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특통신] 남로당 접특내 떼접 현황

본 접특 통신은 지역, 계층간의 대립과 갈등구조를 해소하여 지역, 계층을 초월한 범국민적 정사기회를 도모하고, 대결과 반목을 극복한 타협과 상생의 상열지사로써 온 국민이 하나가 되는 대통합의 접선을 도모하고자 만들어진 남로당 접선특위 내 에 게재된 당원들의 사연 중 타에 모범이 되거나 혹은 반면교사의 교훈을 줄만한 사연들을 엄선하여 공고하는 꼭지라 하겠다.

지난 편에서는 계속된 접선실패에 운명을 물어 뜯는 심정으로 기어코 한 남성동지와 이 한 밤 불꽃 같은 정염을 불태우려 했으나 갖은 교태와 눈빛에도 불구하고, 지가 무슨 스테파네트 아가씨를 지켜준 양치기랍시고 질보다 양을 추구했던 비정한 한 남성당원에 대한 고발과 그에 대한 양치기의 비겁한 변명을 들어 보았다.

이번에는 접특내 만연된 일대일 사생결단 접선이 아닌 친목과 여유와 풍류가 있을 것만 같은 접특 떼접 현황의 한 일화를 실어 보았다.

그러나, 벗뜨.. 서로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어울리며 술도 마시고, 살아온 얘기도 하며, 여흥에 취해 노래도 부르는 건전한 떼접이었음에도 가슴 한켠에는 필설로 형언치 못할 아픔을 묻어 둔 채 십오야의 발정난 늑대처럼 짙은 표효를 내지르는 이가 있었으니 향후 당원동지들께서는 아무리 즐겁고 건전한 자리에서도, 아니 그런 자리일수록 더욱 소외되는 이가 있을 수 있음을 명심하고 좀더 명랑한 떼접 문화를 만들 수 있도록 가일층 노력할 것을 당부하는 바이다.

이천 원정 접선기(2005/08/01)

by ㉿

옛 어른이 말씀하시길...

좋은 벗이 있으면 그의 집에 찾아가기를 주저하지 말아라.. 라고 하셨다. 어떤 사람의 말과 생각엔 그가 사는곳과 어울려 노는 벗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없기 때문이기도 할것이다.

그런 구차한 변명을 대지 않더라도 언제 한번 가야지. 라는 약속이 공언이 되지 않으려면 한번쯤은 가는게 도리인것 같기도 했다.

뭐..그렇게 시작된 이천 방문 계획은 2005년 7월 마지막주 토요일이 되어서야 실현이 되었다.

우루루 몰려다니는 것을 꺼려하는 성격인지라 술벗하기 좋을 몇명을 수배해 보았는데, 다들 상황이 여의치 않다하니 아쉬울 따름(신발 사이즈 225만큼이나 좁은 인맥을 가지고 있다보니..어쩔수가 없다.).

그렇게 해서 동행을 하게 된 인원은 꼴랑 셋이었으니 본인과 남당원 "마"와, 여당원 "이"였다.

이틀이나 지난 일이라 느낌은 다소 옅어졌을지 모르지만... 여전히 뿌듯하고 기분 좋은 접선, 혹은 방문이었기 때문에 나름의 향수에 젖어 이동 동선을 따라 더듬어 볼까한다.

# 동서울 터미널..[7월 30일 오후 3시]

3시 3번 출구에 모인, 다 모여도 셋 뿐인 우리는 씩씩하게 터미널로 들어서긴 하였으나 휴가철을 맞은 인파에 바로 기가 죽어 어찌할 바를 모른 채 1층과 2층을 마구 촌티를 내며 헤매고 다녔으니 결국 이천에 사는 "어"당원과 통화를 하고서야 제 창구를 찾아 갈 수 있었다.

부지런히 출발해서 이천 관광을 할 요량으로 바로 출발하는 티켓을 받았는데. 받고나서 보니 시간대가 2시간 후에나 출발 할 수 있는...맙소사.

다시 이천 사는 "어"당원과 통화를 하여, 차 앞에 서있으면 태워준다는 정보를 얻었고, 태워달라고 징징대기라도 해야되는 줄 알고 자신없는 걸음걸이로 어물쩡 거리고 있다가 새롭고도 확실한 정보를 알게 되었으니 그것은 바로 시간에 관계없이 줄만 서있으면 태워준다는 것이었다.

