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문동의 자랑'에서 빚더미 인생된 조상우 역 열연

"황동혁 감독님이 제안한 세계관에 끌렸다"

"이정재 선배와 호흡, 작품 택한 중요한 이유"

[스포츠한국 모신정 기자]

배우 박해수는 최근 득남과 출연 드라마인 '오징어 게임'의 전세계 1위라는 겹경사를 맞았다.

그가 주연을 맡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오징어 게임’이 한국 드라마 최초로 넷플릭스 전 세계 TV부문 1위에 이름을 올린 것. 글로벌 OTT 콘텐츠 순위 집계 사이트인 플릭스 패트롤 집계에 따르면 '오징어 게임'은 전 세계 94개국에서 1위를 차지했다. 여기에 지난 13일 발표에 따르면 전 세계 1억 1100만 구독 가구가 시청한 것으로 집계됐다. 미국에서는 넷플릭스가 공개한 비 영어권 시리즈 중 최초로 21일 연속(13일 기준) ‘오늘의 Top 10’ 1위를 기록하는 등 믿을 수 없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영화 '도가니'(2011), '수상한 그녀'(2014), ‘남한산성’(2017) 등 전혀 다른 장르의 영화들에서 각각 의미있는 행보를 보여왔던 황동혁 감독의 신작 '오징어 게임'은 456억 원의 상금이 걸린 의문의 서바이벌에 참가한 사람들이 최후의 승자가 되기 위해 목숨을 걸고 극한의 게임에 도전하는 이야기를 그린 9부작 드라마다.

황동혁 감독은 어릴 적 친구들과 즐기던 추억의 놀이가 목숨을 걸어야 하는 잔혹한 서바이벌로 변해 버리는 아이러니를 담아 극한 경쟁에 내몰린 현대인들을 향한 메시지를 던진다.

박해수는 극 중 서울대 경영학과에 수석입학한 쌍문동의 자랑이자 증권회사 투자팀장으로 승승장구하다 잘못된 선택으로 감당할 수 없는 빚더미에 앉은 조상우 역을 연기했다. 타고난 머리로 앞으로 이어질 게임을 예측하며 전략적인 플레이를 펼치는가 하면 한국식 게임에 서툰 외국인 노동자를 돕는 등 이중적인 모습을 펼치는 인물이다.

연극 ‘오이디푸스’, ‘갈매기’, 프랑켄슈타인’, ‘맨 프럼 어스’, ‘유도소년’, ‘남자충동’ 등과 뮤지컬 ‘사춘기’ ‘영웅’, ‘여신님이 보고 계셔’ 등으로 10년이 넘는 시간동안 연극 무대에서 깊은 내공을 쌓아올렸고, SBS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와 tvn 드라마 '슬기로운 감빵생활', 영화 '양자물리학', '사냥의 시간' 등 TV와 스크린을 오가며 선인과 악인, 그 어떤 캐릭터도 소화할 수 있는 폭 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입증해오고 있다.

지난달 29일 배우 박해수와 화상 인터뷰를 진행했다. 매인터뷰마다 겸손한 태도로 자신의 성과나 노력보다는 제작진과 스태프의 공을 먼저 꼽는 박해수지만 '오징어 게임'의 전 세계적인 뜨거운 인기에 저절로 입가에 스미는 미소는 참기 어려운 듯 했다.

"황동혁 감독님께서 시나리오를 보내주셔서 감사하게 하고 싶다고 말씀 드리면서 작품에 참여하게 됐어요. 시나리오가 힘이 있었고 감독님이 만든 세계관도 마음에 들었고요. '오징어 게임'의 시나리오에서 군중들이 서바이벌 게임 속에서 살아남고 또 변화하는 과정들과 각각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에 대한 판단들이 매력적이었어요. 조상우가 심리적으로 변화해 가는 모습도 끌렸어요. 이정재 선배님을 포함해 좋아하는 선배님들과 함께 하고 싶은 마음도 컸습니다."

'오징어 게임'의 전 세계적인 인기는 작품에 참여한 박해수로서도 예상 불가의 영역이었다. 하지만 동서양을 막론하고 해당 작품이 신드롬에 가까운 인기를 모은 이유에 대해서는 그 나름의 분석이 따랐다.

