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자는 이제 그만! 검서나 형사 역할 하고파!

'어린의뢰인' 유선, 사진제공=이스트드림시노펙스
[스포츠한국 최재욱 기자] 요즘 유행하는 ‘믿보배(믿고 보는 배우)’란 말이 떠올랐다.

영화 ‘어린 의뢰인’(감독 장규성, 제공/제작: 이스트드림시노펙스㈜) 개봉을 앞두고 서울 소격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배우 유선은 얼굴만 봐도 신뢰감이 가는 배우였다. 20년 가까운 연기 인생에서 작품의 완성도가 좋든 나쁘든, 역할이 작든 크든 항상 좋은 연기로 작품에서 자신이 해야 할 몫을 충분히 다하며 대중의 신뢰를 받아왔다.

진정한 프로의 의미를 느끼게 하는 배우이면서 화목한 가족을 이끌려 노력하는 엄마, 부모님에게 항상 죄스러운 마음을 갖고 사는 딸로서 고뇌하는 모습은 범접하기 힘든 스타라기보다 우리 주위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옆집 언니의 느낌이었다.

영화 ‘어린 의뢰인’은 2013년 일어난 ‘칠곡 아동 학대 사건’을 소재로 아동학대의 심각성을 고발하는 작품. 유선은 사건의 가해자인 비정의 계모 지숙 역을 맡아 모골이 송연해질 정도로 실감나는 연기를 선보인다. 지난 2012년 영화 ‘돈 크라이 마미’에서 여성을 향한 성폭력의 심각성을 제기하는 역할을 맡은 적이 있는 유선은 이번에도 영화가 전하는 메시지가 공감돼 시나리오를 읽자마자 금방 출연을 결정했다.

“제 직업을 통해 작품 안에서 사회적 메시지를 전할 수 있다면 정말 보람 있는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늘 하고 있었어요. 제 연기를 통해 위안과 감동을 주면서 생각할 수 있는 여지를 전한다면 정말 행복하겠다는 마음이었죠. 그래서 나를 되돌아보면서 우리 사회도 되돌아볼 수 있는 힘 있는 작품을 늘 갈망해왔어요. 그런 갈증이 있을 때 ‘어린 의뢰인’의 시나리오를 읽게 됐어요. 6살 딸을 가진 엄마로서 평소 아동학대 문제에 대한 관심이 많았는데 그 부분에 대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분 좋은 제안이어서 책을 읽자마자 출연하겠다고 말했어요.”

'어린의뢰인' 유선, 사진제공=이스트드림시노펙스
유선은 선 굵고 강해 보이는 인상 때문에 오해를 받지만 사실 정이 많고 마음이 여린 스타일. 영화 속에서 아이들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장면을 연기할 때 얼마나 심적으로 힘들었을지 예상이 간다. 그래서 언론 시사회 후 기자간담회에서 “6살 된 딸을 가진 엄마로서 힘들지 않았느냐”는 질문이 나오자 감정이 휘몰아쳐 눈물을 쏟았다.

“저도 모르게 감정이 울컥해 눈물이 나더라고요. 촬영 내내 힘들었던 내 마음을 이해해주시는 것 같았어요. 촬영 당시 외로웠던 감정이 떠오르면서 위로를 받는 느낌이었어요.(웃음) 영화 출연을 결정할 당시 역할이 워낙 세서 제작진이 캐스팅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대요. 의욕이 앞서 전 ”이렇게 좋은 작품인데 왜 안 하지?“라는 생각이었어요. 장규성 감독님이 첫 미팅에서 ‘어려운 결정을 하셨다’고 말씀하셔서 의아했어요. 이렇게 감정적으로 힘들지 예상하지 못한 거죠. 평소 전 목적에 집중하고 과정이나 결과까지는 예측하지 않는 스타일이에요. 그 결과로 촬영 내내 길고 긴 저만의 외로운 싸움이 펼쳐졌어요.(웃음) ‘이래서 다른 배우들이 안 한다고 했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렇게 고생한 만큼 영화가 좋은 평가를 받았으면 좋겠어요. 관객들의 사랑을 받아 이 영화의 메시지가 널리 전해졌으면 좋겠어요.”