자..이제 차는 탔고 자리 배정이 문제였다.

현재 멤버는 남자 하나에 여자 둘.

보통은 여자끼리 앉고 남자는 혼자 앉을것을 상상 했을테지만... 한시간 가량의 버스안 작업 기회를 헛되게 보낼 수는 없지 않은가. 일단 눈빛으로 동행한 여인 "이"을 제압. 남당원 "마"의 옆자리를 차지하는데 성공하였다. 아싸!!

그 이후의 상황은... 눈빛에 제압당해 혼자 앉게된 가련한 "이"여인은 꾸벅꾸벅 졸고.. 나는 창밖을 보며 음악을 듣고... 옆자리 남성 "마"는 나를 경계하며.. 역시 자거나 창밖을 보았다는...

휴~ 나는 왜 눈을 부릅떠가며 옆자리를 차지하고자 했던가..

도로 사정은 생각보다 훨씬 좋았다. 1시간 남짓 왔을때 이미 이천에 도착했으니.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서울의 것과는 다른... 여행지의 풍경이었다.

# 설봉공원 [7월 30일 오후 5시]

터미널에 내려 "어"당원에게 전화를 걸어 도착한 사실을 알리자, 터미널 밖 뚜레주르에 서 있으라고 한다.

지정한 지점에서 기다린지 몇분 후 바람처럼 나타나 설봉공원에 내려놓고 30분 후에 데릴러 오겠다는 말만 남기고 다시 바람같이 사라져버리셨다.

설봉공원은 이천 도자 엑스포가 열렸던 곳으로 입구엔 호수가 있었고 엑스포가 열렸던 자리엔 아기자기한 길을 따라 여러가지 조형물들이 세워져 있었고, 여러곳에 벤치가 있어 휴식을 취하기도 좋았는데 이미 여러 사람들이 가족들 혹은 친구들과 주말의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우리는 어슬렁 어슬렁 공원이 이곳저곳을 둘러보았고. 그 중간 중간 찍히는건 별로지만 찍는건 느므느므 좋아한다는 "이"여인의 쉴 새 없는 도촬로 부터 피해다녀야만 했다. (간판이 좋지 않은 나는 사진 찍히는걸 두려워하고, "마" 당원은 신비주의 전략에 흠집이 날까봐 그랬던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

# 이천의 어느 밥집 [7월 30일 오후 6시 반]

약속대로 삼십분 쯤, "어"당원이 오셨는데, 토요일도 늦게까지 근무하시는 분이라 대충 일을 마치고 나오신 거였다.

우선, 우리는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이천 쌀 밥 전문점으로 갔다. 밥상으로 안내를 받은 후 임금님이 드신다는 질 좋은 이천 쌀밥맛과 쉴 새 없이 나오는 반찬에 (무슨 대화를 했는지 기억이 안나는것으로 보아..) 정신을 잃고 거의 말도 없이 먹는데만 열중을 했던 것 같다.

정신을 차려보니 오십세주 한병을 가볍게 비우고 밥과 반찬은 거의 바닥이 보이는 상황.

더 이상 먹을것이 없어 자리를 이동했다.

# 설봉공원 [7월 30일 오후 8시]

맥주 몇캔을 사 들고 설봉공원으로 다시 왔다. 잔디에 대충 자리를 만들고 맥주를 마시기 시작했다. 휴일이라 나들이 나온 가족, 개와 산책나온 사람, 친구와..연인과..

여느 공원의 모습과 다름이 없는 한가로운 저녁이 저물어가고 있었다.

에어컨이나 선풍기가 아닌 자연으로 부는 바람... 확 트인 곳에서 마시는 술맛은 술집의 맛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두 번정도 맥주를 더 사다 마시는 동안 시간은 자정을 넘겨 두시가 되어 가고 있었고. 어느 새 주변은 한산해져 있었다.

문학 이야기... 사는 이야기... 옛사랑의 추억... 왕따 당했던 기억들...술과 섞인 이야기들은 해도 해도 끝이 없었고. 제 흥에 겨워 부른 우리의 노랫가락은 바람결에 흩어져가고 있었다.

