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다'서 아파트에 고립된 준우 열연

어설프지만 귀여운 캐릭터, 실제 모습과 닮아

고정관념 내려놓고 마음 편해져

배우 유아인이 스포츠한국과 만났다. 사진=UAA
[스포츠한국 조은애 기자] 코로나19 시대, 고립과 불안에 지친 현대인들을 사로잡을 영화 한편이 등장했다. 배우 유아인, 박신혜 주연의 영화 ‘#살아있다’(감독 조일형)다. 영화는 원인불명 증세의 사람들이 공격을 시작하며 통제 불능에 빠진 가운데 데이터, 와이파이, 문자, 전화 모든 것이 끊긴 채 홀로 아파트에 고립된 이들의 이야기를 그린 생존 스릴러다. 유아인은 어느 날 홀로 집에 고립된 준우를 연기했다.

“시각화에 대한 준비를 어떤 영화보다 많이 했어요. 현장 즉흥성도 어떤 때보다 컸죠. 호흡하는 순간순간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지점들이 생겨나서 막 펼치면서 도전할 수 있었어요. 캐릭터도 너무 진지하고 무겁고 장르에 끌려가는 인물이기보다 조금 가볍고 웃기기도 하고 어느 동네든 한명 있을 법한 옆집 청년으로 보이고 싶었어요. 인물의 매력이 살지 않으면 호흡을 이어가기 쉽지 않은 영화라 어느 때보다 신경 썼죠.”

준우는 부모님이 여행으로 집을 비운 날 아침, 무차별적으로 사람을 공격하는 존재들로 인해 혼란에 휩싸인 현장을 보고 충격에 빠진다. 이후 원인도 정체도 알 수 없는 그들을 피해 현관문을 막고 집 안에 몸을 숨긴다. 상황은 악화되고 ‘살아남아야 한다’는 아버지의 메시지를 끝으로 전화, 인터넷은 모두 끊긴다. 식량은 점점 바닥나고 홀로 남았다는 두려움은 점차 준우를 압박하기 시작한다.

“준우는 지금껏 제가 연기한 청년들 중 제일 덜 진지하고 평범해요. 아마 관객 분들도 가장 편안하게 느끼실 거예요. 평범한 인물을 다룬다고 해서 재미없으면 안 되니까 그런 균형들을 유지하려고 노력했어요. 큰 설정이나 가공 없이 일상적인 제 느낌을 그대로 담았어요. 실제로 저랑 가장 많이 닮은 캐릭터였어요. 주변에서도 ‘뭔가 좀 나사가 빠진 게 꼭 너 같다’고 하더라고요.”

‘#살아있다’ 속 유아인은 한층 무르익은 매력을 과시한다. 영화 초반부터 재난 상황 속 아파트에 홀로 고립된 준우의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유아인의 ‘원맨쇼’에 가까운 열연이 40분가량 펼쳐지는데, 그는 이야기의 주도권을 놓치지 않고 내내 결말을 궁금케 만든다. 무엇보다 유아인의 능수능란한 코믹 연기는 이번 영화의 백미다. 생사를 오가는 긴박한 상황에서도 특유의 가벼운 터치로 재치와 익살을 더했다.

“초반부에 혼자 오래 나오는 부분이 도전의식을 자극하는 지점이었어요. 장르물도 거의 처음이고 혼자 감당해야하니 연습이 많이 필요했죠. 현장 편집본을 자주 확인하면서 그 상황을 최대한 즐겼어요. 초반부 이후를 책임져준 박신혜 씨에게 고맙기도 해요. ‘원맨쇼’가 끝난 이후에도 균형을 유지한 건 박신혜 씨가 힘을 받아준 덕이거든요. 개인적으로 이 영화의 박신혜 씨가 어떤 영화의 박신혜 씨보다 좋은 것 같아요. 신혜 씨 같은 스타가 선택하기엔 좀 작은 역할일 수도 있는데 한 축을 든든히 담당해서 작품 전체를 무게감 있게 만들어줬죠.”