‘어린 의뢰인’은 이 사회를 움직이는 어른들의 책임감에 대해 이야기한다. 주인공인 변호사 정엽(이동휘)은 다빈 민준 남매가 아동학대의 위험에 노출돼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지만 외면하고 떠났다가 민준이 사망하자 사건의 진실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유선은 ‘아직도 많은 아이들이 보호받지 못하고 학대의 위험에 처해 있다는 사실에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뉴스에 아동학대 사건이 보도될 때마다 한 아이의 엄마로서 마음이 정말 아파요. 우리 영화는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방관자에서 머물지 말고 모두가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이야기해요. 어린이는 우리 사회를 이끌어갈 가장 중요한 자산이자 희망이잖아요? 어른들이 보호해줘야 해요. 영화를 촬영하면서 제 자신을 돌아봤어요. 저도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고 아이에게 언성을 높인 적이 있었어요. 정말 미안하더라고요. 그래서 남편과 전 늘 아이 앞에선 되도록 화목한 모습만 보여주려고 노력해요. 싸울 때도 아이 못 보게 숨어서 하죠.(웃음)”

유선은 현재 KBS2 주말드라마 ‘세상에서 가장 예쁜 내딸’(극본 조정선, 연출 김종창)에서 일과 육아를 양립하느라 좌충우돌하는 ‘워킹맘’인 큰 딸 강미선 역할로 여성 시청자들의 공감을 사고 있다. “미선이 친정엄마한테 너무 막 하는 거 아니냐”는 질문을 던지자 안타까움이 가득한 눈빛으로 항변했다.

'어린의뢰인' 유선, 사진제공=이스트드림시노펙스
“워킹맘들은 정말 안 됐어요. 남편들이 예전보다 육아나 가사 일을 많이 도와준다고 하지만 여자가 다 책임지는 경우가 여전히 많아요. 그럴 때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건 친정 엄마밖에 없어요. 아무리 시부모님이 도와줘도 편한 건 친정 부모님이에요. 우리 드라마에 그런 현실적인 모녀 관계가 잘 그려져 더욱 공감을 해주시는 듯해요. 엄마와 딸은 늘 옥신각신 소리 지르고 자주 싸우지만 깊은 애정과 신뢰를 기반으로 해요. 그래서 아무리 싸워도 금방 풀어지곤 하죠. 부모님들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으려면 대한민국 남편들이 좀더 육아와 집안 일에 나서야 해요. 저와 남편은 육아와 가사를 거의 50대50으로 나눠서 해요. 10년 연애를 하고 결혼했기에 서로의 성향을 잘 알아요. 제가 모든 일을 척척 해내는 슈퍼우먼이 아닌 걸 알기에 결혼 초기부터 본인이 알아서 하더라고요. 남편이 그러는 걸 너무 당연한 듯이 하면 부부간 불화가 올 수 있기에 늘 고맙고 감사하다고 말하죠. 그렇게 맞춰가며 사는 게 가족의 행복인 것 같아요.”

2002년 드라마 ‘그 햇살이 나에게’로 데뷔한 유선은 수많은 드라마와 영화에서 사이코패스부터 지적인 여성 등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해왔다. ‘앞으로 어떤 역할을 연기해보고 싶으냐’는 질문을 던지니 의외의 대답이 나왔다.

“의도한 건 아닌데 제가 ‘어린 의뢰인’의 지숙처럼 이제까지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는 범죄자 역할을 많이 연기했어요. 법안에서 범죄자들을 잡는 형사나 검사를 연기해본 적이 없어요. 데뷔했을 때는 아나운서가 아니냐는 질문을 받을 정도로 반듯한 이미지였는데 의외로 센 캐릭터만 저에게 오네요. 이제 저도 정의의 사도 역할도 한번 해보고 싶어요.(웃음)”

'어린의뢰인' 유선, 사진제공=이스트드림시노펙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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