 처음이다 우리 헤어져! 라고 그녀가 이별 선언을 해도 할말이 없을 것 같았다. 실제 지혈이 되면서 잇몸이 부어오르자 그 부위가 너무 아파와서 무언가를 말할 정신도 아니었다.

그렇게 한참을 어색한 침묵으로 보내다가 화장실에 가서 입 주위의 피를 닦았다. 치아 전체가 시뻘건 핏물에 물들어 있었다. 빠진 치아를 확인해보니 뿌리까지 완전히 빠진 것은 아니어서 며칠 고정만 잘 시키면 그런데로 잇몸에 붙어있을 것도 같았다.

냅킨으로 입을 감싸는 동안 은근히 치과에 들어갈 비용을 고민했던 나로서는 일단 안도의 한숨부터 나왔다. 대충 수돗물로 마무리 세수를 하고 자리에 와 앉으니 그녀가 다 안다는 듯한 얼굴로 내게 말했다.

'너무 걱정하지마. 치과 비용 내가 반 낼께...'

물론 나를 걱정해서 하는 말이었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빨이 빠져서 피가 철철 날때 이상으로 창피했다. 어쩜 그리 쪽집게처럼 내 맘을 알고 있는지... 화장실에서 치과 비용을 생각하며 시름에 잠기던 내 모습을 들킨것 같아 너무나 부끄럽고 속이 상했다. 할수만 있으면 이번엔 이빨대신 목을 뽑아서 산지사방에 내 피를 흩뿌리고 싶었다.

'니가 그 돈을 왜 대? 내가 잘못한 거니까 내가 알아서 할꺼야.'

부끄러운 마음에 그녀에게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그리고 어색해진 우리는 그대로 흐지부지 그날의 만남을 마감했을거 같지만...

사실은 그리고 2차 가서 술을 또 마셨다. 그녀는 어지간히 술을 좋아했다. 안주는 나 먹으라는 듯 마른 오징어와 땅콩을 시켜줬다. 고마워서 성한 이빨을 이용해서 아득바득 다 먹어줬다. 그렇게 새벽까지 술을 마시고 그녀를 집까지 바래다 준후 시큰거리는 이빨을 감싸안고 집으로 돌아갔다. 가는 내내 취기 때문인지 창피함 때문인지 혹은 부은 잇몸때문인지 얼굴이 계속 후끈거렸다.

이빨로 병맥주 하나 제대로 못따는 바보라는 이유 때문은 아니었지만 그리고 일년쯤 후 그녀와 헤어지게 되었다. 이빨은 다행히 치과에 가지 않고도 그대로 고정이 되어 지금까지 내 잇몸에 온전히 박혀있다. 다만 날이 추운날 길을 걷다보면 가끔씩 그때 그 이빨이 시큰거릴때가 있다.

밥은 숟갈로

병맥주는 오프너로


간결하지 않은가? 마지막의 심플하고도 강렬한 뒷마무리.

80년대 반공표어를 보는 것 같은 저 간결한 뒷마무리에서 '너희는 나처럼 되지 말지어다' 하는 필자의 인류애적 바램을 읽을 수 있다.

한 편 더 보시겠다.


창피했던 기억 -대학교-(2005/08/18)

by 앤어보이

1학년때 총학이 주최한 '광주 순례'를 따라갔다. 광주 순례니까 의당 5월 18일날 갔겠지 생각하겠지만 4월 말에 갔다. 노동절 전이었던걸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 어떻게 기억하냐면 버스 안에서 어떤 정신나간 놈이 '아 근로자의 날이 얼마 안남았구나.'라고 이야기하던 걸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 톡 쏘아줬더라면 좋았을텐데 내성적인 성격탓에 그런 야박한 짓은 하지 못했다. 다만 기억할 뿐이다. 10년 가까이 된 일을 아직까지 기억만 하고 있다. 당사자는 다 잊었을텐데... 옆에서 듣기만한 나는 아직까지 잊지않고 있다. 물론 기억하고 있다고 해서 딱히 달라지는게 있는 것은 아니다.

광주에 도착하자 마자 망월동 묘지를 찾았다. 광주도 망월동도 처음이었다. 마음이 무거웠다. 버스에서부터 줄곧 같이 다닌 동기생 여자 아이가 나에게 이것 저것을 물어왔다.

나이도 자기보다 많고 평소 잘난척이란 잘난척은 다하고 돌아다니던 사람이니까 분명 광주 항쟁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으리라 여겼던 것 같다. 여자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건 나의 신념에 어긋나는 행위이다.

알지 못하는 부분은 지어서라도 가르쳐줬다. 다행히 그 여자 아이는 아는 것도 별로 없었고 눈치 또한 둔한 편이었다. 약간의 사실과 거대한 창작이 뒤섞여 하나의 가상 현실을 창조해냈다. 전두환이 옆에서 들었더라면 배를 잡고 웃었으리라. 다행히 전두환뿐 아니라 주위 그 누구도 나의 구술 문학에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은 없었다.

그렇게 망월동에 가는 내내 나는 그 여자아이에게 서울의 봄과 광주 민주화 항쟁에 대한 문학적 재구성을 들려줬다. 꽤 감동한 눈치였다. 아는 것은 별로 없지만 감수성은 풍부한 모양이었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망월동 묘지에 도착하니 수많은 무덤이 눈앞에 펼쳐졌다. 수천 수만의 무덤이 당시의 학살을 웅변하듯 빼곡히 들어 차 있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묘비들 행렬에 그저 망연자실한 기분이었다. 이렇게나 많은 무덤이었다니... 이렇게나 많은 묘비였募?.. 그날의 억울한 죽음이 이렇게나 많이 이곳에 잠들어 있다니...

