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이 천만 관객을 돌파했다. 사진=연합뉴스
[스포츠한국 조은애 기자]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드디어 천만 터치다운에 성공했다. 제72회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에 이어 천만 돌파까지 전무후무한 기록의 연속이다. 봉준호 감독이 또 한 번 자신의 대표작을 경신하며 한국영화사에 굵직한 족적을 남겼다.

22일 오전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영화 '기생충'은 전날까지 누적 관객 수 1000만249명을 기록했다. 지난 5월 30일 개봉 후 53일 만에 천만 관객 동원에 성공한 것이다.

일찌감치 받은 황금종려상 트로피가 ‘기생충’의 흥행을 어느 정도 예감케 했지만 조심스러웠던 건 칸영화제 수상작들의 흥행 실패 전적 때문이었다. 과거 칸 국제영화제 주요 부문에서 수상한 영화는 작품성과 별개로 낮은 흥행 점수를 받곤 했다. 심사위원 대상을 받은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2003)가 327만명, 배우 전도연이 여우주연상을 받은 ‘밀양’(2007)이 160만명, 심사위원상을 수상한 ‘박쥐’(2009)가 220만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했지만 칸 국제영화제에서 각본상을 수상한 이창동 감독의 ‘시’(2010)는 누적 관객수 21만명을 기록했고 지난해 한국영화 중 유일하게 경쟁부문에 진출했던 이창동 감독의 ‘버닝’(2018)도 52만명을 동원하는 데 그쳤다. 그럼에도 봉준호 감독이 이미 전작들을 통해 작품성과 대중성을 고루 인정받아왔다는 점은 고무적인 요소였다. 그리고 마침내 베일을 벗은 ‘기생충’은 고유의 시대정신에 대중성, 재미까지 확보해 관객들을 설득했고 마침내 천만 관객을 끌어모았다.

‘기생충’이 천만 관객을 동원한 것은 영화의 완성도라는 내적 요인 외에 배급력, 그리고 칸국제영화제부터 시작된 국내외 평단의 호평, 스포일러 금지 마케팅으로 상승한 기대심리 등 외적 요인이 어우러져 탄생한 결과다. 특히 빈부격차라는 보편적인 소재를 가족이라는 큰 틀 안에서 무겁지 않게 풀어낸 봉준호 감독의 연출과 관록 있는 배우들의 열연이 만나 성공의 공식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사진='기생충' 스틸
무엇보다 ‘살인의 추억’, ‘괴물’, ‘설국열차’에 이어 또 한 번 서로에게 최고의 결과를 안긴 봉준호 감독과 배우 송강호의 시너지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영화계에서는 한국영화사를 빛낸 두 사람의 관계를 ‘페르소나’(persona)라고 부른다. 이는 단순히 작품 속 캐릭터를 넘어 한 감독의 예술적 정체성을 가장 적절히 표현하는 배우를 가리키는 말이다. 배우가 한 감독의 페르소나가 된다는 건 감독의 삶이 배우를 통해 영화 안에 녹아들게 된다는 의미이고, 이때 배우는 감독의 영화적 분신과도 같다.

봉준호 감독은 송강호의 소시민적이면서도 스릴러 액션, 코미디가 복합된 리얼한 얼굴에 자신만의 호흡을 불어넣곤 했다. 선한 웃음을 짓다가도 언제 폭발할지 모를 불안한 눈빛으로 뒤바뀌는 그의 이중성은 봉준호 감독의 영화가 지니는 기묘하고 때로는 불편한 정서와 꼭 맞아 떨어졌다. 송강호가 봉준호 감독의 상상력에 뼈와 살을 붙인 셈이다. ‘기생충’에서도 무능한 가장 기택 역할은 송강호만큼 잘 어울리는 배우를 상상하기 어렵다. 봉준호 감독이 그를 향해 ‘최고의 배우’라는 찬사를 아끼지 않는 것도 당연해 보인다.

두 사람의 인연은 2003년 ‘살인의 추억’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첫 영화 '플란다스의 개'로 흥행 참패를 맛본 봉준호 감독은 '살인의 추억'을 통해 당시로서는 기록적인 500만 관객을 동원하며 역전극을 썼다. 이처럼 봉준호 감독에게 ‘흥행감독’의 명성을 가져다준 ‘살인의 추억’은 여러모로 특별한 작품이다. 이 영화의 주연인 송강호는 봉준호 감독이 조감독으로 약 2년간 일했던 '모텔 선인장' 오디션 작업 때 잠깐 만난 인연이 전부였다. 송강호는 당시 첫 만남을 기억하고 무명감독이었던 봉준호 감독의 영화 캐스팅 제의를 흔쾌히 수락했다. 이와 관련해 송강호는 최근 방송된 MBC ‘스페셜’에서 "조감독이었던 봉준호 감독이 내가 무명이던 시절, 함께 작업을 못해서 미안하다고 언젠가는 꼭 좋은 기회에 다시 만나고 싶다는 삐삐 녹음을 남겨놨었다.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예의바른 느낌이었다. 그게 굉장히 인상적이었다"는 일화를 전하기도 했다.

이후 두 사람은 17년 간 영화적 동반자로 같은 길을 걷고 있다. 이제 송강호의 대표작이 곧 봉준호 감독의 대표작이라 해도 될 정도다. 17년이라는 세월 동안 네 작품을 같이한 송강호와 봉준호는 탄탄한 신뢰감을 바탕으로 대중성과 작품성을 모두 확보한 흥행작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 이제 서로에게 또 다른 이름이 된 봉준호 감독과 송강호가 또 어떤 작품으로 새로운 경험을 안겨줄지, ‘기생충’ 이후 두 사람의 또 다른 도약에 기대가 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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