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타짜:원 아이드 잭' 228만 관객 모아

"소년에서 어른이 되는 도일출의 이야기 그려"

"첫 베드신 연출 어려워… 배우들 눈요기거리 만들고 싶지 않았다"

권오광 감독은 생동성 실험으로 생선 인간이 된 한 청년의 스토리를 다룬 '돌연변이'라는 기상천외한 영화로 데뷔할 때부터 파란을 일으키더니 두 번째 영화는 국내 관객들이 사랑해 마지 않는 시리즈 영화중 하나인 '타짜'의 3편에 해당하는 '타짜:원아이드잭'(이하 '타짜3')을 택했다.

경북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부터 영화광이었고 인근 고교 학생들을 모아 영화 동아리를 직접 만들어 평론도 하고 영화도 만들며 지냈던 그는 중앙대 영화과와 한국예술종합학교를 거치며 차근차근 감독이 되기 위한 준비를 해왔다. 감독 데뷔전부터 영화 '타짜'를 교재 삼아 신 바이 신으로 영화를 분석하며 감독을 꿈꾸던 그는 어느새 '타짜3'의 연출 제안을 받았고 기쁘게 수락한 뒤 4년에 가까운 시간을 해당 프로젝트에 쏟아 부었고 끝내 관객앞에 완성작을 내놨다.

'돌연변이' 때부터 시대 흐름이라는 거대한 물결 속에서 순응해 살아가지만 자신의 욕망을 성취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인간군상에 대해, 특히 청년세대에 대해 애정과 짙은 연민을 담았던 권오광 감독은 '타짜3'에서도 박정민이 열연한 도일출을 비롯해 도박판에 뛰어들어 일화천금을 꿈꾸며 헛된 희망의 롤러코스터에 올라탔다가 이내 나락으로 떨어져 내린 다양한 인간군상들에게 섬세한 시선과 사연을 담아 지독한 욕망의 세계 속으로 관객을 안내한다.

기대와 관심 속에 개봉했던 '타짜3'은 손익분기점인 260만 관객에는 조금 못미치는 228만 흥행을 달성했다. 전작인 1, 2편의 인기에 힘입어 엄청난 기대와 관심을 모았던 것에 비하면 다소 아쉬운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하지만 도박판에 뛰어들어 인생의 단 맛과 쓴 맛을 모두 맛본 후 성장해가는 도일출을 비롯해 서부 영화에서나 봄직한 외양으로 도일출의 키다리 아저씨 역할이 되어준 애꾸(류승범), 허풍쟁이에 수다꾼이지만 리얼 사랑꾼인 까치(이광수), 코믹한 외양 속에 깊은 우물 같은 욕망을 감춘 물영감(우현) 등 전무후무한 캐릭터를 직조해낸 권오광 감독의 연출력에 다시 한 번 기대를 가져도 충분하지 않을까.

- '타짜3'의 성과 중 하나가 류승범이라는 배우의 매력을 다시 한 번 전면에 끌어냈다는 지점이다.

▲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류승범 배우가 애꾸를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애꾸는 미스테리하고 모호한 인물이고 스모키하고 또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이다. 처음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류승범 형님을 생각했고 당시 그 분의 사진을 찾아보니 머리를 기르고 계시더라. 류승범 배우가 하면 정말 좋겠다 싶었다.

- 류승범은 몇년 동안 해외로 거처를 정하고 최근 작품 활동이 뜸했기에 캐스팅이 쉽지는 않았겠다.

▲ 류 배우가 당시 한국에 계신게 아니어서 제작자인 장원석 대표께도 연락처를 물어보고 메일로 시나리오를 전달 드렸다. 메일을 드리고 2~3일 후 류 배우가 연락을 주셨다. 감독과 통화하고 싶다고 연락이 왔더라. 그래서 통화를 했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너무 내용이 많아서 이후 다시 장문의 이메일을 드렸다. 이 영화를 왜 만들려고 하는가, 시나리오를 왜 이렇게 썼는가, 원작을 어떻게 바꿨는가 하는 내용을 보냈다. 그랬더니 류 배우가 본인은 어떻게 지내고 있고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가, 이 캐릭터가 어떻게 갔으면 좋겠는지 하는 내용의 답이 왔고 그렇게 7~8통의 긴 메일이 오갔다.

- 구체적인 캐스팅 제의는 어떻게 했나.

▲ 류 배우는 유럽에서 사진 전시를 하고 있었다. 그림도 그리고 사진도 찍는다고 하더라. 아티스트로서 본인의 영역을 넓히려고 노력하던 중인 걸로 안다. 한국에 그런 내용이 알려지길 원하지 않는 느낌이었다. 그 때 문제는 류 배우의 스케줄과 영화 스케줄을 맞출 수 있는가의 문제가 있었고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야만 했다. 만나자고 이야기 드리니 동남아 작은 섬에서 지내는데 올 수 있겠냐고 물으시더라. "구글에 좌표만 찍어 주십시오"라고 말하고 당장 비행기를 끊었다.

