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리틀빅픽처스
[스포츠한국 조은애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한국 영화산업 생태계에도 지각변동이 감지되고 있다. 지난 2월부터 '콜', '결백' 등 신작들이 줄줄이 개봉일을 연기한 가운데 '사냥의 시간'은 극장 개봉을 포기하고 넷플릭스 공개를 택했다. 이에 해외세일즈사는 "이중계약"이라며 당혹감을 표출했지만, 배급사 역시 "충분한 사전협상을 거쳐 적법한 해지 절차를 밟았다"고 맞선 상태다. 이례적인 사태인 만큼, 업계에서는 이번 일이 한국 영화계에 거대한 파란을 몰고올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지난 23일 투자배급사 리틀빅픽처스는 ‘사냥의 시간’을 다음달 10일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 190여 개국에 동시 공개한다고 밝혔다.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세계적인 확산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가장 효과적으로 더 많은 관객들과 안전하게 만날 수 있는 방식을 우선적으로 고려했다는 설명이다.

코로나19 여파로 국내외 다수의 신작들이 개봉일을 연기한 가운데,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플랫폼을 선택한 것은 '사냥의 시간'이 최초다. 이 과정에서 해외 세일즈를 맡은 콘텐츠판다와 배급사 리틀빅픽처스 사이에 갈등이 불거졌다. 앞서 '사냥의 시간'은 한국영화 최초로 제70회 베를린국제영화제 베를리날레 스페셜 갈라 섹션에 초청돼 화제를 모았고, 이미 약 30개국에 선판매됐으며 추가로 70개국과 계약을 앞두고 있었다. 이 가운데 넷플릭스를 통한 공개가 결정되면서, 해외 배급사들의 입장이 난처해진 것이다. 결국 '사냥의 시간' 해외 판권 세일즈사인 콘텐츠판다는 "이중계약"이라며 강경 대응을 예고했다.

콘텐츠판다 측은 "리틀빅픽쳐스는 당사와 충분한 논의 없이 3월 초 구두통보를 통해 넷플릭스 전체 판매를 위해 계약 해지를 요청해왔고, 3월 중순 공문발송으로 해외 세일즈 계약해지 의사를 전했다"며 "이 과정에서 콘텐츠판다는 차선책을 제안하며 이미 해외판매가 완료된 상황에서 일방적인 계약해지는 있을 수 없다는 의사를 분명히 전했다. 하지만 리틀빅픽쳐스는 투자사들에 글로벌 OTT사와 글로벌계약을 체결할 계획을 알리는 과정에서 콘텐츠판다만을 누락시켰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렇게 일방적인 행위로 인해 당사는 금전적 손해를 입는 것은 물론이고 그동안 해외 영화시장에서 쌓아 올린 명성과 신뢰를 잃게 될 위기에 처했다. 이는 단순히 금액으로 계산할 수 없으며, 당사뿐만 아니라 한국영화 자체의 신뢰에 해를 입히는 행위"라며 "해당 건은 당사를 포함해 해외 영화사들이 확보한 적법한 권리를 무시하고 국제분쟁으로 이어질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다. 또한 당사를 포함해 합법적인 계약을 바탕으로 업무를 진행하는 국내 해외세일즈 회사들의 생존권을 위협할 수 있는 위험한 선례를 남기는 것"이라며 법적 대응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리틀빅픽처스는 "이중계약 주장은 허위이며 충분한 사전협상을 거친 뒤, 천재지변 등에 의한 사유로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는 계약서 조항에 따라 법률검토를 거쳐 적법하게 (계약을) 해지했다"고 반박했다.

또 콘텐츠판다가 계약 의무를 어겼다며 "콘텐츠판다는 리틀빅픽처스가 계약해지 요청을 하기 전일인 8일까지도 해외세일즈 내역을 전혀 공개하지 않았다. 현재까지 통보 받은 콘텐츠판다의 해외세일즈 성과는 약14개국이고, 입금된 금액은 약 2억원으로 전체 제작비의 2%에도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비공식경로로 수십억원의 위약금을 예고했다. 관행적으로 행해지는 ‘끼워팔기’ 또는 ‘덤핑판매’식의 패키지 계약이 행해졌는지도 콘텐츠판다로부터 동의요청이나 통보를 받은 바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 밖에도 "작은 회사의 존폐도 문제였지만, 자칫 집단감염을 조장할 수 있는 무리한 국내외 배급을 진행할 수는 없었다. 리틀빅픽처스는 앞으로도 손해를 끼친 부분에 대해서는 양심적이고 합법적으로 당당하게 대응할 것이며, 원만한 해결을 위한 협상도 열어놓고 대응하겠다"고 덧붙였다.

사진='사냥의 시간' 스틸
이번 사태를 두고 업계에서는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다. 코로나19 사태가 언제 진정될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서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반응도 있지만, 이 같은 선례가 영화산업 전체를 뒤흔들 수도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한 영화업계 관계자는 스포츠한국에 "'사냥의 시간' 측이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탈출구를 마련한 상황이고 어렵게 결정을 내린 것 같다. 조심스럽지만 제작비, 투자금 회수 측면에서 이해되는 부분도 있다"면서도 "영화는 제작, 배급, 투자, 상영 등이 한꺼번에 맞물리는 산업이다. 국내 영화산업은 1차적으로 영화관에서 개봉 수익금이 76%정도이고, 2차 부가 판권 시장이 나머지를 차지하고 있는 구조인데 2차 시장으로 바로 넘어가버린 셈"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관객도 영화산업의 주요한 요소다. 관객 입장에서는 좋은 영화인데도 불구하고 극장에서 보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을 것이고, 추후 개봉을 기대했던 업계에서도 다소 독자적으로 모색했다는 점에서 안타까움은 있다. 현재 코로나19로 인해서 영화업계도 다같이 인내하고 있는 상황이다. 극장이 어려우면 영화산업 자체가 붕괴될 수 있다. 함께 어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에 대해 고민해야할 시점"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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