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박형식이 스포츠한국과 만났다. 사진=UAA
[스포츠한국 조은애 기자] “다들 유죄라고 확신할 수 있어요? 난 모르겠어요!”

청년 창업가 권남우는 얼떨결에 대한민국 첫 국민참여재판에 8번 배심원으로 가장 마지막에 합류하게 된다. 법에 대해 잘 알진 못하지만 증인, 증거, 정황까지 모든 것이 유죄를 가리키는 이 재판이 어딘가 석연치 않다. 유죄냐, 무죄냐. 과연 남우는 어떤 선택을 할까.

배우 박형식이 권남우로 분한 영화 ‘배심원들’은 2008년 우리나라에 처음 도입된 국민참여재판의 실제 사건을 재구성한 작품이다. 첫 국민참여재판에 어쩌다 배심원이 된 보통의 사람들이 그들만의 방식으로 조금씩 사건의 진실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그렸다. 남우는 집요한 성격의 청년 창업가로 모두가 유죄라고 말하는 사건을 놓고 끈질기게 진실을 찾아가는 인물이다. 이야기가 전개되는 공간은 법정이 대부분이고 재판부, 8명의 배심원이 출연진의 전부다. 러닝타임 114분 뒤의 여운은 꽤 길다. 자신을 한번쯤 되돌아보게 하는 힘이 있다.

“‘배심원? 그거 아직도 해?’라고 물어봤을 정도로 처음엔 그게 뭔지도 잘 몰랐어요. 외국영화에서 본 기억만 있을 뿐 크게 관심은 없었던 것 같아요. 남우는 ‘진짜사나이’ 아기병사 때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낯선 환경에 떨어진 인물이에요. 감독님께서 캐릭터 연구를 하지 말고 와달라고 하셔서 정말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남우를 연기했어요. 남우는 순수한 면이 있는데 제가 캐릭터에 어떤 의미나 의도를 담기 시작하면 때가 타고 오히려 캐릭터가 변질될 수 있었을 거예요. 저도 새로운 경험이었는데 그냥 있는 그대로 연기하다보니까 제 실제 말투가 많이 묻어나오기도 했고요. 배우로서 또 다른 접근 방식을 배운 느낌이에요.”

사진='배심원들' 스틸
‘배심원들’은 한정적인 공간에서 벌어지는 단순한 에피소드를 담은 영화로, 화려한 기교보다 오로지 배우들의 연기, 이야기의 힘에 승부를 건 영화다. 의상도, 배경도 변화가 없는 만큼 배우들 각자의 캐릭터가 뿜어내는 에너지가 어느 때보다 중요했다. 박형식은 “똑같은 옷을 입고 몇 개월 촬영을 하다보니까 ‘이 옷 빨래는 하냐’고 묻기도 했는데 나중엔 이야기가 주는 임팩트에 푹 빠져있었다”고 말했다.

“기술시사회 때 처음 보고 눈물이 나기도 했어요. 점점 나도 진짜 배심원이 돼서 같이 사건을 풀어가는 느낌이 들었죠. 특히 판사님이 판결을 내리려고 하는데 배심원들이 한명씩 손을 들고 소신을 밝히는 장면, 판사님이 배심원의 의견을 들어주는 장면에서는 저도 모르게 울컥하기도 했죠.”

드라마 ‘상속자들’, ‘화랑’, ‘힘쎈여자 도봉순’, ‘슈츠’ 등을 통해 주목받은 박형식에게 ‘배심원들’은 첫 장편 영화다. 그룹 제국의 아이들 멤버에서 연기자로 인정받고 있지만 드라마와 180도 다른 분위기의 영화 촬영장은 그에게 낯설기만 했다고. 심지어 영화 초반부 ‘저 우리나라에 배심원이 있는지 처음 알았는데요?’라고 말하는 신은 무려 27번 테이크를 찍었을 만큼 험난했다.

“감독님께서 계속 ‘형식씨, 조금만 더 편하게 해요’라고 하시는데 편하게 하는 게 대체 뭘까 고민이었어요. 테이크가 10번을 넘어가니까 슬슬 걱정되기 시작했고 20번 넘어갈 때쯤엔 이제 ‘이게 내 잘못이구나, 내가 자질이 부족하구나’ 싶었죠. 그 타이밍에 문소리 선배님이 정말 인자한 눈빛으로 절 보고 계시더라고요. 저도 마음이 절박해지니까 선배님께 가서 ‘누나, 저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어요’라고 해버렸어요. 저도 모르게 ‘누나’라고 불렀다니까요.(웃음) 마음 같아선 다른 날 촬영하자고 하고 싶을 만큼 마음이 힘들었거든요. 근데 선배님이 ‘나는 이창동 감독님이랑 촬영할 때 40~50번 테이크 간 적도 있다. 서로 맞춰가는 과정이고 당연한 거니까 죄송해 하지 말고 편하게 하라’고 해주셨어요. 선배님 덕분에 마음이 좀 편해져서 잘 끝낼 수 있었죠. 선배님이 워낙 포스가 있으셔서 첫인상은 무서울 수 있는데 알고 보면 되게 섬세하고 따뜻하고 유쾌하세요. 처음에 리허설 할 때 직접 만든 향초도 주시고 책도 선물해주셨어요. 반전 매력이 있는 선배님이에요.”

‘배심원들’로 첫 스크린 도전을 마친 박형식은 오는 6월 10일 수방사 헌병대 입대를 앞두고 있다. 6년 전 MBC ‘진짜사나이’에서 ‘아기병사’라는 애칭으로 사랑받으며 스타덤에 오른 것처럼, 군 입대는 그의 연기 인생에 또 다른 전환점이 될 전망이다.

“수방사는 예전에 ‘진짜사나이’ 촬영했던 기억이 있어서 익숙한 곳이에요. 살짝 슬프기도 하고 추억도 떠오르고 그래요. 처음 ‘진짜사나이’에 투입될 땐 주변에서 가서 고생만 하는 프로그램인데 왜 하냐고 했었죠. 근데 황금시간대 주말예능 고정이었고 놓칠 수 없는 기회였고 그래서 정말 열심히 했어요. 그땐 제가 봐도 제 모습이 바보 같았는데 다행히 그런 면을 좋아해주셔서 힘든지도 모르고 최선을 다했었죠. ‘진짜사나이’ 출연은 전혀 후회하지 않아요. 오히려 감사해요. 그때 부대에 가서 촬영한 기억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진짜 입대를 해요.(웃음) ‘배심원들’이 입대 전 마지막 작품인데 내용도 좋고 재밌다는 평을 많이 들어서 조금은 홀가분하게 갈 수 있을 것 같아요. 영화가 사랑받으면 군대 갔다와서도 계속 찾아주시겠죠?(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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