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김명민 /사진제공=씨제스
[스포츠한국 모신정 기자] 10여년도 훨씬 더 지난 이야기지만 JTBC 드라마 '로스쿨'에서 '공포의 양크라테스' 양종훈 교수 역을 연기한 김명민과의 인터뷰를 앞두고 영화 '내사랑 내곁에'(2009) 당시 루게릭을 앓는 백종우 역을 위해 20kg에 가까운 극한의 감량을 마다 않는 열연을 펼친 후 인터뷰에 나섰던 그와의 첫 만남이 기억 났다.

당시 김명민은 루게릭 환우 역을 연기하기 위해 건강 상태에 무리가 갈 수 있을 정도의 체중 감량을 해가며 열연을 펼쳤고 의사와 감독마저 체중 감량을 만류하느라 애를 먹었다는 에피소드도 꽤 알려졌다. 이미 촬영을 마치고 3개월이 지난 후 이뤄진 인터뷰였지만 그는 여전히 볼이 홀쭉한 채 기력 하나 없는 표정으로 인터뷰 장소를 지키고 있었고 영화 한 편을 위해 혼신의 힘을 불태운뒤 핏기 없는 얼굴로 착석한 인터뷰이를 눈 앞에 두고 꽤 경직되어 질문에 나섰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김명민이야 그 당시에도 이미 KBS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과 MBC '하얀거탑', '베토벤 바이러스' 등 쟁쟁한 히트작 드라마들을 필모그래피로 보유하고 있었고 한 작품을 할 때마다 지독한 성실과 노력의 상징으로 정평이 나있었지만 '내사랑 내곁에' 당시 극한 감량에 대해서는 영화계 안밖에서 갑론을박이 벌어질 정도로 '진정한 메소드 연기다'라는 의견과 '인간의 신체를 극한의 단계까지 끌고 가는 연기는 옳지 않다'며 우려하는 시선으로 나뉘기도 했다.

JTBC '로스쿨'의 양종훈은 '내사랑 내곁에'의 백종우보다는 '베토벤 바이러스'에서 "똥 덩어리"를 외치던 강마에의 카리스마와 이미 3편까지 제작될 정도로 명절마다 사랑 받고 있는 '조선 명탐정' 시리즈의 김민의 유쾌함이 합쳐진 캐릭터다. 특히 '조선 명탐정'의 연출자인 김석윤과 다시 만난 '로스쿨'에서 그의 명불허전 연기는 더욱 빛을 발했다. 극한의 질문을 던지며 학생들을 매번 멘붕에 빠뜨리지만 결국 진정한 성장을 이끌어내는 '진짜 교수' 양종훈은 지금 이 시대에 진정한 스승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품게 한다.

사전제작 드라마로 방영 전 모든 촬영을 끝낸 '로스쿨'이기에 촬영이 끝난지 수개월도 더 지났지만 김명민은 여전히 드라마 속 중요 대사를 숙지하고 있었다. 인터뷰 중에도 부지불식간 대사가 술술술 흘러 나왔다. 자신을 극한의 경지까지 몰아붙이면서도 캐릭터를 표현하려 열심이었던 그는 수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열정적이고 열심이었다. 어느새 지천명에 이른 그에게서 느껴지는 차이점이 있다면 양종훈처럼 슬그머니 드러나는 위트와 좌중을 배려하는 너른 마음이었다.