- 두 사람의 첫만남이 궁금하다.

▲ PD님과 바로 비행기를 타고 롬복으로 날아갔다. 이메일과 전화 통화로만 소통하다가 첫 만남을 맞이했다. 류 배우가 있는 곳으로 가니 숙소에서 웃통 벗고 맨발로 앉아 계셨다.(웃음) 차도 거의 안다니는 곳에 계시더라. 나를 보자마자 '오토바이 탈 줄 알아요'라 묻더니 오토바이 한 대를 구해 주면서 바로 따라오라 했다. 형님을 따라가니 그림 같은 뷰가 펼쳐지는 바다가 보이는 외진 곳으로 안내하셨다. 그 곳에 둘이 앉아 '타짜3'에 대한 이야기만 3시간이 넘게 나눴다. 영화 이야기부터 저라는 감독의 영화관, 인생관에 대해 이야기 했고 사랑에 대한 이야기, 서로의 꿈에 대한 이야기도 나눴다. 돌아와서 저녁을 먹은 뒤 바로 다음날 '출연하겠다'고 하시더라. 가장 힘든 부분이 선배님 전시 일정과 영화 촬영기간이 겹치는 문제였는데 한 달 먼저 찍고 또 나눠서 이후 한 달 분량을 찍기로 하니 깔끔히 해결됐다.

- 그렇게 어려운 캐스팅을 거쳐 애꾸라는 걸출한 캐릭터를 연기한 류승범을 볼 수 있었다는 게 흥미롭다.

▲ 승범 형님이 본인 사정에 맞춰서 스케줄을 짜게 된 걸 굉장히 미안해 했다. 대신 작년 6월에 한국에 올 수 있으니 한 달 동안 매일 사무실에 나와 연습을 하시겠다고 했다. 그 기간 동안 콘셉트 잡고 대사와 연기 리허설을 다 했다. 정확히 약속한 날 오셔서 단 한 번의 스케줄 오차도 없이 모든 약속을 잘 지키고 훌륭히 연기해내셨다.

- 이걸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렇게 어렵게 캐스팅한 애꾸가 영화 중반 너무 빨리 사라진 것 아닌가.

▲ 애꾸가 왜 그렇게 일찍 퇴장하는가 질문을 좀 받았다. 하지만 '타짜3'은 박정민이 연기한 도일출을 중심으로 한 영화다. 애꾸는 조력자라고 생각했다. 애꾸가 사라지고 도일출이 아버지와 애꾸에 대한 복수를 하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류승범 배우가 애꾸 역을 훌륭히 소화해서 더 아쉬워들 하시는 것 같다. 시나리오 당시에는 애꾸가 왜 빨리 퇴장하는가 문제제기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영화를 보시고 그런 말씀이 나오는 건 류승범의 아우라를 충분히 느끼시고 그의 이야기를 더 듣고 싶은 욕망이 아닐까 싶다. 아쉽지만 도일출과 애꾸의 스토리가 아닌, 도일출이 성장하는 이야기가 중심이었다.

- 박정민이 연기 잘 하는 것은 자타공인 알려진 일이지만 '타짜3'으로 처음 타이틀롤로서 진검승부를 펼쳐 나갔다.

▲ 이 작품을 하겠다고 마음 먹었을 때 부담감도 컸지만 해보자 마음 먹고 바로 주연은 박정민이 해야 된다고 말씀 드렸다. 배우 자체가 1~2년안에 만들어진 배우가 아니다. 저도 단편, 독립 영화를 하며 감독 준비를 한 것처럼 그 친구도 단편, 독립 영화에 계속 출연하면서 박정민이라는 배우의 세계를 단단히 만들어왔다. 그 나이대 배우들 중 독보적이다. 주인공은 내가 100% 믿고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길 바랬고 딱 박정민이 그랬다.

- 1편의 조승우, 2편의 최승현에 이어 박정민이다. 박정민 칭찬을 이어간다면.

▲ 1, 2편과 이 영화의 차이는 이야기의 배경을 현대로 끌어왔다는 거다. 전편들은 이전의 시대들을 다뤘다. 현대로 이 이야기를 끌어왔을 때 젊은 타짜, 즉 이 시대를 대변할 얼굴이 누가 있을까 했을 때 박정민이 지금 세대의 얼굴을 그릴 수 있다고 봤다. 지금은 국가가 성장하는 시대도 아니고 젊은이들이 다음 스텝으로 나아가기 힘든 시대 아닌가. 패배주의와 염세주의도 퍼져있고 고민도 많은 시대다. 옛날 세대들에게 야망과 낭만이 있었다면 지금 세대에게서는 찾아보기 힘든 지점이다. 제 주위 친구들에게서 볼 수 있었던 감정을 표현해야 한다면 단연코 박정민이었다.

