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걸캅스'서 전설의 강력계 형사 박미영 역 열연

'걸캅스' 주연을 맡은 라미란/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스포츠한국 모신정 기자]

'걸캅스'의 주연배우 라미란은 영화가 첫 공개되는 언론배급 시사회 현장에서 "제가 올해 마흔다섯 살인데 출연 영화 48편, 데뷔 20년 만에 첫 주연을 맡게 됐다"고 인사를 건넸다.

평소 배우로서 활발한 활동뿐만 아니라 예능 프로그램 출연에서도 젊은 후배 연예인들 못지 않은 끼와 에너지를 펼쳐 왔던 라미란이기에 이날의 상기된 음성은 듣는 이들조차 벅찬 감정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다.

어린 나이에 드라마나 영화 한두 편으로 스타가 돼 그 명성을 몇 년이고 이어가는 경우도 종종 일어나는 곳이 연예계이지만 조단역으로 시작해 오랜 시간이 흐른 후 주연자리를 꿰차는 일은 극히 드문 일이기에 라미란의 끝없는 도전에 더욱 뜨거운 응원이 뒤따른다.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홍보 인터뷰에 나선 라미란을 만났다. 그의 대표작(영화 '스파이', '미쓰와이프') 속 코믹한 이미지나 '언니들의 슬램덩크' 등 예능 프로그램들에서 보여줬던 활기차고 에너지 넘치던 모습과는 또 다른 자연인 라미란이 있었다.

수많은 작품 활동 끝에 주연작을 맡게 돼 꽤 설렘과 불안과 긴장 등 다양한 감정이 교차했을 터인데 표정 밖으로 드러내지 않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다만 '연기자'라는 직업이 라미란에게 얼마나 천직인지 그가 자신의 일을 얼마나 즐기고 있는지 그 진심과 애정만은 속속들이 들어와 박혔다.

- 48편 영화 출연 후 첫 주연이라는 말이 매우 인상적이더라. 엄청난 세월을 겪었다.

▲ 너무 대단한 일처럼 말한 것 같아 나중에 민망했다. '걸캅스' 제작자인 변봉현 대표와 영화 '소원' 때 처음 인연을 맺었다. '나의 사랑, 나의 신부'에 우정 출연을 했는데 그 때 '네가 주인공인 영화 만들겠다'고 하더라. 공수표인줄 알았는데 2년 후 정말 시나리오를 주더라. 그 시간동안 저를 위해 기획을 해준 거다. 작품이 이상했어도 해야만 했는데 다행히 좋은 작품이다. 부담스럽기는 했지만 시나리오가 쑥쑥 잘 읽혔다.

- 깜짝 놀랄 액션 장면이 여러 번 나온다. 상당히 열심히 준비했을 것 같다.

▲ 제가 생각한 것보다 더 잘 나왔다. 화려하기보다 현실감 있는 액션이었다. 하이라이트 액션인 마지막 백드롭은 시나리오에서 볼 땐 '뭐 대단한 건가' 했는데 실제 사망에 이를 수 있는 위험한 액션어서 선수들도 잘 안 쓴다고 하더라. 훈련하고 배우면서 알게 됐다. 처음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날더러 액션을 하라고?' 했었는데 그게 라미란에게 보고 싶은 모습이었다는 생각이 들더라.

- '전지적 참견 시점'에서는 촬영이 없을 때 누워 있는 걸 좋아하던데 운동 신경이 좋은 편인가.

▲ 한참 드라마 촬영을 하고 있을 때 액션 스쿨을 병행해야 했다. 한 달가량 정말 집중해서 훈련 받았다. 저희 집이 액션 스쿨이 위치한 파주 인근이어서 열심히 나갔다. 정말 그 곳 분들의 노하우가 대단했다. '너무 잘 하시네요'라고 칭찬 하면서 계속 훈련하게 만들었다. 합을 맞추는 연습을 하다 보면 턱 밑까지 숨이 차올랐다. 엉겨 붙는 액션이 많았고 거짓말로 보여줄수 있는게 아니라서 첫날은 호되게 앓아 누웠다.

- 정다원 감독의 데뷔작이다.

