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드라마 '꼰대 인턴'서 코믹 장르 첫 도전

차기작 '크라임퍼즐'서 역대급 사이코패스 선보여

[스포츠한국 모신정 기자] '치즈인더트랩'(2016)의 완벽 스펙남 유정 선배, '맨투맨'(2017)의 톱스타 경호원 김설우를 거쳐 '포레스트'(2020)의 심장 빼곤 다 가진 남자 강산혁까지 근래 박해진은 길지 않은 기간 동안 변화무쌍한 캐릭터를 거치며 다양한 매력을 펼쳐 냈다.

그동안 출연했던 드라마들이 캐릭터적 매력과 장르적 재미가 돋보였지만 현실성보다는 극화된 측면이 강했다면, 최근 종영한 MBC 수목드라마 '꼰대인턴'은 코믹 드라마라는 외피를 썼지만 지금 현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 세대와 장년층이 직면한 고용 불안과 직장에서의 애환과 고충, 그리고 두 세대의 화해와 소통을 그리며 현실에 두 발을 단단히 붙인 드라마였다.

직장 조직 사회에서 을 중의 을이라 할 수 있는 인턴 사원 가열찬(박해진)의 고충과 애환부터 꼰대의 상징과도 같았던 이만식 부장의 몰락과 원수 같았던 두 사람의 처지가 뒤바뀐 만남, 이 두 사람이 직장 생활 속에서 서로 으르렁대며 대립하고, 또 때로는 함께 협력하며 위기 상황을 헤쳐 나가는 과정에서 두 사람 사이에 비로소 서로에 대한 이해가 싹트고 두 사람의 성장도 이뤄진다.

KBS 드라마 '포레스트'에 이어 곧바로 '꼰대 인턴'을 선보이며 쉼 없이 작품 행렬을 선보이고 있는 박해진을 서울 강남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2006년 KBS2 드라마 '소문난 칠공주'의 연하남 역으로 데뷔해 어느덧 15년차에 이르렀다.

연기 열정 측면에서는 데뷔 당시인 15년 전보다 지금 이 순간이 훨씬 더 강렬하다는 그는 이만식 부장 역의 김응수 때문에 오피스 드라마인 '꼰대 인턴'의 출연을 결정했다며 인터뷰 서두를 열었다. 어떤 칭찬에도 들뜨지 않았고 불필요한 웃음을 웃거나 유머로 분위기를 주도하려는 태도도 없었다.

'꼰대 인턴'은 물론이고 3년 전 출연작인 '맨투맨'의 대사 중 일부까지 고스란히 기억해내 인터뷰 현장에서 재현해 주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서브 남주로 익숙했던 그가 '치즈인더트랩' 이후 쉼 없이 미니시리즈의 주인공으로 연달아 발탁돼 오롯이 하나의 드라마를 책임지는 이유를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낙숫물이 댓돌을 뚫는다'는 고사성어가 인터뷰 말미에 떠올랐다.

- '꼰대 인턴'을 택한 계기가 궁금하다.

▲ 김응수 선배가 먼저 캐스팅되셨고 제가 그 뒤에 됐다. 시놉시스와 기본 정보를 받았을 때 이미 김응수 선배님이 이만식 역 하시는 걸 알았다. 김응수 선배가 하신다는데 제가 안 할 이유가 없었다. 선배가 이만식 역을 하신다니 다른 어느 누구도 안 떠오르더라. 선배님을 뵙고 나니 제 선택이 맞았다는 걸 알았다.

- 1회에서 이만식이 가열찬에게 엄청난 꼰대력을 발휘한다. 악역일 수 있지만 시청자가 연민과 웃음까지 끌어낼 수 있도록 한데는 김응수의 역할이 크다.

▲ 함께 연기할 때 김응수 선배님이 잘 이끌어 주셨다. 나이 터울이 많은데 이상하게 편했다. 극 초반에는 가열찬과 이만식의 대립이 세지만 두 사람의 갈등이 빨리 해소되는 편이다. 시청자분들이 이 부분에 아쉬움을 표하는 반응도 있었지만 극의 중심은 가열찬의 이만식을 향한 복수극보다는 두 사람이 함께 닥친 일들을 해결하는데 포커스를 맞췄다.

