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 게임'서 탈북민 새벽으로 연기 데뷔

사투리부터 액션까지 치열하게 준비

세계적인 관심 영광, 부족함 채워가고파

사진=넷플릭스
[스포츠한국 조은애 기자] 이보다 강렬한 데뷔작이 또 있을까. 모델 출신의 배우 정호연(27)이 넷플릭스 흥행작 '오징어 게임'으로 자신의 이름 세 글자를 확실하게 각인시켰다.

"배우로서는 첫 작품인데 이렇게 큰 반응을 모아서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지금 모든 일이 너무 빠른 시간에 일어나고 있어서 제 반응 속도가 따라가질 못하고 있어요. 사실 새벽이란 캐릭터는 주위 분들의 도움으로 완성한 캐릭터인데요, 무한히 감사드려요."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은 456억 원의 상금이 걸린 의문의 서바이벌에 참가한 사람들이 최후의 승자가 되기 위해 목숨을 걸고 극한의 게임에 도전하는 이야기를 그린 넷플릭스 9부작 시리즈다. 지난 9월 17일 공개 이후 넷플릭스가 서비스되는 83개국에서 1위에 오르며 유례없는 인기를 모으고 있다. 작품의 흥행엔 한국적인 정서가 담긴 스토리라인, 신선한 설정, 세련된 연출 등 많은 요인들이 작용했지만, 완벽한 캐스팅과 배우들의 빈틈없는 호연이 적중했다는 평가다. 그 중에서도 정호연은 탈북민 강새벽을 연기해 호평을 받았다. 그는 순탄치 않은 삶을 버텨온 새벽의 과거와 현재를 신선한 매력으로 그려내며 '오징어 게임'의 최대 수혜자로 등극했다.

"함경북도 출신인 새벽이는 어린 나이에 탈북했어요. 주변 사람들에게 북한 사투리를 들켜서 좋은 적이 없기 때문에 탈북하자마자 빨리 사투리를 고쳤을 것이라 생각했어요. 그래서 사투리를 거의 안 쓰는 설정을 잡았지만, 사투리 수업은 굉장히 열심히 받았어요. 액션신도 꽤 있어서 열심히 연습했더니 감독님께서 '왜 그렇게 무술을 열심히 하냐, 어차피 막싸움인데' 하시더라고요.(웃음) 아! 새터민들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도 많이 찾아봤어요. 무엇보다 제일 집중했던 건 새벽이를 이해하는 과정이었어요. 새벽이의 내면에 더 다가가려고 일기를 썼는데 과거에 부모님과 있었던 일, 탈북 과정에서 겪은 일들을 세세하게 쓰다보니까 캐릭터에 좀 더 가까워진 느낌이 들더라고요."

새벽의 첫 등장은 강렬했다. 사채업자들에게 쫓기는 기훈(이정재)의 돈을 훔치는 장면은 새벽이 그간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또 어떤 캐릭터인지 단박에 보여줬다. 최근 넷플릭스코리아에서 공개한 코멘터리 영상에서 황동혁 감독은 "거의 즉흥적으로 한 연기였다"며 이정재와 정호연의 호흡에 만족감을 드러낸 바 있다. 정호연은 "새벽이는 주위 분들의 도움으로 완성한 캐릭터"라며 이정재, 박해수 등 선배들과 함께한 소감을 전했다.

"떨려서 디카페인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기 시작했어요.(웃음) 대선배님들과 함께 하는 작품이고, 심장이 너무 빨리 뛰어서 마음을 다잡기가 쉽진 않더라고요. 오디션 볼 땐 몰랐는데 합격하고 시나리오 받고 준비하는 과정부터 불안감, 스트레스가 최대치였던 것 같아요. 그래도 절박했으니까 선배님들, 감독님께 조언을 많이 구했어요. 모든 선배님들이 제 고민을 정말 잘 들어주시고 도와주셨어요. 어느 날은 너무 만족스럽지 못한 연기를 해서 답답한 마음에 울었는데 김주령 선배님이 '이미 충분하다'고 격려해주신 게 큰 힘이 됐어요. 선배님들 덕분에 잘 마무리할 수 있었어요."

