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제'의 낯설지만 특별한 매력 끌려

남주혁과 두 번째 호흡 편안하기도

변화와 성장에 대한 메시지 전해졌으면

배우 한지민이 스포츠한국과 만났다. 사진=BH엔터테인먼트
[스포츠한국 조은애 기자] 영화 ‘조제’는 처음 만난 그날부터 잊을 수 없는 이름의 여자와 남자가 함께한 가장 빛나는 순간을 그린 작품이다. 앞서 ‘최악의 하루’, ‘더 테이블’ 등으로 사랑받은 김종관 감독의 신작으로 이누도 잇신 감독의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에 한국적인 색채를 더해 리메이크했다. 배우 한지민은 자신만의 세계에 사는 여자 조제로, 한층 성숙한 감성을 선보인다.

“10년 전쯤 원작을 봤어요. 그 시대의 정서도 기억나고 좋은 멜로라는 인상이 남아있었는데 ‘최악의 하루’ 시사회 때 인연을 맺은 김종관 감독님이 리메이크하신다기에 함께하고 싶었어요. 조제라는 인물의 세계가 독특하지만 배우로서 채울 수 있는 것들이 많아보였거든요. 대사로 전달하기보다 눈빛, 정서, 공간, 색채로 표현한다는 점에서 기존 사랑이야기와 다른 새로운 작업이 될 것 같았죠.”

한지민이 연기한 조제는 불편한 몸을 휠체어에 의지한 채 할머니와 단둘이 살아가는 인물로, 책을 읽고 공상하며 자신만의 세계를 짓는다. 혼자 집을 나선 어느 날 갑작스러운 사고로 우연히 영석(남주혁)의 도움을 받게 된다. 그날 이후 영석을 통해 닫혀있던 조제의 세계는 조금씩 열리기 시작한다. 함께하는 시간은 행복하지만 막상 두 사람이 마주한 현실은 쉽지 않다.

“물음표가 많은 캐릭터였어요. 조제는 도움 받는 입장에서 다짜고짜 반말을 하고 책에서 읽은 이야기를 진짜 겪은 일처럼 이야기해요. 책의 언어가 익숙한 사람이라 구어체보다 문어체를 사용하기도 하고요. ‘갇혀있는 인물’이라는 생각에 대사 톤을 어둡고 낮게 뱉으니까 더 무례해보여서 끊임없이 적정선을 찾았죠. 소통에 서툰 모습이 낯설게 보일 수도 있지만 그게 조제 그 자체였어요.”

사진=BH엔터테인먼트
한지민은 처음 경험하는 사랑의 감정에 불안과 설렘을 함께 느끼는 조제를 세심한 감정 연기와 눈빛으로 완성했다. 정적인 분위기와 절제된 대사 속에서 오로지 눈빛, 몸짓만으로 조제의 희로애락을 담아내는데 그의 손끝까지 숨죽이고 집중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연기자로서 오로지 의지할 곳이 눈빛밖에 없어서 어려웠는데 그럴 때마다 감독님께서 확신을 주셨어요. 조제의 물건, 공간, 소리 하나까지도 계절감과 색채를 더해서 풍부하게 채워주셨거든요. 2020년대의 감성이 담긴 ‘조제’라서 더 좋았어요.”

‘조제’의 또 다른 관전포인트라면 배우 남주혁이다. 남주혁은 솔직하고 서툰 대학생 영석을 자연스럽게 그려내며 한지민과 완벽한 호흡을 보였다. JTBC ‘눈이 부시게’ 이후 두 번째 만남, 한지민은 “이번엔 남주혁에게 완전히 의지했다”며 남다른 믿음을 드러냈다.

“처음 시나리오를 선택할 때 남주혁 씨가 남자 주인공 츠네오를 맡는다고 해서 기대가 됐어요. ‘눈이 부시게’ 이후로 이제 서로의 눈만 봐도 어디가 불편한지 어떤 마음인지 다 느껴지더라고요. 이번엔 남주혁 씨가 저보다 더 빠르게 작품에 녹아들어서 오히려 많이 기댔어요. 특히 로드뷰에 찍힌 할머니 뒷모습을 보면서 우는 조제를 이불 속에서 따뜻하게 바라봐주던 장면이 기억에 남아요. 다 안다는 듯한 눈빛이 편안하고 고마웠어요.”

배우들의 애틋한 호흡 외에 수채화 같은 영상미는 ‘조제’를 보는 재미 중 하나다. 제작진은 스코틀랜드 로케이션 촬영부터 오래된 헌책방, 수족관 등 공간마다 계절의 정취를 듬뿍 담은 것은 물론 위스키 병, 가구 하나까지 섬세한 세팅으로 ‘조제’만의 분위기를 만들었다. 한지민은 “느림의 미학이 있는 영화”라며 애정을 보였다.

“보통 빠른 노래보다 발라드를 부를 때 음치인 게 티가 많이 나잖아요. 연기도 비슷해요. 그래서 이렇게 잔잔한 영화가 더 어려운 것 같아요. 그래도 느림의 미학을 느껴보고 싶었어요. 배우의 숨소리, 눈빛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영화가 될 거예요.”

사진=BH엔터테인먼트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2004년 국내 개봉 당시 배우 츠마부키 사토시와 이케와키 치즈루의 호연, 일본 영화 특유의 서정적인 감성으로 호평을 얻었고 1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멜로 명작으로 손꼽힌다. 국내에서도 팬층이 두터운 만큼 원작과의 비교는 ‘조제’에게 피할 수 없는 산이기도 하다. 한지민은 “굳이 다르게 연기하려고 하진 않았다”고 강조했다.

“원작의 조제가 사랑에 대한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었다면, 제가 담아낸 조제는 사랑에 국한되지 않고 좀 더 넓은 세상으로 확장 가능한 캐릭터에요. 마지막에 ‘때로는 너랑 가장 먼 곳을 가고 싶었어’라는 내레이션처럼, 조제가 영석이를 통해 세상 밖으로 나오는 변화와 성장을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보통 이별하면 사랑에 실패했다고 하잖아요. 하지만 어떤 관계가 끝나더라도 결국 다 경험이 된다는 메시지를 주고 싶었어요.”

조제는 영석과의 만남을 통해 사랑의 감정을 알아가는 동시에 스스로를 아끼고 변화를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영석 역시 확신 없는 미래에 대해 깊게 고민하며 성장한다. 이처럼 사랑을 딛고 세상 밖으로 향하는 두 사람의 모습은 단순한 사랑 이야기 이상의 특별한 여운을 남긴다. 한지민은 사랑에 대한 솔직한 생각을 털어놓기도 했다.

“‘아는 와이프’, ‘눈이 부시게’, ‘봄밤’까지 지금껏 여러 가지 로맨스물의 캐릭터를 연기하면서 수많은 형태의 사랑을 느껴봤지만 여전히 사랑이 뭔지 알고 싶어요. 제게도 사랑은 너무 어려워요. ‘조제’는 지나간 사람, 앞으로 다가올 사랑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에요. 제 연애를 돌이켜보면 예전엔 누군가를 좋아하면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커서 때로는 나답지 않을 때가 있었어요. 앞으로의 사랑은 달랐으면 좋겠어요. 이젠 가장 나다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서 마음껏 사랑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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