"작품에 대한 만족과 자신감은 분명 있었지만 이렇게 전세계적 인기를 끌 거라고는 예상을 못했죠. 주위 반응과 월드 랭킹 1위를 달리고 있다는 소식에 너무 많은 축하를 받았어요. 너무 감사하고 영광입니다. 한국 콘텐츠가 전 세계적 인정과 사랑을 받은 것 자체가 기쁘고 감사하죠. 한국적 놀이들과 인간 본성에 대한 이야기들에 외국 시청자들도 함께 공감하고 생각하실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아닌가 싶어요. 전통 놀이 자체도 외국 분들도 충분히 경험해 볼만한 것들도 많죠. 오징어 게임은 격렬한 게임이지만 설탕 뽑기 등도 꽤 체력 소모가 커요. 저는 우리 드라마에 나온 게임 중 술레잡기, 오징어 게임, 줄다리기 등은 많이 해봤고 또 방방이나 돈가스 같은 게임도 많이 했던 기억이 납니다."

조상우는 목숨을 걸어야 하는 개별 게임마다 태도가 다르고 가장 큰 변화를 보여주는 인물 중 한 명이다. 어떤 게임에서는 리더였다가 어떤 게임에서는 군중 속에 몸을 숨기기도 한다. 그리고 후반부에서는 가면을 벗고 내면 속 본능을 드러내야 했다.

"상우는 상황적으로 대처하는 인물이죠. 달고나뽑기 때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해주지 않고 또 알리를 속이는가 하면, 유리공 남자에게 폭력적 행위를 하죠. 이 행동들이 조상우에 대해 가장 잘 말해주는 행동들인데 그 상황 속에서 틀렸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 상황이라면 누구나 그랬을 것이다'라고 믿게 해야만 했어요. 그게 제 역할이었죠. 조상우에게는 어쩔 수 없는 선택들이었고 저라도 그런 선택들을 했을 거에요. 막상 촬영 때는 설탕뽑기를 할 때 정말 마음이 쫄리고 두근거렸어요. 제가 진짜 만든 것들이 촬영됐으니까요. 줄다리기는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었지만 재미있었고 징검다리는 너무 리얼해서 겁도 났죠. 다들 긴장하면서 건넜습니다."

이혼, 사채, 도박 등으로 인생의 위기를 겪어오던 중 서바이벌 게임에 참여하는 성기훈 역을 연기한 이정재의 존재는 박해수가 '오징어 게임' 출연을 선택한 중요한 이유 중 하나였다. 그는 "정말 왕이 될 상이셨다"며 반농담을 건넨 뒤 "아시다시피 에너지와 존재감이 엄청난 배우 아니신가. 매력적 역할도 많이 하셨고 성기훈 역도 너무 친근했다. 작품 안에서도 밖에서도 동생들을 챙겨주시고 하는 게 동네 형처럼 챙겨주셨다. 촬영을 끝내고 인터뷰 현장에서 이정재 선배를 뵈면 너무 멋지게 입고 오셔서 생소할 때도 있었다. 이번에 함께 촬영하며 부담을 느끼거나 이러지는 않았다. 항상 봐왔던 이정재 선배님 얼굴이 아닌 전혀 새로운 얼굴을 보여주시더라. 몸의 호흡을 완전히 바꾸는 걸 보고 정말 더 팬이 됐다"고 밝혔다.

서울대 경영학과에 수석 입학한 엘리트에서 잘 나가는 증권사 투자 팀장이었지만 현실에서는 빚더미에 올라 앉은 상우 캐릭터는 묘하게 선과 악의 경계에 선 인물인 만큼 9회의 분량동안 서사를 잘 쌓아가야만 했다. 특히 상우에게 하이라이트 신이라 할 수 있는 알리(아누팜 트리파티)와의 구슬 게임 장면은 황동혁 감독과 함께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힌트를 얻기도 했다.

"상우가 알리에게 극 초반 차비를 주고 따뜻하게 대해주는 장면은 진짜 자상한 모습인지 아니면 그것조차 의도된 행동인지 고심했어요. 황 감독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죠. 배려나 호감의 행동만은 아닐 수 있도록 여지를 뒀어요. 조상우의 가장 큰 고민은 '군중 속에 어떻게 묻혀 있다가 살아남을까' 였거든요. 어떨 때는 다들 지나칠 정도로 무던히 있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그들을 이끄는 리더가 되기도 하죠. 게임을 하는 그룹을 살펴 보면서 가장 확률적이 높은 합리적 판단을 해 나가죠. 알리에 대한 행동 또한 군중 속에서 가장 힘이 세면서도 내 말을 가장 잘 들을 수 있는 인물을 편으로 두려한 것 아니었을까요."

조상우가 선과 악의 경계에서 서서히 본질을 드러내는 모습은 게임 후반으로 갈수록 두드러진다. 특히 성기훈과의 엔딩 결투신에 다다를수록 극한의 상황에 처한 상우의 내면 속 본질이 드러난다.

