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시간'서 형사 형구 열연

완성도 높은 시나리오에 출연 확신

기묘하고 재미난 이야기, 관객 사랑 받길

배우 조진웅이 스포츠한국과 만났다. 사진=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스포츠한국 조은애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한동안 실종됐던 신작들이 6월을 맞아 하나 둘 개봉일을 확정하고 극장가의 활기를 되살리고 있다. 여세를 몰아 영화 ‘사라진 시간’도 관객과 만난다. 영화는 의문의 화재 사건을 수사하던 형사가 자신이 믿었던 모든 것이 사라지는 충격적인 상황과 마주하면서 자신의 삶을 찾아 나선 이야기를 그린 작품으로, 배우 정진영의 감독 데뷔작이다. 배우 조진웅은 하루아침에 삶이 송두리째 바뀐 형사 형구를 연기했다.

“만만치 않은 녀석이었어요. 호흡을 어떻게 맞출지 생각하기 전에 현장에 던져버렸어요. 감독님을 향한 신뢰가 있어서 가능한 부분이었죠. 스태프들과 소통이 수월했고 저도 제 연기를 보는 재미도 있었고 그냥 한번 놀아봤어요. 그렇게 작업할 수 있는 기회가 흔치 않은데 다들 마음을 열고 같이 작업해주신 덕분이죠.”

형구는 의문의 화재 사건을 수사하고자 시골마을을 찾는 인물이다. 조사를 진행하던 어느 날, 그는 화재 사건이 일어난 집에서 깨어난다. 그런데 이상하다. 집부터 가족, 직업까지 모든 것이 사라졌다. 조진웅은 형구의 혼란스러운 심경을 특유의 동물적인 연기로 촘촘하게 그려내며 다시 한번 충무로 대표 배우의 진가를 입증했다. 특히 오프닝과 엔딩에 등장하는 조진웅의 강렬한 표정은 색다르고 기묘한 여운을 남긴다.

“형구를 표현할 때 가장 좋은 표정이었어요. ‘이게 현실인가?’, ‘난 누구지?’ 하는 생각으로 길을 걸었어요. 형구 뒤로 자세히 보면 버스 기다리는 할머니들이 앉아계세요. 앞에서 촬영하니까 궁금해 하실 법도 한데 아무도 카메라를 보지도 않고 평소처럼 본인들 얘기만 하시더라고요. 시골이라 얻어지는 정서죠. 그런 게 자연스럽게 담겨서 그 쇼트 하나가 너무 좋았어요. 엔딩 장면도 상당히 묘하죠. 식탁에서 초희에게 ‘나도 알아요, 많이 아프죠’하는데 체념의 단계인가 싶고 씁쓸하고 이해도 되고. 연기하는 저도 묘했어요. 이 영화 참 희한해.”

사진=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조진웅은 정 감독이 시나리오를 구상할 때부터 주인공으로 그렸을 만큼 형구 캐릭터에 최적화된 0순위 배우였다. 정 감독은 조진웅의 액션, 말투, 분위기 등을 떠올리며 캐릭터를 구상했고 초고를 탈고하자마자 건넸다. 이후 하루 만에 출연을 결정한 그는 초고였지만 “내 대사는 토씨 하나 바꾸지 말라”고 요청했다. 정 감독의 각본을 향한 남다른 신뢰 덕에 가능한 일이었다.

“세상에 정답인 시나리오가 어디 있겠어요. 연기도 연출도 마찬가지죠. 그래서 감독님이 처음에 준 형구가 맞는 것 같다고 했어요. 감독님의 시나리오 이정표가 너무도 정확했고 이 이미지를 그대로 전달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어요. 안 그러면 관객들이 더 모호해하고 헤맬 것 같았거든요. 사실 감독님 시나리오를 보고 원작이 따로 있는 줄 알았어요. 그 정도로 센스 있었고 천재적인 작품이 나왔다는 반응도 있더라고요. 신메뉴를 개발한다고 다 성공하는 건 아닌데 ‘이런 걸 만드는 감독’으로 인정받는다면 충분히 사랑받을 것 같아요. 감독님이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셨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번 작품은 GV(Guest Visit)를 꼭 하고 싶었는데 코로나19 때문에 힘들 것 같아 아쉬워요. ‘계속 개발해도 될까요?’, ‘장르를 뭐라고 할까요?’ 질문하고 싶었거든요. 그 정도로 회자될 가치가 있어요. 오랜만에 영화 같은 영화를 본 것 같아요.”

‘사라진 시간’은 색다르고 기묘하다. 하루아침에 나의 모든 것이 사라진 전대미문의 사건을 다룬 신선한 설정과 결말을 전혀 예측할 수 없는 기이한 스토리가 새로운 장르적 쾌감과 재미를 전한다. 그리고 영화가 남긴 여운은 ‘내가 만약 형구와 같은 상황에 놓인다면 어떻게 할까?’란 상상으로 이어진다. 조진웅은 “어느 날 갑자기 다른 직업을 가지게 된다면, 일단 배우만 아니면 참 좋겠다”며 웃었다.

“재미난 상상이지만 한편으론 무섭죠. 당황스럽지만 조용히 짐을 싸서 내 삶을 찾아 떠날 것 같아요. 그래도 배우만 아니면 좋겠어요. 배우로서 권태롭다기보다 항상 두려운 지점이 있거든요. 다들 그렇겠지만 항상 평가대 위에 올라가있고 가식으로 사는 직업군이라. 어쩔 수 없이 댓글도 많이 달리고 이슈가 원치 않는 방향으로 흘러가기도 하고요. 이건 적응하거나 견고해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더군요. 그래서 연기를 할까 말까 고민하는 후배들이 조언해달라고 하면 ‘그만두라’고 해요. 그래도 대중들의 평가를 받을 것인지 정말 잘 선택하라고 해요.”

사진=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처음 연극 무대에 선 이후로 조진웅이 걸어온 길은 후배들을 말릴 만큼 고된 여정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연기를 쉰 적이 없다.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 이후 ‘명량’, ‘암살’, ‘끝까지 간다’, ‘독전’, ‘공작’, ‘완벽한 타인’, ‘블랙머니’ 등 수많은 작품에 출연하며 지금까지 1억여 명의 관객과 만났다. 연극부터 드라마, 영화까지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자신만의 존재감을 확실히 했고, 그는 여전히 대체 불가한 스타성과 기량을 과시하는 배우다. 하지만 아무리 좋아하는 일이라도 세월이 쌓이면 권태의 순간이 오기 마련. 조진웅은 “그래도 계속 연기하게 된다”며 식지 않은 열정을 드러냈다.

“‘사라진 시간’도 그렇지만 이렇게 묘하고 재미난 이야기가 계속 나오니까 그만둘 수가 없어요. 누군가 이 작품을 안 하면 그냥 소멸될 수도 있잖아요. 실제로 그렇게 사라진 작품들이 꽤 있고요. 내가 피곤하다고 안 할 수 없는 작품들이 있어요. 혹여나 작품이 잘 될 수도 있잖아요. 그럼 감독님, 스태프들 다 같이 먹고 살 수 있으니까. 흥행 장담은 못해도 계속 그 다음 작품을 찾아봐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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