▲ 감독님이 젊은 분이다. 우리 모두에게 '걸캅스'는 도전이었다. 감독님은 상업 영화 입봉이었고 저는 상업 영화 첫 주연이었고 이성경, 최수영 등 같이 하는 친구들도 다 젊고 스태프들도 젊었다. 현장이 밝고 떠들썩하니 마치 젊은 피를 수혈받는 기분이랄까. 처음에는 2편을 하느니 마느니 농담처럼 오갔는데 현장의 이런 에너지면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불문율처럼 여자 영화가 많이 안 만들어지는데 제작자 변봉현 대표와 정다원 감독님의 도전과 용기가 대단하다. 흥행 여부를 떠나 이 분들의 책임감과 배우들에게 보내준 무한 신뢰에 정말 감사하다.

- 현장에서 제작자를 빼면 가장 연장자이기도 했다. 첫 주연인만큼 부담도 컸을텐데

▲ 감독님의 디렉션도 굉장히 신선했고 저는 그냥 따라가기만 하면 됐다. 젊은 세대에 제가 맞춰가는 입장이었다. 어떻게 하면 뒤쳐지지 않을지 노력했다. 처음 '액션을 어떻게 하나' 고민했는데 현장에 와서 기운을 받다 보니 할 수 있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돼줬다.

- 가장 어려웠던 장면은.

▲ 한 여름에 세류동 인근 현장에서 촬영을 했는데 유난히 더웠다. 옥상 땡볕 아래에서 가죽 점퍼를 입고 뛰어 다니려니 정말 힘들더라. 앵글을 옆으로 잡아서 '예스 마담' 분위기도 내려고 하시던데 가죽 점퍼 입고 건달에게 한 방 날릴 때 정말 폼은 나더라.(웃음) '이 맛에 액션을 하나' 생각도 들었다.

- 전설의 강력계 형사 출신이지만 현재 퇴출 0순위 주무관 박미영 역을 연기했다. 같은 워킹맘으로써 동질감을 느낀 적이 있나.

▲ 사실 박미영은 공무원이고 저는 너무 들쑥날쑥한 일이라 같은 워킹맘이라고 해도 될지 모르겠다. 저는 운좋게도 부모님이 돌아가면서 아이를 봐주시고 마음의 부담이나 아이에 대한 걱정 없이 편하게 일을 하고 있다. 보통 직장인들의 애환은 솔직히 잘 모르겠다. 제가 일반 직장인들의 마음을 이해한다고 말하기 어렵다. 저도 경제적으로나 지금보다 훨씬 힘든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좋은 시기를 맞이했다. 우리 영화가 워킹맘의 애환을 보여주려고 만들었다기보다 한 인물이 알을 깨고 과거에서 나오는 성장을 그리려고 했던 게 맞다.

- 영화 속 디지털 성범죄나 마약 사건 등이 최근 버닝썬 사태 등과 소름 끼치도록 닮아 있다. 그런 면에서 더 공감을 얻는 것 같은데.

▲ 박미영도 초반에는 사회적 사건에 관심을 별로 가지고 있지 않다가 한 여대생이 디지털 성범죄에 노출된 사실을 알게 되면서 조금씩 관심을 가지게 ㄷㅚㄱ 경각심을 느끼게 된다. 이런 류의 범죄에서 대다수 피해자는 여성들 아닌가. 여성들이 조금 더 공감할 수 있는 사건을 다루고 있다. 박미영이나 조지혜(이성경)이 이 사건에 뛰어들게 되는 동기 부여가 더 되는 것 같다. 극 중 남자 경찰들은 '벌금이나 맞고 끝날텐데'라며 수사를 만류하지만 현재 경찰이 아닌 박미영과 징계 중인 조지혜는 어떻게든 해결하려고 뛰어든다. 피해자를 위해 아무도 손 잡아주지 않을 때 그들의 관심과 참여가 결국 사건 해결의 단초가 되는 부분이 좋았다.

- 남편 윤상현을 비롯한 남자 캐릭터들이 한심하게 그려졌다는 비판이 있다.

▲ 특별히 비하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남자 경찰들이 처음엔 사건 해결을 주저하지만 결국 같이 해결해 나가지 않나. 윤상현이 연기한 내 남편 캐릭터가 다소 과장되게 표현되기는 했지만 배우 특유의 사랑스러움 때문에 허용되는 것 같다.

- 선배 배우 중 롤모델이 있나.

