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결백' 포스터
[스포츠한국 조은애 기자] 그 날, 그 일만 벌어지지 않았더라면 달라졌을까. 불청객처럼 찾아온 우연한 사건이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는 일은 생각보다 흔하다. 영화 ‘결백’(감독 박상현)은 예상치 못한 사고 이후 전혀 다른 인생을 살게 된 모녀의 이야기다.

평범한 시골 농가의 장례식장, 농약을 탄 막걸리를 마신 마을 주민 1명이 사망하고 4명이 중태에 빠지는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진다.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된 이는 화자(배종옥)다. 급성 치매에 걸려 조문객도 제대로 맞지 못한 채 남편의 장례식장을 지키고 있던 그는 현장에서 체포된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딸 정인(신혜선)은 한동안 발길을 끊었던 고향으로 내려간다. 대형 로펌 변호사인 그는 직접 엄마의 변호를 맡게 되고, 사건에 깊게 파고들수록 커지는 의혹에 혼란스러워진다. 과연 이들 모녀가 마주한 진실은 무엇일까.

‘결백’은 의문의 사건에서 시작해 엉킨 고리를 하나 둘 풀어가는 전형적인 법정 드라마다. 모든 법정영화가 그렇듯 중요한 포인트는 반전이나 결말보다 사건이 해결돼가는 추리 과정 그 자체에 있다. 그렇다고 억지스러운 신파나, 뻔한 감정을 지루하게 끌고가는 관습에 기댄 영화는 아니다. 이야기의 큰 축인 법정신 본연의 긴박감을 한껏 살리면서 스토리와 배우, 연출의 힘으로 나머지를 채워 장르적 재미를 끌어올렸다.

배우들은 이 영화의 약이다. 특히 데뷔 후 처음으로 영화 주연을 맡은 배우 신혜선의 신선한 매력과 배종옥의 노련한 경륜이 담긴 연기는 충분히 기대를 충족시킨다. 이 외에도 허준호, 홍경, 태항호 등 배우들의 절박한 눈빛과 호소가 영화를 살아있게 만든다. 주조연 배우들의 탄탄한 연기 덕에 인물의 내면 풍경을 들춰낸 클로즈업샷들도 빛날 수 있었다.

사진='결백' 스틸
특히 신혜선은 진중한 연기로 이야기 전체를 끌고나간다. 아픈 기억 앞에 무너지기도 하고 무력할 때도 있지만, 날카롭고 당찬 논박으로 사건의 진실을 쫓는 정인의 다층적인 면모를 흡인력 있게 그려냈다. "죄에 예민해야지, 돈에 예민하면 안 되잖아요"라고 강조하는 장면을 시작으로 빈틈없는 장악력을 보여준다.

배종옥의 강렬한 존재감도 눈을 떼지 못하게 한다. 하얗게 센 머리, 다 망가진 손톱, 움푹 파인 주름, 불안과 두려움에 젖은 눈까지. 배종옥은 모든 것을 놓고 모성만 남은 화자를 섬세한 연기로 그려내면서 더 이상 발 붙일 곳 없는 여인의 절규를 온몸으로 표현했다.

영화는 모티브가 된 실제 사건의 무게감을 적당히 실어내면서 마지막까지 드라마적 긴장감도 놓치지 않는 데 성공했다. 굵직한 사건을 소재로 우리 사회의 단면을 되짚고 그 안에 뿌리내린 부조리와 불합리, 보편적인 진실을 조명하는 시도로 이야기의 갈래까지 확장했다. 뒤로 갈수록 속도를 내는 반전의 묘미도 주목할만하다. 오는 6월 10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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