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서브컬처탐방] 로망포르노 - 제4회
로망포르노의 산 증인 세츠코와 아카네의 생생한 증언

시행착오

포르노의 촬영은, 그것을 처음 경험하는 배우나 감독, 스테프들에게는 하나의 충격이었다.

[단지처 / 늦은 오후의 정사]와 함께 니카츠 로망포르노 제1탄으로 개봉된 하야시 이사오 감독의 [색력대오비화]의 촬영현장에서도 시행착오와 갈팡질팡하는 모습은 계속 되었다. 이 작품의 각본을 담당한 니이제키 지로는 월간 잡지 에 [그때, 그 시절 - 로망포르노 1주년] 이라는 타이틀로 이렇게 회상을 했다.

... 하야시 감독은 세트의 어두운 곳에서 물끄러미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자기 자신에게 대단한 결심을 요구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때 눈부신 분장을 한 오가와 세츠코와 장군 역할을 맡은 남자배우가 들어 왔다. 조감독이 하야시 감독에게 다가가 머리를 숙였다. "감독님! 부탁드립니다!"

감독 하야시는 마치 화가 난 사람처럼 세트 안으로 뚜벅 뚜벅 들어갔다. 하지만 감독이 톡 건들면 와스스 부서질 것 같이 빳빳이 얼어 있다는 것은 누가 봐도 알 수 있었다.

오가와 세츠코

"그럼, 시작해라. 설마 어떻게 하는지 모르는 건 아니겠지?"

하야시 감독은 아는 말이 그 말 밖에 없었던 것처럼 험악하게 한마디 뱉어 놓고 오가와 세츠코의 가슴을 열어 젖혔다.

무대에서는 일순 술렁거림이 일었다. 오가와 세츠꼬가 천천히 기모노를 벗자 핑크색의 작은 유두가 드러났다. 조명 아래에 알몸이 된 오가와 세츠코는 잔뜩 긴장한 채 장군역을 맡은 배우와 몸이 엉켜 하나가 되어갔다.

오가와 세츠코는 당시 19세로써 아직 소녀티를 벗지 못한 청초한 이미지의, 가는 선을 가진 여배우로 1974년까지 24 작품에 출연 했다. 이중 니카츠 로망포르노 작품이 23 작품이었다.

우리말로 하면 전형적인 궁중물인 [색력대오비화]는 연인과 강제로 이별을 당하고 장군의 침소에서 잠자리 시중을 들게 되는, 가려한 연인(오가와 세츠코)이 최종적으로는 연인과 재회, 에도(江?)를 탈출 한다는 이야기다. 오가와 세츠코의 가련한 모습이 눈에 띄는 작품으로 기억되고 있다.

이어서 제2작 [색력대오비화 여자 화공(色?大?秘話色?女浮世?師)]에서는 인기 없는 화공의 아내 (오가와 세츠코)가 강간을 당한 것을 계기로 '남녀의 정사'를 그리기 시작하는데 그 남자의 얼굴이 강간범의 얼굴이라는 이야기로, 강간씬의 오가와 세츠코의 연기가 오래도록 인구에 회자 되었다.

또 이 씬에서 오가와 세츠코의 가랑이 사이에 빨간 장미를 배치한 소네 나카오 감독의 연출이 많은 사람을 감탄시켰다고 한다. 사극이면서, 바하 음악을 사용한 것도 당시로는 파격적인 것이었다. 소네 나카오 감독은 스즈키 세이쥰 감독의 제자로서 이 작품이 첫 번째 작품이었다고 하니 그 재능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

[성도네즈미소승(性?ねずみ小僧)]은 오가와 세츠코가 의적의 여동생으로 나오는, 시대물 포르노를 표방한 작품이었지만 실로 황당무계한 작품이다.

알콜 중독 기미가 있는 의적이 일본의 어사 박문수 라고 할 수 있는 에게 명실상부한 의적으로 인정 받게 되자마자 감옥으로 들어 간다는 이야기. 다분히 컬트적인 작품이지만 청초한 오가와 세츠코의 매력은 이 작품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난다.

다시, 첫 작품 [색력대오비화]로 돌아가 보자. 이날 촬영은 계약 직원을 포함한 니카츠 전 직원들이 모두 모여 마른침을 삼키면서 바라보았다고 한다. 스크립터로 참여한 시라도리 아카네씨는 이렇게 회상한다.

"그 때까지 니카츠의 다른 영화에서도 베드씬은 많이 있었지만 그날 알몸의 오가와 세츠코 위에 장군이 올라가 있는 모습은 지금까지의 촬영에서 보던 모습과는 차원이 틀린 것이었습니다."

그 후 20년이 지나면 헤어누드(치모노출 사진)사진이 일반 잡지에도 등장하게 되지만 1970년대 초 당시에는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남성들보다도 여성들의 저항이 매우 컸던 것 같다.

시라도리 아카네

"뿐만 아니라 전 직원들이 모인 가운데 진행된 첫 시사회에서 받은 직원들은 충격은 그야말로 메가톤급이었습니다. 시사회에서 첫 작품의 섹스 씬을 전 직원이 지켜보는 것은 일종의 '의식' 같은 것이었습니다. 앞으로 이런 영화를 만들테니 마음에 안드는 사람은 회사를 그만두라는..."

시라도리 아카네는 그만두지 않는 쪽을 택했다. 그러나 이해 11월까지 퇴사한 배우, 스텝, 감독들은 300인을 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의외로 호평의 목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 영화 평론가 기타가와 레이코는 잡지 [시나리오(1977년 9월호)]에 이렇게 쓰고 있다. '그 포르노에 스토리가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저 벌거벗은 남녀가 엉켜 소위 말하는 48가지 체위를 보여 주는 것이라고 상상했었는데...'

시라도리 아카네는 1932년 동경에서 태어나, 55년 니카츠에 입사하여, 마키노 마사히로, 이마무라 쇼헤이 등의 명장들의 역사적인 작품뿐만 아니라 최근작들인 이와이 순지지 감독의 [러브레터], 시노자키 마고토 감독의 [잊을 수 없는 사람들] 에서 스크립터를 맡은 일본 영화계의 산 증인이자 현역 영화인이다.

그 이후 쿠마시로 다츠미(神代辰巳)감독의 파트너로써 로망포르노의 각본을 쓰기도 했다.

특히 [나의 섹스 백서 / 절정도] 라는 작품은 로망포르노사에서 길이 남을 명작으로 칭송 되고 있다. 일본 영화 스크립터협회 부회장을 거쳐 현재에는 일본시나리오작가협회이사를 맡고 있으며, 니카츠 예술학원강사 등의 후진양성에도 힘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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