- 가열찬이 새 회사에 입사한지 5년 만에 부장이 되어 있다. 최연소 부장 소리를 들을만한데.

▲ 오히려 30살 때 대학생으로 출연했던 '치즈 인더 트랩'때 더 힘들었다. 이번 작품에서는 열찬이가 초고속 승진으로 표현되긴 했지만, 오히려 나이가 들어가면서 나이에 걸맞는 역을 하는 것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 있지 않다. 오히려 자연스럽게 나이 먹어가는 게 좋다. 유정선배보다 오히려 가부장으로 기억되고 싶다.

- 초반부 인도 시장을 겨냥한 라면 CF 장면은 박해진표 코믹 연기가 담겨 놀라움을 안겨주는 장면이었다.

▲ 인도 CF 장면이 CG가 없었다면 시청자 분들의 손발이 다 오그라드시지 않았을까. 정말 실제 광고처럼 편집도 그렇고 CG 표현도 강렬했다. 그렇게까지 나올 줄 상상도 못했다. 저는 특별히 웃겨야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현장에 온 무희분들과 함께 춤 연습을 제대로 했고 밤새도록 진지하게 촬영했다.

- 쉴 틈 없이 작품을 내놓고 있다. 지치지는 않나.

▲ 연기를 시작했을 때와 지금의 연기 열정을 비교해보면 지금이 그 때보다 더 크다. 데뷔 당시 연기는 너무 실망스러웠다. 연기가 직업이고 이 일로 돈을 벌면서 이렇게 밖에 못하고 있나 싶어서 스스로를 괴롭힌 적이 많다. '소문난 칠공주' 때 촬영은 1년 가까웠고 방송만 10개월을 했다. 매주 악플에 시달렸다. '다음 방송에는 악플이 없으면 좋겠다'가 소원일 정도로 시달렸다. 그 때는 정말 잘 하고 싶었고 노력도 많이 했다. 두 번째 작품은 고민 속에 일일 드라마인 '하늘만큼 땅만큼'을 택했고 다른 배우들과 호흡을 길게 가지는 방식으로 가져갔다. 그 다음 작품이 '에덴의 동쪽'인데 스스로 성장을 많이 했던 작품이다. 캐릭터를 소화하며 죽겠다는 생각이 들만큼 표현이 힘들었다. 그렇게 열심히 했던 게 이후 도움이 많이 됐다. 요즘도 '소문난 칠공주'는 재방송을 많이 해주신다. 50회 이상 재방송된 것 같은데 감사한 마음도 있지만 제 모습을 보기 민망해서 채널을 돌릴 때도 있다.

- 재충전의 시간들도 필요할텐데.

▲ 준비하다가 방송되지 못했던 작품도 있고 작품과 작품의 촬영 사이에 텀이 생기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쉬었냐 안 쉬었냐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하루라도 모든 걸 내려놓고 쉬면 충분히 쉰게 된다. '언제 쉬지' 이런 생각은 해본 적 없다. 오히려 예전에는 완벽하게 스케줄을 짜두고 움직였다. 필라테스, 테니스 등 운동 규칙도 철저히 세워두고 쫓기듯 살았다. 생산적 활동을 해야 했고 하루라도 허투로 보내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요즘은 그런 모습은 많이 내려놓았다.

- 왜 갑자기 생활 습관을 바꾸게 됐나.

▲ 나이가 가장 큰 이유 아닐까. 한 살 더 먹을수록 겉모습보다 내면을 다스리자는 생각이 든다. 내 속이 속이 아닌데 겉에서 뭔가를 채워봤자 마음이 채워지는 건 아니더라. 비우고 다 비워야 다시 채울 게 생긴다. 불필요한 물건도 정리하고 내 생각들도 많이 비우며 산다. 아무것도 안하고 시간을 보내 보기도 한다. 예전이라면 절대 불가능했던 생활들이다.

- 촬영이 없을 때는 주로 시간을 어떻게 보내나.

