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버닝의 S다이어리] 콘돔생각

신체 건강한 30대 여성인 나는 혼자 살고 있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날마다 허벅지를 찌르며 기나긴 밤을 보내지 않는다. 가끔 몸이 원하면 나는 섹스를 한다. 아직까지 자위기구를 사서 사용할 만큼 개방적이거나 내 몸에 대해 과감한 시도를 하지는 않지만 말이다. (한번도 해 본적은 없지만 그런 기구들 보다는 당연히 사람이 좋겠지?)

섹스를 하면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이 바로 임신이다. 한달에 한번씩 생리를 하는 걸로 봐서 나도 임신이 가능한 여성이고, 섹스를 해서 남자가 사정을 한다면 당연히 임신이 될 것이다. 하지만 싱글맘이 될 생각도 없고 그렇다고 수술대 위에 누울 맘도 없기 때문에 당연히 피임을 한다.

과거 남자친구가 있을 때는 피임약을 복용 해 보기도 했지만 메스꺼움과 구토 증상이 느껴져서 그리 오래 복용하지는 못했었다. 피임 기구라고는 경구피임약과 콘돔을 사용해본 게 전부여서 뭐라고 확정지어 말하긴 그렇지만 다른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봐도 그렇고 내 경험을 미루어 짐작해봐도 그렇고 콘돔이 가장 좋지 않나 싶다.

흔히 섹스하면 여관, 모텔, 호텔 등을 이용하는 것이 정석이겠지만, 나는 혼자 살기 때문에 굳이 그러고 싶은 마음이 없다. 거기다 섹스를 하기 위해 사람을 만나 본 적이 없으므로, 저런 곳에 대놓고 노골적으로 들어간다는 것이 보수적인 나에게는 아직까지 힘든 일이다.

그래서 나는 주로 내 집, 내 침대를 애용하는 편이다. 그리고 거의 대부분의 섹스는 오늘밤 너와 섹스하고 말테야 라고 작정을 하고 한다기 보다는 분위기가 무르익어서 혹은 필 받아서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내 집에는 언제나 콘돔이 떨어지지 않고 있다. 언제 필 받을지 언제 분위기가 조성이 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한참 무르익는 분위기에서 '나가서 콘돔 좀 사오지 않을래?' 라던가 '잠시만 기다리렴 콘돔을 사 올테니' 라고 말하긴 힘들다. 그래서 콘돔은 늘 침대맡 어딘가 비밀스런 장소에 약 10개 정도 가지런히 놓여있다.

그런데 참 웃기는 것이 말이다. 뭐 아직까지는 콘돔을 쓰자고 했을 때 '감이 안 좋아서' 라던가 '그걸 하면 흥분이 덜하다' 따위의 이유를 대면서 거부하는 인간을 보지는 못했지만, 집에 콘돔이 있다는 사실 가지고 상당히 찝찝한 표정을 짓는 인간들은 간혹 있었다. 그러면 동하던 회도 꼬리를 내린다.

그리고 나는 묻는다. 대체 뭐가 떨떠름한거지? 그럼 그들은 말한다. '여자 집에 콘돔이 있다는 건 좀 그렇지 않냐?' 이 인간들 순진한 걸까 아니면 바보 같은 걸까?

콘돔을 사용하지 않을 경우에 일어날 수 있는 그 모든 최악의 상황을 단지 콘돔 하나로 막을 수 있는 데 어째서 그걸 장만하지 않아야 하나. 순진해 보이려고? 순수해 보이려고? 순진하고 순수해 보이다가 임신하면 하느님이 알아서 다 해 주시나?

아니다. 임신은 어떤 상황에서 하던간에 결혼을 하고 한 임신이 아니라면 당연히 문제가 많다. 남자한테 조신한 척 하느라 그 모든 위험을 감수하느니 차라리 그들의 표현대로 막 나가게 보이면서 안전한 길을 택하고 싶다.