"조상우라는 캐릭터를 연구할 때 나한테도 저런 부분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설계해 나갔어요.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저런 선택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됐죠. 알리를 대하는 태도나 다음 게임이 설탕뽑기라는 걸 알면서도 이야기 안해주는 부분이라던가 공감해보려고 했어요. 크게 이해하기 어렵지 않았고 너무 멀지 않았어요. 조상우가 성기훈에 대한 태도가 변화되면서 본격적으로 싸우고 욕도 하게 되고 마음의 표현을 다 하잖아요. 누군가를 헤치면서 자기가 살려는 선택을 하고요. 그런 변화 과정이 시청자들께 잘 전달되면 좋겠어요. 처음엔 우리 옆 보통 사람이었지만 어느 순간 괴물이 되는 보습이 외형적으로 표현됐으면 했어요. 내적으로 외적으로 변화를 보여드리고 싶었죠."

박해수는 평생 엘리트로 산 조상우 캐릭터를 구체화시키기 위해 실제 서울대생들을 만나 인터뷰하기도 했다. 1등의 위치를 항상 지켜야 하는 사람들의 구체적인 마음이 궁금했기 때문.

"처음 맡았을 때 캐릭터가 어렵다고 생각했어요. 우선 버스를 타고 무작정 가봤죠. 그냥 거기 도서관에 앉아 있어 보려고 갔죠. 며칠 앉아서 책도 보고 대본도 볼 생각이었어요. 그러다가 몇 분을 취재한 것 까지는 아니고 이야기를 나눴어요. 정말 저에게 도움이 많이 된 게 그 전에는 너무 멀리 보고 있었던 것 가타요. 가장 궁금한 점을 물어봤어요. 저는 2등이나 3등이 되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데 그 분들은 어떤 감정인지 물어봤죠. 구체적으로 물어봤는데도 잘 대답들을 해주셨어요. 늘 멀리 있던 분들인데 직접 만나보니 그렇게 크게 멀리 있지 않더라고요."

지난해 봄 넷플릭스를 통해 선보인 '사냥의 시간'이후 충무로에서 가장 바쁜 남자 배우 중 한 명으로 꼽아도 좋을 만큼 다양한 작품들을 쉬지 않고 소화해왔다. 영화 '야차'(나현 감독)와 '유령'(이해영 감독), 드라마 '키마이라'(김도훈 PD) 등의 촬영을 이미 마쳤고 넷플릭스 드라마 '수리남'(윤종빈 감독)은 한창 촬영 중이다. 대중에게 하루 빨리 선보이고 싶은 작품이 많았지만 2년 가까이 지속되고 있는 팬데믹 덕에 '오징어 게임'이 공개되기 까지 1년 반 동안 직접적 소통을 할 수 없었던 점은 못내 아쉽다.

"작품 활동을 계속 해왔는데 오랜만에 보여드리게 됐어요. 그동안 제 연기들이 어떻게 보여질까 고민도 걱정도 많았어요. 지난 몇년동안 내가 하고 있는게 맞나 싶었죠. 제 얼굴이 카메라에 어떻게 비치고 이미지화 되는지 잘 몰랐는데 '오징어 게임'으로 저도 스스로 발견하게 됐죠. 선한 얼굴과 악한 얼굴도 보이고 제 눈빛 연기에 대한 반응도 들었어요. 사실 제가 꽤 재미있고 유머러스한 면도 있거든요. 저의 이런 면을 아시는 감독님들도 많이 계세요. 아직 발현이 되지 않았죠. 30대 후반이 되니 생각도 변하고 새로운 면도 더 발견하게 되요. 제가 스스로에 대한 자학도 많고 자괴감도 많고 불만도 많은 사람인데 '오징어 게임'이 공개되고 나서 많은 이야기들을 들으니 제 새 모습을 발견하게 돼 좋습니다."

작품의 흥행만으로도 하늘을 나는 기분일터인데 그는 '오징어 게임'의 공개 당일인 지난달 17일 아들을 얻는 겹경사를 맞았다.

"축복 속에서 복을 가지고 태어난 아이에요. 정말 감사드립니다. 제가 더 열심히 해서 건강하고 예쁘게 키울게요. 가정 안에서도 너무 어마어마한 일이 생겨서 신기하고 책임감도 많이 생겼어요. 작품을 하면서도 하나도 힘이 안들어요. 힘을 낼 수 있게 됐어요. 앞으로 좋은 메시지 전하는 더 건강하고 좋은 배우가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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