- 박정민의 도일출에게서 가장 만족한 지점은.

▲ 배우가 얼마나 잘했는가는 관객이 판단할 몫이지만 제가 생각하기에 너무 잘 해줬다. 박정민 배우에게 소년의 일출에서 시작해 어른의 얼굴로 끝났으면 좋겠다고 말을 했었다. '타짜3'은 어른이 되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이기에. 저는 주연 배우와 조연 배우의 차이가 기본적으로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주연은 영화를 함께 책임지는 영화의 얼굴과 같다. 연기만 잘 한다고 해서 주연이 될 수는 없다. 자신의 연기 뿐만 아니라 다른 배우들의 연기까지 살리는 역할도 해야 한다. 박정민은 자신이 베이스가 되어야 할 때와 솔로가 되어야 할 때의 밸런스를 아주 노련하게 잡으며 영화에 대한 책임의 무게까지도 함께 짊어져 줬다. 이 영화는 박정민 배우에게 분명 한 단계 도약한 계기가 될 거라 믿는다.

- '타짜' 시리즈는 노출을 동반한 특색 있는 베드신이 시그니처 같은 영화다. 3편에서는 베드신 연출에 있어서 굉장히 자제하고 있다는 느낌인데.

▲ 특별히 외부에서 제약을 받지는 않았다. 관객들이 충분히 통용하는 부분에서 만들고 싶었다. 욕설이나 폭력, 베드신 장면에서 제 스스로 제약 받은 부분은 있는 것 같다. 의식적으로 뭘 피해가려고 그랬다기보다 에로틱하거나 관능적인 또는 격정적인 베드신은 피하고 싶었다. 드라이하고 처연한 정서의 베드신을 그리고 싶었다고 할까.

-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 일출과 마돈나(최유화)가 정사를 나눌 동안 대사가 나온다. 두 배우에게 이들 남녀가 정사를 나눈 후 침대에 누워 나눈 대화라 생각하며 연기를 하라고 지시했다. 서로가 나누는 정서가 보이는 베드신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통상 베드신에서 등장하는 사운드는 약하게 줄였다. 그 장면의 목적이 어떤 야한 것을 보여주는 것보다 처연한 정서가 흐르는 베드신이길 바랬다. 니콜라스 뢰그 감독의 '돈 룩 나우'라는 영화를 보면 자식을 잃은 부모가 정사를 나누는 장면이 있다. 사운드는 없지만 베드신은 적나라하다. 그런데 그 장면을 보고 있으면 슬픈 느낌이 든다. 레퍼런스 삼은 건 아니었지만 우리 영화에서도 유사한 정서가 흐르길 바랐다.

- 베드신 연출이 처음이기에 어려움도 있었겠다.

▲ (배우들보다)내가 더 긴장했다. 본격적 베드신 연출은 저도 처음이었다. 제 가장 큰 고민은 배우들도 인간인데 특히 여배우들은 너무 대상화돼 보여질 수 밖에 없는 부분이 있기에 고민이 됐다. 어릴 적부터 영화를 했으니 저에게 배우 친구들이 많다. 그래서 그들의 입장에 대해서도 많이 생각을 하게 됐다. 극을 위해서 꼭 필요하지만 사람들 앞에서 옷을 벗는다는 건 참 어렵지 않나. 일반적 감정으로 하기 어려운 일인데 또 평생 그 장면들이 따라 다닐 것 아닌가. 베드신을 찍기 전 참 조심해야 했다. 함께 하는 동료이자 또 감독으로서 베드신을 바라볼 때 촬영 전 사전 준비도 많이 했고 사진이나 래퍼런스를 미리 준비하기도 했다. 막상 찍으니 정말 힘들었다. 배우들이 이렇게 어렵게 작업해줬는데 그 모양새에 걸맞는 영화가 나오도록 해야하지 않나. 이 장면들이 눈요기거리로 전락하면 안되었기에 신경쓰고 또 신경썼다.

- 까치를 연기한 이광수는 권오광의 페르소나가 아닐까 싶다.

▲ 이광수와는 평소에도 대화를 많이 나눈다. 관객들이 아시는 것보다 훨씬 좋은 배우다. 준비하는 자세부터 아이디어, 표현력이 굉장히 좋다. 배우는 대중들의 다양한 선입견과 싸워야 한다. 이광수는 예능인이 아닌 배우로서의 영향력을 넓히고 싶은 욕마을 가지고 있다. 다른 배우들은 없는 선입견인데 제가 볼 땐 평생 싸워야 할 부분이다. 자기가 선택한 부분이니 어쩔 수 없기도 하다. 코믹도 할 수 있고 휴먼 드라마도 제대로 보여드릴 수 있는 훌륭한 배우이고 예능인으로만 바라봐 주시는 일정 대중들에 대한 딜레마는 언젠가 멋지게 극복해낼 거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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