▲ 예전엔 롤모델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나 잘난 맛에 살았다. 그런데 요즘 김혜자 선생님을 보면 작품에서도 너무 멋지시고 진정한 걸 크러시같다. 후배들이 나아갈 길을 보여주신다. 내가 선생님 연배가 됐을 때 저런 에너지로 연기할 수 있을까 싶다.

- 연기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 학교(서울예대)를 졸업하고 무대에서 뮤지컬과 연극을 했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쉬고 있을때 전화가 와서 '친절한 금자씨' 오디션을 봤다. 아이 낳고 1년간 감옥처럼 지내고 있을 때였다. 생각지도 않은 영화의 오디션 연락이라 너무 떨리더라. 제가 웬만해선느 잘 안 떠는 성격이다. 그런데 합격을 한 거다. 출연은 4회차 정도 했다. 그 당시 씨네21 인터뷰도 했었다. 그 때 정말 살 것 같은 기분이 들고 해방감이 들었다. 처음 해 본 일이었고 제가 정말 하고 싶었던 일이라는 걸 알게 됐다.

- '친절한 금자씨'가 48편 출연작의 시초인 셈이다.

▲ 시사회엘 갔는데 정말 못보겠더라. 그 이후부터 안 가리고 무슨 역할이든 다 했다. 작품 수만 많다. 오디션이 돼서 붙으면 다 했다. 제가 다작 1위였는데 얼마 전 정재영 오빠가 가져갔다고 들었다.(웃음)

- 출연작 중 스스로 생각하는 대표작 3편을 꼽는다면.

▲ 먼저 '친절한 금자씨'다 제가 영화에 발 담그게 해 준 작품이다. 저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을 때 저를 꺼내서 영화계로 밀어 넣어준 고마운 작품이다. 두 번째가 '댄싱퀸'이다. 영화에서 단역만 하다가 처음으로 오디션을 안보고 한 작품이다. 윤제균 감독님이 제 전작 '헬로우 고스트'를 보시고 캐스팅을 해주셨다. 당시 분량도 가장 많았고 저라는 배우의 얼굴을 알리게 해 준 작품이다. 세 번째는 '소원'이다. 주인공 반열에 올려 준 작품이고 소원으로 여우조연상을 처음 받았다. 변봉현 대표님과 그 때 처음 만나 오늘 여기까지 오게 됐다. 배우로서 제게 가장 많이 환기가 된 작품이다. 매번 눈물을 흘리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끼며 했던 작품이다. 지금도 생각하면 마음 한 구석이 짠하다.

- 배우로서 20여년 가까운 세월을 살아 오며 스스로를 어떻게 응원하고 싶나.

▲ 이제부터 고난의 시작이다. 차근차근 쌓아오긴 했지만 견고한 탑인지는 모르겠다. 저라는 사람이 어떤 모습의 배우로 남을까. 이제부터 결정된다. 끊임없이 도전 할거다. 일단 해봐야지 안하고 후회하는 것 보다 해보고 후회 하는게 낫다. 여러 길을 만들어 보고 싶다.

- 라미란 최고의 경쟁력은 어디에 있다고 보나.

▲ 비주얼로 인정 받는 배우 되고 싶다. 제 외모가 최고의 경쟁력이라 생각한다. 정말 흔하디 흔한 외모, 이것이 나의 힘이다. 어디 데려다 놔도 잘 어울리고 원래 거기 있던 사람처럼 잘 어울리지 않나. 그게 가장 큰 장점이다.

- 후배 배우들에게 조언을 해준다면.

▲ 힘들어도 10년 이상은 버티라고 해주고 싶다. 데뷔 나이는 빨라졌지만 버텨야 하는 시간이 늘어났다. 누가 버티느냐 마지막까지 누가 살아남느냐가 중요해진 시대다. 아무 것도 안하면 정말 아무 사람도 아니게 된다. 저는 산에도 다녀오고 군대도 갔다오고 해봤는데 못할게 뭐 있나. 앞으로도 액션도 하고 멜로도 하고 계속 도전하고 싶다.

- 배우로서 꿈이 있다면.

▲ 제가 할 줄 아는게 연기밖에 없다. 가늘고 길게 있는 듯 없는 듯 연기하고 싶다. 제가 지구력도 별로 없고 걱정병도 많고 하지만 오래 연기하며 살아가고 싶다. 역할의 경중을 가리지 않고 제가 잘 할 수 있다고 시켜주시면 계속해서 다양한 역할에 도전하며 연기하며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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