# 호수장여관 [7월 31일 오전 2시]

찜질방으로 가자는걸 뭔가 껀수하나 만들 요량으로 억지로 방을 잡아 놓고 아무런 썸씽도 만들지 못한... 아쉬운 ㅡ.ㅡ;;

술을 마셨고 여러군데를 돌아다녔음에도 잠자리가 낯설면 잠을 자지 못하는 통에, 해가 뜨는것을 도로위로 차가 지나다니는것을...시비붙은 사람들의 목소리를 고스란히 듣고서 아침을 보고야 말았다.

화장실겸 욕실엔 거품이 나지 않는 비누와 eros라는 이름의 샴푸 뿐 다른 그 무엇도 없었고. 그나마 수도꼭지가 아닌 샤워기가 있는게 다행이다 싶었다.

더운물이 나오지않아 찬물로 샤워를 하고 근처 편의점에가서 커피를 사다 편의점 앞 허름한 버스 정류장에 앉아 오가는 사람들이며 지나가는 차들을 무심히 바라보았다.

한가로운 휴일 아침...낯선도시에서의 아침이었다.

# 황태해장국 집 [7월 31일 오전 9시 반]

너무 심심한 탓에 자는 사람들을 다 깨워 한방에 모아 놓고.. 기껏 한것이 전날 마시다 남은 맥주로 해장을 하며 TV를 봤다.

배에서 심하게 밥 달라고 아우성 치는 통에 여관을 나와 해장국집으로 향했다. 아침부터 가족들끼리 온 팀이 몇 보였는데 이천은 가족들끼리 단합이 잘되나보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해장을 하고 터미널로 가는데 서울로 바로 보내기가 아쉽다며 커피를 한잔 더 했다. (그 공원 이름은 모르겠다 ㅡ.ㅡ;;)이천은 쉴곳이 많은 곳인가보다. 여기 저기 공원들이다.

# 이천 터미널~ 동서울 터미널 [7월 31일 오전 11시~12시]

공원 정자에 앉아 아쉬움을 달래고 터미널로 왔다.

차는 기다릴것도 없이 바로 서울로 가는 표였는데 이번에는 양심상 "이"여인과 자리를 함께 했다. 아.."마" 당원의 옆자리는 배 아플것 같아서 양보 할 수 없었다. (내가 못갖으면 남도 안된다고 생각하는...나쁜 심보)

서울은 거의 40분만에 도착을 했고, 점심때라 밥이나 한끼 더 하고 헤어지면 좋았겠지만 피곤한탓에 입맛을 잃어버려 그냥 다 보내버렸다. 월말이라 마감을 지어야 한다며 "어"당원은 회사로 우리는 터미널에서 각자 집으로 그렇게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앉아있다.

보는 경우에 따라서는 싱거운 스토리에 지루했을지도 모르겠으나. 본인을 비롯한 멤버들은 이천 접선에 만족을 하는것 같다.

그래서 다음 접선 장소도 누군가의 집근처가 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를 해 본다.

가령 우이동이라든지... ^^

우이동 콜???

이천 원정 접선기에 덧붙여(2005/08/02)

by 어**

옛 어른이 말씀하시길...

먼길 마다않고 찾아와 즐거이 노니는 친구를 가까이 함은 군자의 낙이라 하였다. 군자는 개뿔 난 고자다. -_-

그런 구차한 이유가 없더라도 먼길 기꺼이 와준다 하는데 내겐 고맙고 가슴벅찬 일이겠으나 사실은 돈 졸라 깨질 생각을 하니 눈앞이 아득하구나. -_-

뭐..그렇게 시작된 이천 방문 계획은 2005년 7월 마지막주 토요일이 되어서야 실현이 되었다. 오란다구 진짜 오냐. -_-

우루루 몰려오는 것을 꺼려하는 성격인지라 혼자 와서 대충 주무르다 갔으면 싶었는데 이것들은 아주 작당을 하고 셋이서 몰려오고야 말었다. (곧츄 싸이즈 9센티로는 상대하기 벅찬 인물들이시다.)

그렇게 해서 동행을 하게 된 인원은 꼴랑 셋이었으니 과거 13명이 기내려와 밥 내놓으라고 아우성하던 것에 비하면 무쟈게 해피하다 하겠다.

삼일이나 지난 일이라 느낌은 다소 옅어졌을지 모르지만... 여전히 후장 바르르 떨리는 아쉬움과 통탄이 남는지라 그 동선을 따라가 후일 이와같은 실수가 반복되지 않도록 교구재로 삼을지어다.