배우 김명민 /사진제공=씨제스
"학생 역할을 한 배우들에 대한 이야기부터 해야겠어요. 이번에 김범과 굉장히 가까워졌죠. '조선명탐정: 흡혈괴마의 비밀'에 범이가 출연했는데 생각보다 작은 역할이었는데 참여해서 놀랐는데 너무 성실하고 자신이 맡은 분야에 열심이더라고요. 정말 고민도 많고 예쁜 친구였어요. 이번에 학생들의 리더 격인 한준희 역을 맡아 실제 학생 역할 배우들을 다 이끌었는데 매력 있고 인간적으로도 정말 좋은 친구예요. 이번에 형동생 맺었어요. 강솔A 역할을 처음 봤을 때 마음이 아팠는데 류혜영이 정말 사랑스럽고 예쁘게 잘 표현했어요. 양교수가 그렇게 독설을 하면서도 왜 그를 키우려고 했는지 알 것 같았죠. 이다윗이나 고윤정, 이수경도 너무 잘 해줬어요. 그 친구들 모습을 보면서 양종훈을 어떻게 연기해야겠다는 영감이 바로 왔죠. 그들에게 너무 감사합니다."

'로스쿨'은 한국 최고 명문 로스쿨의 교수와 학생들이 모의법정 수업 시간 도중 서병주(안내상) 교수의 살인 사건이 발생하며 양종훈 교수와 학생들이 범인으로 몰리게 되고 이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 등을 그렸다. 예비 법조인들의 살벌한 로스쿨 생존기와 캠퍼스 미스터리가 더해져 시청률을 견인하며 사랑 받았다.

법률 용어가 대사의 대부분이고 특히 양종훈 역할의 경우 강의 시간이나 법정에서 방언 터지듯 법률 용어를 줄줄 읊어야 했기에 평소 연습 벌레로 알려진 그에게도 대사 습득은 쉽지만은 않은 일이었다.

"매 장면에서 양종훈답게 이야기하는 것이 최대 관건이었죠. 무조건 외우는 것 밖에 답이 없었어요. 관객들 입장에서야 매회 스쳐 지나가는 장면이지만 저는 1년 동안의 시간을 통해 계속 참고하고 판례를 익히고 읽으며 익혔어요. 법률 용어로 가득한 대사들은 정말 돌아서면 까먹게 되거든요. 캐릭터 적인 측면에서는 양종훈은 학생들이나 다른 법조인들에게 막힘 없이 독설을 퍼붓는 인물이지만 사실 안을 들여다 보면 몹시 외롭고 슬픔을 가진 인물이라고 봤어요. 측은지심이 가는 인물이죠. 애착도 가고 사랑스러웠던 그래서 감정이입이 잘 됐던 캐릭터에요."

드라마 '로스쿨'은 16회 평균 시청률이 6.1%로 소위 대박 드라마는 아니었다. 하지만 생방으로 TV를 통해 드라마를 시청하는 시청자들 못지 않게 넷플릭스, 티빙, 웨이브 등 각종 OTT를 통해 드라마를 시청하는 시청자 층이 대거 늘어난 현 시점에서 '로스쿨'은 넷플릭스 월간 많이 본 드라마 상위를 차지하며 유의미한 기록을 남겼다. 즉 찾아보는 시청층이 그만큼 많았다는 것. 특히 법학 전문 대학원 학생들의 경쟁과 고군분투를 다룬 캠퍼스물인 만큼 10대 후반~20대 시청자들의 반응이 뜨거웠다.

"젊은 시청자들로부터 꽤 반응이 좋았죠. 제 아들이 고등학생인데 친구가 제 사인을 받아달라고 했다더라고요. 우리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사회적 이슈와 문제들을 가감없이 드라마로 표현했고 '피해사실 공표죄' 등 민감하지만 현실적 소재들을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표현했다는 점이 장점이었던 것 같아요. 예비 법조인들의 끈임없는 토론을 통해 시청자들도 그런 사안들에 관심을 가지실 수 있게 끌어올렸고요. 하나의 사건으로 16회까지 큰 줄기로 끌고 나가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자극적이고 센 장르들의 사이에서 정통성있고 진정성을 다룬 드라마가 시청자들께 어필할 수 있어서 기쁩니다."

김명민은 방송 첫회 강의 장면부터 양종훈 캐릭터의 특기인 소크라테스 문답법과 학생들의 기를 팍팍 죽이는 독설 등으로 에너지 포텐을 터뜨리며 강솔A(류혜영)를 혼비백산하게 만들었고, 해당 장면은 시청자들의 아드레날린 지수를 높이며 드라마를 향한 호감도와 집중도를 높이는 첫 번째 신호탄으로 작용했다.