▲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다. 조카들과 요리를 해먹기도 하고 베란다 청소를 해서 수영장을 만들어 줬다. 가열찬 라면도 끓여주고 애들이 너무 좋아하더라. 큰 조카가 저와 함께 뭔가 하는 걸 좋아한다. 함께 개를 데리고 나가서 산책도 시켜주고 팽이치기도 하고 탕후루나 팬케이크를 만들어 먹기도 한다.

- 드라마의 제목처럼 꼰대 같은 선배들도 많이 겪어 봤을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예전 선배들이 후배 대하듯 하면 또 큰 일 날 시대이기도 하다. 지금 딱 낀 세대인데 옛날 현장과 요즘 현장 분위기는 많은 차이가 날 것 같다.

▲ 저만해도 어떨 때 '라떼는 말이야'하고 옛날을 떠올리는 이야기가 불쑥 나오려고 한다.(웃음) '야, 우리 때는 며칠 밤씩 새우고 그랬어'와 같은 말들 말이다. 우리 때는 집에도 못 갔다 오면서 촬영했다는 이야기가 목 끝까지 올라오지만 또 그런 말을 쉽게 할 수 없는 시대 아닌가. 이런 부분에서는 저와 가열찬이 많이 닮아 있기도 하다. 좋은 선배여야 하고 또 좋은 후배여야 하는 세대다.

- '꼰대 인턴'에 출연하며 선배 세대와 후배 세대 사이의 갈등 등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봤을 것 같은데.

▲ 사실 극 중 꼰대인 이만식의 멘트는 훈육도 아니고 어드바이스도 아니고 젊은 세대에 상처를 줄 뿐이다. 다양한 고민이 든다. 지금 생각해보면 예전 선배나 어르신들이 저 잘 되라고 해준 말씀도 많았다. 이런 고민은 든다. '순화해서 말하면 꼰대가 아니고 직접적으로 말하면 꼰대인가' 이런 의문들 말이다. 세상이 많이 각박해지고 '너나 잘 해'하고 남남이 되어 가고 있다. 이런 아쉬움들도 있지만 서로 지킬 것은 지키면서도 또 충고는 전할 수 있는 현명함이 필요하다.

- 매번 작품을 선택할 때마다 공통된 원칙이 있다면.

▲ 내 안에서 만들어낼 수 있는 인물이어야 한다 허무맹랑한 인물이거나 상상의 세계에 가깝다면 완벽하게 창조해낼 자신이 없다. 내가 어느 정도 투영돼야 한다. 저한테 아무것도 없는 인물을 만들어 내는 건 어렵다. 가장 중요한 건 진정성 아닐까. 제가 대본을 봤을 때 이해가 안되고 캐릭터도 이해 안 된다면 연기를 해도 제가 스스로 납득할 수 없는데 어떻게 시청자를 설득하겠나. 항상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인물을 진정성을 가지고 연기하고 싶다.

- 15년 넘게 꾸준히 연기 활동을 펼치며 시청자들의 한결같은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원동력은 뭔가. 스스로 생각하는 지점이 어디에 있나.

▲ 저만의 원동력이라고 한다면 변치 않는 꾸준함 아닐까. 저는 연기자로 살면서 특별한 사조직을 만들지 않았다는 것도 이유라고 생각한다. 매전 작품 안에서 최선을 다하면 된다고 본다. 사적인 관계로 모임을 만들고 한다면 좋은 점도 있겠지만 제가 부탁할 일도 생기고 누구의 부탁을 받게 될 수도 있지 않나. 그러다 보면 좋은 점도 있지만 서로 불편하거나 껄끄럽게 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이런 일이 생기는 게 불편해서 사적인 관계를 잘 안 만든다. 제게는 아직 사모임이 어려운 일이다.

- 차기작 '크라임퍼즐' 촬영 준비에 바로 돌입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 인기 웹툰 원작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사이코패스 기질을 지닌 범죄심리학자 한승민 역을 맡게 됐다. '꼰대 인턴'과 상반된 이미지로 변신을 보여드릴 수 있을 것 같다. 새 작품도 관심을 가져주시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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