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인전’은 우연히 연쇄살인마의 표적이 되었다 살아난 조직폭력배 보스와 범인 잡기에 혈안이 된 강력반 미친개, 타협할 수 없는 두 사람이 함께 연쇄살인마 K를 쫓으며 벌어지는 범죄 액션 영화다. 김성규는 무차별적으로 살인을 저지르는 연쇄살인범 강경호, 일명 K 역을 맡았다. “K는 끝까지 어떤 동기나 이유를 드러내지 않아요. 마치 과시하듯이 범행을 저지르고 삶에 대한 욕구나 두려움도 없는 사람 같죠. 관객들에겐 좀 공허한 인물로 보였으면 했어요. 논리적으로 이해하기 보다는 이미지적으로 충격과 공포를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생각했죠.”
K는 언뜻 감정이 없는 인물 같아 보인다. 누군가에게 칼을 휘두를 때 가장 의욕적으로 보일만큼 비이성적이고 세상에 미련이 없다는 듯 거침없이 돌진한다. 극 중 어른들로부터 학대당해 불우한 유년기를 보냈을 것이라 짐작케 하는 대목이 등장하지만, 그런 성장환경이 그의 잔혹한 범행에 완벽한 동기가 될 순 없고 누구라도 K의 날선 감정과 잔혹한 행동을 이해하기 어렵다. 김성규 역시 K의 모든 행동이 물음표의 연속이었다고 털어놨다. 가장 먼저 외딴 섬 같은 K의 외견을 그리기 위해 7kg정도 체중을 감량하고 피폐한 모습을 만들었다. 일부러 손톱을 물어뜯는 습관을 들였다가 손톱의 절반이 없어지기도 했다.
“K가 의도적으로 자기 지문을 약품으로 지우는 장면이 나오거든요. 손이 더 망가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욕심이긴 한데 그렇게 잘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신경 써야 상대배우도 저를 김성규가 아닌 캐릭터로 볼 테니까요. 유명한 범죄자들의 이미지를 많이 찾아본 결과 건강하지 않은 이미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악역 후유증이요? 살을 많이 빼느라 기분이 약간 다운되고 예민하긴 했는데 다행히 혼자 살아서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진 않았어요.(웃음) 그 정도로 깊게 들어가진 않았답니다.”
‘악인전’의 이원태 감독은 ‘범죄도시’ 시사회 뒤풀이 자리에서 김성규와 처음 만났다. 선악이 공존하는 김성규의 묘한 눈빛을 칭찬했던 이 감독은 K역에 그를 캐스팅했고 김성규는 기대 이상의 연기를 보여줬다. 특히 마동석과 벌이는 액션신에서는 덩치 큰 마동석의 존재감에 밀리지 않는 섬뜩하고 압도적인 열연을 펼쳤다.“‘범죄도시’ 때 액션스쿨에서 배운 걸 기본으로 했어요. 워낙 마동석 선배님이 리드를 잘 해주셔서 합이 잘 맞은 덕분에 좋은 장면이 많이 나온 것 같아요. 선배님 액션이 정말 깔끔해요. 실제로 터치하지 않아도 타격감이 크게 보이고요. 선배님의 비주얼이나 법정 상의 탈의신을 보면서 배우로서 경이롭다고 생각했어요. 역할을 위해서 몸의 텐션을 그렇게 올리는 게 정말 쉽지 않은 일이거든요.”
연극무대에서 오랜 기간 활동했던 김성규는 ‘범죄도시’ 양태 역에 이어 넷플릭스 ‘킹덤’ 영신 역까지 흥행작들의 신스틸러로 연이어 주목받았다. ‘킹덤’은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인정받으면서 시즌2 촬영에 돌입했고, ‘악인전’은 14일 개막한 제 72회 칸 국제 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 부문에 초청되는 경사를 맞았다. 김성규는 마동석, 김무열과 함께 칸행 비행기에 오른다.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벌어서 공연을 준비하던 몇 년 전과 확연히 달라진 요즘이다. 김성규는 “신기하다. 점을 한 번 보러가야 되나 싶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운이 좋다고 표현해야 되나 싶기도 해요. ‘킹덤’은 처음 오디션을 볼 때까지만 해도 그 플랫폼이 어떤 건지도 잘 몰랐고 ‘악인전’ 역시 그저 배우로서 아주 작은 단위의 목표, ‘연기 잘 해야지’ 딱 그것만 갖고 시작했어요. 근데 이렇게 칸까지 가게 될 줄은 몰랐어요. 평생 한번뿐일 수도 있는 순간인데 사진을 어색하지 않게 찍을 수 있을까 걱정이에요. 어색하게 웃으면 큰일인데(웃음) 요즘에 느끼는 건 지금까지 인간 김성규로 살면서 보고 듣고 경험한 걸로 연기하고 있다는 거예요. 이게 다라고 생각하는 순간 위험해질 것 같은 생각이 들었어요. 인간적인 경험, 더 많은 경험을 통해서 보시는 분들이 믿고 공감할 만한 연기를 보여드리고 싶어요. 그래서 배우 김성규가 아닌 역할로서 기억되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