# 동서울 터미널..[7월 30일 오후 3시]

왕년 어느 여당원의 프로필에는 이러한 뉘앙스의 글이 휘갈겨져 있었다. 남자들은 길을 몰라도 누구에게 묻지 않는다. 씨바 존나 쪼발리냐? 잰척하지 말고 좀 물어보면 자지가 문드러지냐?

이천을 오겠다는 이거뜰은 저 여당원의 논거에 아주 적극적으로 동의하여 존내 바쁜 와중에 저나질을 불같이 해댔드랬다. 담부터 길치들은 이천 오지 마라. 씨바 -_-

# 설봉공원 [7월 30일 오후 5시]

아무리 뻥뻥 뚫린다는 중부선이라지만 이거뜨리 한 시간만에 올줄은 꿈에도 몰라따. 이거뜨리 왜 일찍 와서는 안되느냐~! 띠바 막차타고 설 가버리면 명랑하게 떼씹의 신세계로 나가고자 하는 내 꿈이 도로아미타불이 되어버리는 순간이 되는 것이었던 것이었다. -_-

일단 이거뜰을 대중교통수단으로부터 최대한 멀리 떨어트려놓을 필요가 있었다. 행여 중간에 마음이 뒤집혀 서울로 돌아가겠다는 발칙한 생각이 들지 않도록 격리해 둘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조신하게 기돌려라 이 년놈들아~

# 이천의 어느 밥집 [7월 30일 오후 6시 반]

헨젤과 그레텔을 아느냐?

개눈을 박은 마녀년이 저거뜰을 잡아 쳐묵을라고 허구헌날 고기질을 시키지 않았겠느냐.

이제껏 내 섹스의 환타지로 은밀하고도 또 치밀하게 전개시켜왔던 떼씹의 로망이 바로 코앞인데 빠굴 도중에 꼬르륵~ 소리로 판을 깨서는 절대 안되는 일이었다. 쳐먹어라 이거뜰아. 네 시작은 비쩍 꼴았으나 내일 아침엔 피바다의 침대에서 잠을 깨게 되리라. -_-

# 설봉공원 [7월 30일 오후 8시]

아 씨바, 진정 일이 이렇게 꼬인단 말이었던가.

영악하기 그지없는 이거뜰은 문학 이야기... 사는 이야기... 옛사랑의 추억... 왕따 당했던 기억들 등등등... 꼴림을 유발하는 것과는 하등 상관없는 이야기들을 끝도 없이 늘어 놓았고, 급기야 제 흥에 겨워 노래질을 하는 만행도 서슴치 않았다.

가족과 함께 단란하게 DDR의 추억을 바람과 함게 실려보내던 이천 시민들은 이거뜰의 만행에 그만 역지가 사지하여 각자의 서식지로 돌아가버리고 나는 이거뜰의 玆돛?전?휘말랜옐湲薺藪“?피를 뜯기는 고문을 고스란히 당하고 말었다.

# 호수장여관 [7월 31일 오전 2시]

정녕코 떼씹의 신세계는 함부로 열리지 않었다. 이게 정녕 천지가 개벽을 해야 겨우 문틈이라도 엿볼 수 있는 로망이란 말인가. 잠이나 쳐자빠 자야지.

# 황태해장국 집 [7월 31일 오전 9시 반]

밤새 DDR도 아니요, 떼씹도 아니었던 이거뜰은 해떴으니 밥 내놓으라고 지랄들이다. 쳐먹어라 이거뜰아. 등빨 존내 굵어져서 담부턴 어디에라도 기나오지 말어라~! 이거뜰은 나의 저주가 섞인 아침밥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냉큼 집어삼키는 초절정 무념신공을 펼치기에 이르렀다.

홈에서는 50점은 먹고 나간다던 속설은 그렇게 허무하게 깨어지고 말았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 이천 터미널~ 동서울 터미널 [7월 31일 오전 11시~12시]

그리하야 이거뜰은 홀연히 한양으로 사라지고 마라따.

닥 쫓던 개는 일용할 양식을 구하기 위하야 다시 삽질의 현장으로 출동하고.. 그의 가슴엔 오래도록 잊혀지지 못할 씨바스러움이 자리잡게 되었던 것이었다.

* 본 기사는 반짝반짝 연애통신(www.yonae.com )에서 제공합니다. 퍼가실 때는 출처를 명기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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