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세 자매가 있다. 남부러울 것 없어 보이는 둘째 미연(문소리), 반항하는 딸과 가끔 돈만 받아가는 남편 때문에 바람 잘날 없는 희숙(김선영), 늘 술에 취해 거침없는 말과 행동으로 남편과 의붓아들을 당황케 하는 미옥(장윤주)까지. 각자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가던 세 자매는 아버지의 생일을 맞아 오랜만에 한 자리에 모인다. 그리고 그동안 아픈 속내를 감추느라 말할 수 없었던 기억의 매듭을 풀어가면서 마침내 폭발하고 만다.
'세자매'는 평범한 가족의 한 단면을 깊고 세밀하게 들여다본 영화다. 얼핏 세 사람의 갈등과 화해가 전부인 것 같지만,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불완전한 가족애가 있다. 가정폭력, 외도, 아동학대 등 가볍지 않은 주제가 중심을 차지한다. 그럼에도 영화는 누구의 잘잘못을 가리기보다는 상처투성이인 자매들의 일상 속에 이들 주제를 담백하게 녹여내는 접근을 택했다. 뻔한 전개인데도 자꾸 빠져드는 건 현실 속 나 자신의 이야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세 자매의 닮은듯 다른 삶을 차례로 보여준 뒤, 가족이라는 이름 안에 내재된 폭력성과 과거의 상처가 빚은 커다란 파국에 대해 이야기한다. 자칫 불편할 수 있는 소재이지만 유머러스한 화법 덕에 영화의 색감과 온도는 따뜻하다. 꽤 진지한 메시지도 슬쩍 끼어든다. 가족이란 어찌보면 이기적인 관계라는 것이다. 내가 잘못하고도 사과보다 화를 내기도 한다. 행복을 주는 존재여야할 가족이 종종 불행의 근원이 되는 이유다. '세자매'는 단순한 사과 한마디가 많은 가족 문제를 해결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음을 짚는다.
특히 영화의 주연이자 공동 제작자로 힘을 보탠 문소리는 가식덩어리 미연으로 21년차 연기 내공을 한껏 쏟아냈다. 김선영 역시 소심하고 위축된 첫째 희숙을 실감나게 연기했다. 어두침침한 꽃집에서 홀로 속을 삭이는 희숙의 모습은 오래 기억에 남는다. 또 미워할 수 없는 골칫덩어리 미옥을 연기한 배우는 장윤주다. 노란 탈색머리에 거친 민낯으로 매사 자유분방한 그는 현실 어딘가의 미옥을 불러낸 것처럼 매력이 넘친다.
힘 있는 조연들의 발견도 '세자매'의 수확이다. 미연의 남편 동욱으로 분한 조한철, 미옥의 남편이자 사랑꾼인 상준을 연기한 현봉식이 캐릭터에 착 붙는 연기로 보는 재미를 더했다. 또 2018년 영화 '박화영'을 통해 충무로 기대주로 급부상한 김가희가 희숙의 딸 보미로 인상적인 열연을 펼쳤다. 영화는 오는 1월 27일 개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