그리고 아주 가끔은 콘돔을 미리 집에 쌓아두고 있는 나를 대견해 하는 남자를 만나기도 한다. 그들은 자신이 미처 준비하지 못한 걸 부끄러워 하면서 분위기를 깨지 않고 스무스하게 연결하도록 해준 내 집의 콘돔에게 감사한다. 그런 남자들을 만나면 기분이 아주 좋다. (원래는 이게 당연한 건데 하도 아닌 인간들이 많아서 그렇다.)

말로 표현하지는 않지만, 한참 진행되려고 하는 데 잠깐을 외치며 뒤적거려 콘돔을 척 하고 꺼냈을 때 그들의 표정. 그건 여자라면 아마 직감으로 대번 다 맞출 수 있는 표정일 것이다. 그리고 당연한 일이지만 나는 그런 표정을 짓는 것들과는 콘돔을 함께 사용하는 영광을 주지 않는다.

예전에 남자친구가 있었을 때는 남자친구에게 콘돔을 정기적으로 사 오라고 시켰었다. 아무래도 약국에 가서 '콘돔 주세요' 라고 무덤덤하게 말하기는 좀 껄끄러우니까.

요즘은 장보러 마트에 갈 때 다 떨어지면 산다. 몇년째 지속적으로 쓰고 있는 콘돔은 베네통 제품.(이거 어째 광고같군.(☞ 편집자 주 ; 딴지몰에 요거 있슴다. 기사하단 배너광고 참조. 본의 아니게 광고 해주신 기자분께 감사)

비교적 노멀한 섹스 취향을 가지고 있는 나에게 딱 맞는 노멀한 콘돔이며 콘돔 겉 봉지도 각종 인종들의 얼굴이 컬러플하게 들어가있고 베테통이라고만 적혀 있다. (러브 어쩌고 하는 낮뜨거운 문구나 핑크 내지는 벌건색으로 요란하게 치장되어 있지도 않다.)

그래서 그걸 계산대에 내밀면, 물론 계산원은 알겠지만 다른 사람들은 쉽게 눈치채지 못한다. 그리고 콘돔만 달랑 사는 것 보다는, 나는 그걸 쌀이며 김치 등과 함께 사는 게 더 좋다. 쌀과 김치가 나를 먹여 살리는 것 만큼이나 콘돔도 내게 있어 아주 중요한 물건이며 또 생필품이라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혹시 이 글을 읽는 남자들 중에서 어쩌다 혼자 사는 여자집에 초대가 되는 행운을 맞이하거들랑, 거기서 행운의 여신이 미소까지 지어서 아주 기분 좋게 섹스까지 할 수 있게 되었다면 그 여자의 집에서 콘돔이 나올 때 최소한 아무 표정도 짓지 말기를 바란다.

조금이라도 이상한 눈빛을 보이면 행운의 여신은 미소를 거두고 당신은 그 여자를 더이상 만나지 못하게 될 테니까 말이다.

그리고 이왕이면 (섹스는 무드 아닌가.) 당신의 준비성이 정말로 사랑스럽다 라는 말이라도 덧붙여주면 좋겠다. 그럼 아마도 행운의 여신은 미소 뿐 아니라 껄껄껄 소리내서 웃어줄지도 모른다.

그리고 만약 혼자 사는 여자가 이 글을 읽는다면. 섹스를 안할 꺼면 몰라도 그게 아니라면 꼭 집에 콘돔을 놔두길 바란다. 여관이나 모텔 혹은 호텔만 이용한다고? 그렇다면 자판기를 이용하더라도 핸드백 속에 하나쯤은 넣어 다니길. 혹시 아는가 자판기가 고장날지.

남자가 준비해주면 더 좋겠지만 알다시피 세상 남자들이 전부 임신을 자기 일처럼 생각하고 여자에게 그런 불행을 안겨줘서는 안되겠다 싶어서 콘돔을 가지고 다니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일단 아쉬운대로 우리가 준비하자. 그리고 그걸 조금이라도 이상하게 보는 놈이 있으면 미련 없이 발로 뻥 차버리자. 왜냐면 우린 소중하니까.

* 본 기사는 반짝반짝 연애통신(www.yonae.com )에서 제공합니다. 퍼가실 때는 출처를 명기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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