사진='#살아있다' 스틸
할리우드 시나리오 작가 맷 네일러의 각본을 원작으로 한 ‘#살아있다’는 한국적인 정서와 설정을 가미해 색다른 재미를 만들어냈다. 특히 한국인들에게 익숙한 개방형 복도식 아파트와 드론, 휴대폰, 유선 이어폰 등 일상적인 소품이 현실감을 극대화했다. 무엇보다 기존의 그 어떤 크리쳐보다 강력한 능력치를 자랑하는 좀비들의 면면은 장르적 재미를 한껏 끌어올렸다. 학생, 주부, 경찰 등 생전 직업·성격적 특기로 인간을 공격한다는 설정은 가장 큰 차별점이다. 조일형 감독은 현대 무용, 발레 등 경험이 있는 배우들을 캐스팅해 독특하고 생동감 넘치는 장면들을 완성했다.

“현장에서 여러 번 놀랐어요. 밥 먹다 고개 돌리면 좀비가 있어! 귀신의 집에 들어간 것 같은 재미를 최고 퀄리티로 즐긴 기분이었죠. 좀비물들이 국내에서도 조금씩 나오고 있는데 ‘#살아있다’는 장르물로서 흥미롭게 치닫다가도 인물의 내면으로 막 들어간다는 점에서 좀 달랐어요. 다른 방향성이 동시에 진행되는 독특한 영화죠. 액션도 신선했어요. 보통 배우들이 카메라 돌면 기본적으로 장착하는 멋이 있잖아요. 그것도 타성이 있어서 완전히 무장해제하는 게 쉽진 않거든요. 최대한 원래 펄럭이는 내 몸으로 돌아가서 엉성하게 보이려 했죠. 어차피 나보다 전투력 센 유빈(박신혜)이 있으니까. 제가 멋진 척 하면 여배우가 뒤에서 소리지르는 그림 말고 새로운 균형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당연해보이는 기조를 깨는 게 의미 있는 신선함이라고 생각했죠.”

사진=UAA
좀비와 싸우다가도 초코잼 한 통에 환호하는 ‘#살아있다’ 준우의 인간적인 면모는 유아인의 실제 모습과 다르지 않다. 마냥 소년 같은데 때론 일생을 다 살고 난 사람처럼 성숙해 보이기도 한다. 어느 쪽에 가까웠든 솔직한 성격 탓에 한때 오해를 사기도 했고 ‘이슈메이커’였다. 그럼에도 그가 17년째 지키고 있는 배우로서의 독보적인 입지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2003년 KBS 2TV ‘반올림#1’으로 데뷔한 후 영화 ‘좋지 아니한가’(2007) 이후 ‘완득이’(2011), ‘베테랑’(2015), ‘사도’(2015), ‘버닝’(2018), ‘국가부도의 날’(2018) 등 수많은 작품의 흥행을 주도했고 최근엔 MBC ‘나혼자산다’에 출연, 순수하고 자연스러운 일상을 공개하며 화제를 모았다. 특히 대중들에게 한 뼘 더 가까이 다가온 유아인의 작은 변화가 반갑다는 반응이다.

“솔직히 그동안 많이 집착했어요. 내가 하는 일이 당연히 의미 있길 바라니까. 연예인이 인기와 박수를 원하는 건 당연한 일이겠죠. 배우로서 본질적인 욕구였고 그런 걸 추구하는 것 자체가 어찌보면 제 나름의 전략이었던 것 같기도 해요. 비교적 어린 나이에 이 일을 시작했는데 지금껏 뭐가 진정한 의미인지도 모르면서 단지 내가 전달하고 싶은 이야기, 작품들을 우선순위에 두고 쫓아다녔어요. 그래서 아무래도 비교적 진지하고 무겁고 선이 굵은 캐릭터들을 많이 맡았던 것 같아요. 되려 30대 중반이 된 지금 준우 연기하면서 너무 재밌고 편안했어요. 갑자기 ‘나혼자산다’도 출연하고(웃음) 제 스스로 가지고 있던 불편한 기준, ‘배우다운 것’ 그런 고정관념을 많이 내려놨어요. 예전엔 솔직해지기 힘드니까 스스로 환멸이 나서 못 했던 측면도 있는데 이번에 관찰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보니까 어렵긴 해도 괜찮은 것 같아요. 연예 활동 안에서 더 넓은 보폭으로 움직여도 본업에 해가 되진 않을 것 같단 생각도 들고, 더 자유롭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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