"그 장면은 촬영도 초반에 진행했어요. 김석윤 감독님이 우리 드라마의 출발을 알리는 장면이자 모두에게 공표시키는 장면이라고 미리 말씀을 주셨죠. 그 장면이 주는 부담감이나 중요성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에요. 촬영일이 잡히기전 거의 매일 습관적으로 연습했어요. 같이 출연하는 학생들에게도 제안해서 김범과 류혜영에게는 현장에 일찍 와서 같이 리허설을 해보자고 이야기했어요. 두 친구가 순순히 응해줘서 한 시간씩 일찍 만나서 리허설을 하며 호흡도 맞췄죠. 강의 장면이 끝날 때까지도 긴장의 끈을 놓치 못했어요. 촬영을 잘 끝내고 집에 오면서 대사들과 장면을 떠올리며 중얼중얼 다시 외웠던 게 기억나요. 굉장한 부담과 중요함을 알고 있기에 힘든 장면 중 하나였어요. 제가 배우라는 일을 직업으로 삼은 뒤 절대 저버릴 수 없는 원칙 중 하나가 대사를 완벽하게 외우는 것과 현장에는 아무리 늦어도 30분 전에는 도착한다는 겁니다. 현장에 빨리가야 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배우가 해야 할 대사 숙지가 50%라면 현장에서 호흡을 맞춰야하는 배우, 스태프, 감독님 등 제작진과의 협업이 나머지 50%를 차지하죠. 그 50%는 정말 중요합니다. 현장에 한 시간 못해도 30분 전에는 도착해야 이들과의 협업이 제대로 진행되죠."

극 중 판사 출신 민법교수 김은숙 역의 이정은과는 작품을 통한 두 번째 호흡이었으나 '로스쿨'이후 죽마고우가 됐다. 김석윤 감독의 작품에 여지없이 출연하는 우현 또한 그와 찰떡 호흡을 이뤘다.

"이정은 누나와는 두 번째 호흡이었어요. 정은이 누나가 희한한 재주가 있어요. 사람으로하여금 속내를 털어놓게 해요. 양종훈도 김은숙 교수한테 속내를 막 털어놓잖아요. 실제 저도 배우들 상견례 후 첫 술자리에서 제 속내를 다 털어놨어요. 누나가 석류즙, 배즙 등 챙겨주시고 몸에 좋은 유기농 음식도 다 준비해주고 하셨죠. 너무 친해졌어요. 현장가서 정은 누나를 보면 정말 편해지고 '나 이랬어, 저랬어'하고 털어놓게 됐죠. 우현 형님은 김석윤 감독님 작품을 할 때 늘 뵐수 있어요. 김석윤 감독님이 유명하신 부분이 한 번도 같이 못해본 배우는 있어도 한 번만 같이 한 사람은 없다는 거에요. 출연 배우들을 무척 아끼시고 배우가 편하면 만사형통한다는 원칙을 가지셨죠. 우현 형님은 늘 에너지가 느껴지고 마치 사촌형 만난 것처럼 편한 분이에요. 자주 연락하고 지내는 사이는 아니지만 만나면 너무 반갑고 눈빛만 봐도 통했어요."

십수년째 그를 상징하는 별명인 '연기본좌'나 '믿보배' 같은 애칭에는 여전히 적응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정말 오글거리고 치 떨린 적이 많다. 쥐구멍을 찾아 들어가고 싶고 힘들다. 이제 그 호칭은 안해주셨으면 좋겠다. 그저 배우 김명민이라는 말이 좋다. 배우라는 단어가 제게 주는 의미는 굉장히 크다. 너무 영광스러운 호칭이고 직함이다. 저는 그저 진정한 배우가 되고 싶어하는 사람 김명민이다"라며 단호히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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