강렬한 캐릭터 플레이 못지않게 사랑받은 건 압도적인 규모의 배경이었다. 어린 시절 친구들과 함께 했던 6개의 추억의 놀이가 등장하는 가운데 교과서 속 철수, 영희를 본뜬 로봇이 나오는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게임장부터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구슬치기 게임장, 뽑기, 줄다리기, 징검다리 등 각 콘셉트에 맞춘 거대한 게임장들이 매회 쫄깃한 긴장감을 더했다. 이에 국내외 팝업 체험관에는 수많은 인파가 몰리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세트장은 매번 놀라웠어요. 제일 멋있으면서도 힘들었던 건 줄다리기였어요. 실제로 줄을 당기면서 계속 호흡을 쓰다보니까 다들 많이 지쳐있었는데 세트장이 레이싱장 같아서 보는 재미가 있었어요. 제 취향은 유리 징검다리 세트장이었어요. 엄청 웅장한 비주얼이라 기억에 남아요. 징검다리를 뛰어 건너면서 느꼈던 새벽이의 복잡한 감정이 지금도 생생해요."

미국 등 해외에서 신드롬급 인기를 누린 '오징어 게임'은 여러 성취를 안겼지만, 특히 정호연에겐 연기 데뷔작이라는 면에서 그 의미가 남다르다. 시작부터 세계적인 관심을 받고 있으니 최고의 출발인 셈이다. 신선한 이미지 때문에 어디서 갑자기 튀어나온 신예인가 싶지만, 사실 그는 꽤 긴 모델 경력의 소유자다. 176cm의 늘씬한 비주얼로 지난 2013년 '도전! 수퍼모델 코리아4' 공동 준우승을 했고, 이후 해외 유명 명품 브랜드의 선택을 받으며 활약했다. 톱모델 타이틀을 내려놓고 신인 배우로 나서기까지 많은 고민이 있었지만, 가야할 길이라는 생각이 든 이후엔 주저없이 모든 걸 '올인'했다.

"솔직히 해외에서 모델 커리어 정점을 찍고 좀 내려오는 시기였어요. 점점 일이 줄면서 스트레스를 받았고 살도 많이 쪄서 스스로 위기라고 생각했던 때였어요. 일이 없어서 시간이 많으니까 책이나 영화를 보면서 깊게 파고들게 됐고 연기라는 표현법에 대한 욕심이 생겼어요. 그래서 한국 모델 에이전시 계약이 끝나고 배우 회사로 옮겨서 연기에 집중해보기로 했죠. 새벽이 오디션은 회사 들어온 지 얼마 안 돼 보게 된 거라 걱정이 많았어요. 방법도 잘 몰라서 그냥 냅다 새벽이란 캐릭터를 팠죠. 그렇게 뉴욕에서 오디션 영상을 찍어 보냈는데 감독님께서 실물 오디션을 보자고 하셔서 바로 한국행 비행기를 탔어요. 그땐 캐스팅에 대한 욕심보다 누군가 제 연기를 가치있게 봐주셨다는 것만으로도 좋았던 것 같아요."

'오징어 게임'의 새벽이가 워낙 촘촘한 서사와 매력을 가진 캐릭터이긴 하지만, 정호연의 활약이 아니었다면 이 정도의 인기는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그는 데뷔작이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남다른 존재감으로 극 전반을 압도했고 SNS 팔로워 수는 불과 2주 만에 40만에서 1100만명대 이상으로 폭증하는 등 뜨거운 사랑을 받고 있다. 각 캐릭터들의 인기 뿐만 아니라 작품 자체의 완성도도 좋은 평가를 받으면서 '오징어 게임' 시즌2 제작에 대한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연기에 대한 아쉬움은 있어도 새벽이로서 죽음에 대한 아쉬움은 없어요. 새벽이는 최선을 다해 살았거든요. 겉으로 잘 보이지 않아도 게임에 참가한 목적 자체도 가족을 위해서였고 굉장히 이타적인 사람이에요. 그게 새벽이에게 다가가는 가장 어려운 지점이었어요. 저는 그동안 제 이익만 추구하면서 살아왔는데, 새벽이를 만난 이후엔 타인과 더불어 사는 게 진짜 가치있는 삶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제 연기는 10점 만점에 5점 주고 싶어요. 진심을 다했지만 서툰 부분도 있었다고 생각해요. 그래도 많은 분들의 응원을 동기 삼아 나아가는 사람이라 이번에 받은 칭찬으로 더 열심히 연기해보려고요. 촬영하면서 황동혁 감독님이 '다 자기의 부족함을 깨닫는 과정이다'라는 말씀을 자주 해주셨는데 인생 명언으로 남았어요. 부족해도 꾸준히 하는 사람, 그게 지금 목표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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