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윤수정 기자 pic@hankooki.com
[스포츠한국 조은애 기자] 세상에서 가장 쉽고 아름다운 문자 한글. 한글은 어떤 이들의 손에서 어떻게 시작된걸까. 모두가 알고 있지만 아무도 몰랐던 한글 창제의 숨겨진 이야기가 베일을 벗는다.

25일 오전 서울 중구 메가박스 동대문에서는 영화 '나랏말싸미'(감독 조철현) 제작보고회가 진행됐다. 이날 행사에는 배우 송강호, 박해일, 전미선과 조철현 감독이 참석했다. '나랏말싸미'는 1443, 불굴의 신념으로 한글을 만들었으나 역사에 기록되지 못한 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으로 영화 '사도'(2015)의 각본을 맡았던 조철현 감독의 신작이다. 조 감독이 한글에 관련된 영화를 마음에 품은 이후 영화화의 실마리는 실존인물인 신미 스님에게서 나왔다고. 불교 국가인 고려를 뒤집고 유교를 국시로 창건된 새 왕조 조선의 임금인 세종이 스님과 손을 잡고 한글을 만들었다는 것은 그 자체로 드라마틱했다.

이날 조 감독은 "평상시에 사극에 많이 참여했는데 우리 역사 중에서 가장 위대한 성취는 팔만대장경과 훈민정음이라고 생각했다. 훈민정음을 영화로 만들고자 한 건 15년 정도 됐다. 몇 년 전에 팔만대장경과 훈민정음 사이에 신미 스님이란 연결고리가 있단 걸 알게 됐고 그 두 가지 설정이 마음에 끌렸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업적이라고 하는 세종의 훈민정음이 왜 비밀 프로젝트였을까. 나라의 공식 문자를 만드는 일인데 왜 비밀리에 했을까. 그 상황이 궁금했다. 유교국가의 왕이 불교 승려와 문자를 만든다면 비밀일 수밖에 없었을 것 같다. 기독교 국가에서 왕이 이슬람 성직자와 문자를 만드는 거랑 비슷한 거다. 그 설정을 근간으로 시나리오를 썼다. 한글의 창제 원리와 과정을 씨줄로 하고 있고 그 과정에서 만난 여러 인물들의 인연을 날줄로 해서 만든 이야기다"라고 기획 의도를 밝혔다.

특히 조 감독은 "개인적인 이야기인데 저희 어머님의 평생 한이 글자를 모르시는 것이었다"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MC 박경림은 "영화를 보셨다면 참 자랑스러우셨을 것 같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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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은 백성의 것이어야 한다는 믿음으로 한글 창제를 시작하고 맺은 임금, 세종은 배우 송강호가 연기했다. 송강호는 모두가 존경하는 영웅이란 이름 뒤에 가려진 세종의 인간적 호방함과 좌절, 고독, 애정 등의 감정을 다채롭게 표현했다.

송강호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이야기가 많지만 세종대왕께서 한글을 만들어가는 과정, 인간적인 고뇌, 왕으로서의 외로움과 고통 이런 것들을 심도 깊게 접하고 만나진 못했던 것 같다. 그런 부분이 매력적이었다"며 "특히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 업적 외에 그분의 고뇌, 군주로서의 외로움, 신념 같은 것들이 스크린 속에 배어나게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배우 박해일은 신미 스님으로 분했다. 신미 스님은 아무도 몰랐던 한글 창제의 숨은 주역으로, 억불정책을 국시로 여긴 유교 조선에서 가장 낮은 곳인 불가에 귀의한 인물이다. 자신이 믿는 진리 부처 외엔 섬기지 않는 꼿꼿함으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임금 앞에서도 굽히지 않는다. 박해일은 "세종대왕님의 이야기인 동시에 위대함 속에 가려져있던 고뇌, 평범한 모습들이 담겨 있는 게 인상적이었다. 또 한글 창제를 하면서 조력자가 스님이었다는 게 호기심이 컸다. 크게 안 어울린다는 얘기는 못들어서 머리를 밀었다. 관객분들이 보실 때 스님 역할이 어색해보이지 않았으면 했다"고 전했다.

조 감독은 "스님 역할이 부담이었을 거다. 삭발도 정식 스님들을 모시고 실제 승려들과 똑같이 했다. 그 이후로 신미 스님에게 빙의하듯 했다. 보통 천년 고찰의 스님들은 자부심이 강하신데 저를 찾아와서 박해일씨는 진짜 스님같다고 하실 정도였다. 특히 박해일씨가 도로에서 절까지 2km 정도였는데 그 거리를 매일 걸어다니더라. 그 당시 스님들이 실제 걸어다녔던 느낌을 살리려고 했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세종의 약한 모습까지 끌어안으며 한글 창제를 도운 소헌왕후 역은 배우 전미선이 맡았다. 세종에게 소리글자에 통달한 신미 스님을 소개해 한글 창제의 길을 터주고 궁녀들에게 새 문자를 가르쳐 문자가 살아남을 길까지 낸 여장부와 같은 인물이다. 전미선은 영화 '살인의 추억'(2003) 이후 16년 만에 재회한 송강호, 박해일과의 호흡에 만족감을 드러내며 "보통 한 가정의 아내들은 내조를 하지 않나. 그리고 별로 티가 안 난다. 그래서 마음이 아픈데 제가 하고 싶었던 말과 성품이 정확하게 소헌왕후 안에 있었다. 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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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랏말싸미'의 또 다른 관전포인트는 전국 곳곳 문화유산의 풍광을 담은 배경이다. 해인사부터 부석사 무량수전, 안동 봉정사까지 그간 영화와 드라마에서 볼 수 없었던 역사적인 공간들이 다수 등장한다.

송강호는 "부석사 무량수전에 처음 들어갔을 때 대단한 기운을 느꼈다. 어마어마한 역사의 공기에 비해 저희의 연기가 얼마나 가볍나, 그런 생각이 들 정도였다. 숭고한 시간들이었다. 그래서 더 이 작품의 진중함이 저희를 지배했다"는 소감을 전했다.

박해일 역시 "합천 해인사 팔만대장경도 처음 들어가서 촬영했다. 인생에 한 번 있을까말까한 경험이었다. 영화 속에서 이런 문화유산들을 카메라에 담는 게 쉽지 않다.감사하게도 제작진이 찾아가서 굉장히 어렵게 허락을 받았다고 들었다. 문화유산이란 공간이 제2의 캐릭터나 다름없다. 이 작품을 새롭게 보여주는 지점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조 감독은 "우리가 물과 공기처럼 쓰고 있는 글자가 어떻게 만들어졌고, 왜 위대한가, 또 위대하다는 건 과연 무엇인가 그런 걸 느껴보셨으면 좋겠다. 아마 모든 위대함의 배경에는 상처가 있는 것 같다. 결과로서 위대하다는 평가에 그치지 않고 그 과정에 집중해주셨으면 좋겠다"며 기대를 당부했다.

'나랏말싸미'는 오는 7월 24일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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