문득 5월의 노래가 생각났다. '왜 쏘았지 왜 찔렀지 트럭에 싣고 어디갔지...' 잠시 읊조리고 있노라니 망연자실은 곧 철철 끓어오르는 분노로 바뀌었다. 전두환 개새끼! 살인마 새끼!

오빠... 무덤이 수만개도 넘어보여요... 여기 묻히신 분들이 전부 그때 돌아가신 건가요?

이미 나의 구술 문학에 깊이 감화되어있던 동기생 여자 아이는 망월동 묘지에 끝도 없이 펼쳐진 죽음의 행열을 확인하자 나보다 더 깊은 절망과 분노를 온몸으로 체감하는 것 같았다.

어느새 두눈은 촉촉히 젖어있었고 굳게 쥔 주먹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이런것을 두고 이른바 '의식화 과정'이라고 하는가 보군... 새삼 뿌듯했다. 사회와 역사에 대해 무지했던 철부지 아가씨를 비로소 투쟁의 한길로, 역사의 한가운데로 인도한 것만 같았다.

그래... 여기 묻힌 분들이 전부 그때 이땅의 민주화를 위해 투쟁하시다 돌아가신 거야...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일이지... **야 우리 오늘 바로 이 장소를 잊지말자...

동기생 여자 아이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눈앞에 끝도 없이 펼쳐진 무덤들을 바라보는 그 순간만큼은, 우리는 동지였다. 어깨동무를 하고 '서전협(서울 지역 전문대 대표자 협의회) 진군가'라도 부르고 싶었다. 그러나 서전협은 노래가 없었다. 혹 있다손 치더라도 당시엔 있는지 없는지도 몰랐다.

이 뜨거운 동지애의 순간을 기념할만한 어떠한 퍼포먼스도 없음을 안타까워하고 있을 때 무리에서 뒤쳐진 나와 동기생 여자 아이를 향해 광주 출신이자 이번 순례의 안내자 역을 맡은 선배가 달려왔다.

야 멍하니 일반 묘역만 보고 있으면 어쩌자는 거야? 5.18 묘역가려면 한참 더 가야 한니까 빨랑 빨랑 움직여!

그렇게 핀잔을 준 선배는 우리에게 빨리 걸을 것을 재촉하고는 서둘러 본진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랬다. 그곳은 일반 묘역이었다.

6.25 동란이후 자연사, 심장마비, 암, 복상사, 급체, 교통사고, 자살, 급성 알콜 중독 등 각종 질병 및 사고로 사망한 분들이 묻혀 있는 곳이었다. 지금 우리가 바라보며 애도했던 그곳에 묻혀있는 분들은 항쟁 당시 돌아가신 분들과 동향이란 것 외에 아무런 연관도 없는 사람들이었다.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었다. 너무나 창피했다. 과연 '좆도 모르면 국으로 침묵하라'는 문장이 뼈속 깊숙이 새겨지는 것 같았다. 너무나 부끄러워서 차마 조금 앞서서 걷고 있는 동기생 여자 아이의 얼굴을 쳐다볼 엄두도 나지 않았다.

눈이 마주치면 경멸에 가득찬 시선으로 나를 쳐다 볼것만 같았다. 아니 이미 이 어색한 침묵이 그녀가 나를 경멸하고 있다는 것을 웅변하고 있는 듯 했다.

그렇게 어색한 침묵속에 진짜 5.18 묘역에 도착하니 도통 아까와 같은 절망감도 분노도 생겨나지 않았다. 아무리 마음을 다잡고 그날의 함성과 울음을 상상해보려 해도 머리속엔 그저 '멍하니 일반 묘역만 보고 있으면 어쩌자는 거야?' 핀잔을 주던 선배의 목소리만이 메아리처럼 울려퍼졌다.

그저 창피하고 민망할 뿐이었다. 다같이 5월의 노래를 부르는 와중에도 삽으로 무덤을 하나 파서 산채로 묻히고 싶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나의 첫 망월동 순례기는 그렇게 어색하니 저물어갔다.

그 후 그 동기생 여자 아이와 이전과 같은 관계로 회복되는데는 한달 넘게 시간이 걸렸던 것으로 기억된다. 하하하 웃으면서 '미안, 내가 모르면서 너무 설쳤어' 한마디하면 될것을 너무나 민망하여 한동안 내가 의식적으로 그녀를 피해다닌 탓이다.

그러나 관계가 이전과 같이 회복된 이후에도 그날 있었던 일에 대한 언급은 둘 다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

아마 그녀도 엉뚱한 묘비들을 보며 분노에 사로잡혔던 그 순간이 나만큼 창피했던 모양이었다. 뉴스를 확인해보니 이제는 5.18 국립묘지가 생겨서 항쟁 당시 돌아가신 분들을 그곳에 따로 모시게 된듯하다. 언젠가 돈도 되고 시간도 될 때 다시 한번 찾아가고 싶다.

잘난척 금지!


* 본 기사는 반짝반짝 연애통신(www.yonae.com )에서 제공합니다. 퍼가실 때는 출처를 명기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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