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담보'서 수양딸 키우며 부성애 깨닫는 두석 역 맡아

배우 성동일(53)이 연기하는 아버지는 상상만으로도, 실제 연기를 통해 구현된 모습으로도 늘 설득력이 있다. 그럴듯 하다. 의심이 가지 않는다.

방영될 때마다 신드롬을 불러일으키며 인기를 모았던 '응답하라 1994', '응답하라 1997', '응답하라 1988' 등 '응답하라' 시리즈에서 연달아 우리 시대의 대표 아버지상을 연기한 이유도 있을 것이고 2013년 방영됐던 MBC 인기 예능 '일밤 - 아빠! 어디가?'에 실제 자녀인 준이와 함께 출연하면서 보여준 엄격하면서조 자상한 아빠로서의 일상적인 모습도 이유가 될 테다.

인자하고 애정 넘치는 전형적인 아빠 뿐만이 아니다. 오컬트 장르의 영화 '변신'(김홍선 감독)에서는 오싹한 소름 돋게 할 공포감 넘치는 아빠를 소화하기도 했었다.

가을 영화로 소개된 '담보'(강대규 감독)에서 그가 연기한 두석(성동일)은 군 제대후 특별한 직업을 가지지 못해 사채업자가 된 인물. 겉보기에는 까칠하지만 마음은 따뜻한 인물이다. ‘두석’은 ‘승이’(박소이) 엄마(김윤진)에게 떼인 돈을 받아내기 위해 잠시 ‘승이’를 담보로 데려갔다가 얼떨결에 맡아 키우게 된다. 담보로 아이를 맡고, 아이의 엄마가 강제 출국된 후 우여곡절 끝에 아이의 아빠가 되어 가는 두석의 독특한 여정을 성동일은 담백함과 뜨거운 뭉클함을 조화시키며 풀어 나갔다. 수십여년 전을 시대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사람을 담보로 삼는다는 다소 불편한 설정에도 피를 통하지 않은 가족의 사랑과 화해라는 주제가 극을 통해 전달되는 이유는 성동일과 하지원, 김희원 등 주연 배우들의 진정성 넘치는 연기력 덕분이다.

"보통 식구들은 제가 무슨 작품을 선택할지, 어떤 걸 찍고 있는지 잘 몰라요. 다만 우리 아이들이 제 대본은 볼 수 있죠. 책상 위에 대본이 쌓여 있으니까요. 이번에는 '미스터 고'이후 아이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작품에 출연했어요. 우리 막둥이가 3학년인데 며칠 전 시사회에서 제 영화를 보더니 '아빠, 왜 이렇게 욕을 잘 해'하더래요. 엄마가 '대본에 내용이 그렇게 나와 있어서 그래'하고 설명해 줬대요."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어서 선택한 작품이기는 했지만, 피가 섞이지 않은 남남이 만나 가족이 되어가는 과정을 그린 만큼 이전 드라마들에서 그렸던 아버지의 모습과는 달라야 했다. 특히 몇 해전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가족사의 아픔을 이야기하며 아버지의 호적에 오르지 못하고 자라야 했던 과거를 밝히기도 했던 그인만큼 남의 딸을 친 딸처럼 키우는 두석을 연기하는 심경은 그리 간단치 않았다.

"혜리, 고아라, 정은지 등 극 중에서 딸을 많이 키워봤죠. 이번에는 가장 어리고 친딸이 아니었잖아요. 양녀로 데려온 딸에게 친딸처럼 할 수 있겠어요? 야단치고 충고할 때도 상대가 받아 들이게 하려면 결이 달라야 했죠. 두석이가 승이에게 단 한 번도 '안돼'라고 하지 않잖아요. 친딸이면 그렇게 안하죠. 제가 다른 아빠들과 다른 과정이 있었기에 승이의 심경을 이해할 수 있었어요. 부모가 없는 게 어떤 건지, 얼마나 안스러워요. 제가 눈물 연기를 많이 한 편인데 이번엔 안 울었어요. 저는 버티고만 가면 충분했어요. 초반기 사채업을 하는 30대에서, 40~50대를 표현하고, 나중엔 70대로 넘어가는데 승이가 고등학교 시절부터 저는 아무 것도 안했어요. 제가 눈물을 꾹 참고 관객에게 그걸 넘겨주고 싶었어요. 술집에서 마담 보조로 청소 등 막일을 하는 승이를 구하러 갔을 때도 울컥했고 승이를 친아빠에게 소개시키고 돌아오는 장면은 충분히 울만했죠. 하지만 눈물이 나면 컷 시키고 감정을 추스린 후 다시 찍었어요. 우는 건 관객 몫이니까요. 엔딩에서는 어땠겠어요. 촬영감독, 조명감독 스태프들도 너 나 할 것 없이 엉엉 울었죠. 그래도 두석이는 눈물 한 방울 떨어뜨리는 걸로 마무리했어요."

성동일은 '담보'를 택한 이유도 그리고 긴 무명의 세월을 뒤로 하고 배우 데뷔 30년차인 오늘날에도 영화와 드라마를 오가며 꾸준히 주연으로 맹활약 할 수 있는 원동력으로 가족을 꼽았다. 아내와 세 자녀를 향한 사랑과 책임감이 쉬지 않고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게 하는 가장 큰 힘인 것이다.

"오늘 나를 있게 한 건 내 가족이죠. 저는 이 영화가 다루고 있는 가족의 소중함을 잘 알고 있어요. 평생 어떤 것을 가지고 싶어 하는 마음은 그걸 못 가져 본 사람이 가장 큰 거에요. 제가 가장 행복한 순간은 일이 끝나고 나서 집에 돌아가서 잠자고 있는 아이들가 집사람을 쳐다 볼 때에요. 내가 이런 가족을 일구고 살고 있구나 싶은 거죠. 혼자 담배를 피울 때,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아내와 아이들이 있다는 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모릅니다. 두석도 마찬가지죠. 승이가 있다는 사실이 유일한 원동력이었을 거에요. 제 연기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부분은 절친인 김용화 감독과 동의하는 부분인데요. 제가 전신성형을 하지 않는 이상 어떤 역할 속으로 들어갈 수는 없어요. 그 역할이 저에게 오는 거죠. 성동일이 변호사를 하는 거고 성동일이 '담보'의 두석을 하는 거에요. 다만 전국에 있는 제 지인들 각자의 모습에서 역할 모델을 삼기는 하죠."

아무리 아버지 연기로 일가를 이룬 그일지라도 딸 승이 역을 찰떡처럼 소화해준 하지원이 없었다면 쉽지 않았을 테다. 아니나 다를까. 함께 호흡한 하지원, 김희원의 극찬이 이어진다.

"우리나라에서 하지원 같은 배우가 또 어디 있겠어요. 남자 배우들 뿐만 아니라 여배우들도 함께 하고 싶어 하는 배우죠. '바퀴 달린 집'에 하지원에게 내가 부탁을 해서 나오게 됐는데 그 날 여진구에게 '진구야, 지원이 누나 오면 아무것도 안해도 돼, 그냥 웃어, 막 웃는 사람이야'라고 말해줬어요. 하지원과 김희원의 공통점이 있어요. 지원이도 희원이도 불평불만을 이야기를 못해요. 저의 100배는 긍정적이고 착한 사람이죠. "

성동일과 함께 호흡을 이루고 나면 아들 뻘이나 다름 없는 방탄소년단의 뷔(김태형)나 박보검처럼 한참 나이 어린 후배들을 비롯해 막내 동생뻘인 조인성, 이광수 그리고 배성우, 김희원 등 연배가 있는 배우들까지 친동기간 혹은 베프가 되어 진한 우정을 끊임 없이 이어 가는 걸로도 유명하다.

"후배들이 저와 잘 어울리는 이유요? 저는 후배를 가르치려 하지 않으니까요. 좋은 안주에 회도 사주고 하지, '연기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소리 안하니 얼마나 좋아요. 그들과 제가 살아온 게 다르고 서로 다른 사람이잖아요. 가장 좋은 선배는 그냥 말을 잘 들어주는 게 좋은 선배 아니겠어요. 술 억지로 강요도 안하고 365일 술을 마셔도 주사는 없어요. 후배들이 보자면 새벽 2시고 3시고 저희 집으로 오게 해요. 저희 집에서 술도 잘 먹이고 잠도 재우고 보내죠. 얼마 전에도 이광수, 배성우가 다녀 갔어요. 저희 집사람이요? 단 한 번도 찡그려 본 적 없어요."

입만 열면 '초등학교 3학년 때 붓을 꺾었다'고 주장하는 성동일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어떨 때는 다소 두서가 없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지만, 뒤돌아서보면 머리를 탁하고 치게 될 정도로 산경험에서 우러난 인생 속 진리가 느껴진다.

"영화나 드라마는 사람과 사람이 모여서 하는 공동 작업이에요. 제가 돈 벌게 해주는 사람이 바로 스태프들이잖아요. 배우라는 직업이 얼마나 좋아요. '밥 먹여줘, 재워줘, 돈도 줘' 저희 부모님도 그렇게 못해줬어요. 그래서 후배들에게 이야기하죠. '우리를 위해 고생하는 스태프들에게 고생한다고 뭐라도 사주고 커피라도 사주고, 현장에는 꼭 일찍 나가라' 내 가족보다 저를 더 잘 챙겨주는 사람들이잖아요. 내 몸이 편하면 절대 돈이 들어오지 않아요, 내 몸이 힘들고 불편해야 돈이 들어오죠. 내가 편하면 스태프가 힘들잖아요. 그래서 좀 더 일찍 현장에 나가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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